- 전체(727)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1)
- 홍영혜/빨간 등대(69)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701) 허병렬: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은총의 교실 (96) The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Author), Vivian Mineker (Illustrator), 2019, Familius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미국의 사랑받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열려 있었다. 그는 그 길들을 ‘가는 것도 좋고 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좋다’고 하였다. 인생을 한 곬으로 몰지 않는 열린 마음이 돋보인다. 이 경지까지 도달하려면 아마 자기 선택의 긴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은 여러 갈래 중에서 선택할 일의 연속이다.
일어날까 말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하루의 일정을 어떻게 짜고, 어떤 차례로 일을 할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까...등 다수 속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일들이 줄을 잇는다. 이 중에는 생활의 타성으로 이루는 기계적인 선택이 섞인다. 하지만 나머지는 골똘히 생각해서 선택할 일들이다. 단 한 번의 선택 잘못 때문에 받는 영향을 고려해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생활에서 겪는 선택의 다양성은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어린이들도 나름대로 좋고 싫은 것을 골라가며 생활하고 있다. 몇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도 다른 생활 기능처럼 단계적으로 배우게 된다. 이런 기회가 빈번할수록 기능 습득에 좋은 영향을 준다. 만약 어른들이 이 기회를 대신한다면 선택 기능 습득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어른들이 유의할 점을 세 가지로 본다.
첫째, 어른의 선택이 어린이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활 체험이 많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부모는 당사자가 아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며 어린이는 새 생각을 낳는다. 둘째, 실패를 막아서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는 생각이다. 실패가 없는 성공은 없다. 부모의 지시만 따른다면 작은 실수는 막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의 큰 실패를 막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셋째, 시간의 낭비를 줄이게 되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학업의 성취나 생활 기능의 발달은 어린 시절 이루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부모와 자녀의 서로 다른 선택이 크게 충돌하는 기회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대학 선택이고, 둘째 전공분야 선택이고, 셋째 배우자 선택으로 본다. 이것들은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도 부모의 선택을 고집한다. 이유는 부모의 사랑과 체험을 통한 판단을 믿어야 결과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는 당사자가 아니다. 자녀의 미래는 당사자의 선택이 바람직하다. 부모는 의견을 주고 자녀의 취사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것을 하나 집으세요’ 학교 간식시간에 쿠키쟁반 앞에서 말한다. 한 학생이 말없이 서 있다. ‘좋아하는 색종이를 고르세요’ ‘좋아하는 책을 읽으세요’ ‘좋아하는 운동기구를 선택하세요’ 모두 신이 날 것같은 제안인데, 선뜻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교사가 어느 한 가지를 택해서 주어야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학생들이 있다. 가정에서 아마 밥반찬까지 골라서 먹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유의 함량’은 선택의 범위가 넓고 좁은 것과 정비례한다고 본다. 우리가 존중하는 자유의 폭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적음에 따라 정해진다. 오직 한 가지를 놓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자유는 없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중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른이 그들을 돕는다고 생활 필수품을 골라서 주든지, 생활의 방향을 선택해 준다면 그들은 언제 어떻게 필요한 기능을 배우게 될까.
선택의 기능도 기회가 많을수록 연마된다. 그 과정에서 작은 실수들이 생길 것이다. 작은 실수들은 큰 실패를 막는다. 경제가 어렵던 시절 데이트할 때 여학생에게 선택군을 준다고 ‘자장면과 짬뽕 중 어느 것이 좋아?’라고 물었단다. 당시 두 가지는 같은 가격이어서 마음 편히 물었다는 남학생의 고백이 귀엽고, 그 정신이 장하다. 이번에는 어린이들에게 묻는다. ‘무슨 놀이를 할까?’ 엄마 아빠 얼굴 안 보고 대답하기.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Author), Vivian Mineker (Illustrator), 2019, Familius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피천득 역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