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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스테파니 S. 리: 자연아, 고맙다
흔들리며 피는 꽃 (14) 공원 산책길에서
자연아, 고맙다
Connection, Stephanie S. Lee, 2014, Color and gold pigment, ink on Hanji, 24˝ (H) x 20˝ (W) x 1 ¾˝ (D)
얼마 전만 해도 시체같던 고목에 거짓말처럼 초록빛이 달려있다. 거칠게만 보이던 나무에서 연두빛 새순이 올라오는것을 보자니 얼었던 마음의 밭에서도 새싹이 나올 것만 같은 너그러운 기분이 든다.
묵묵히 겨울을 견딘 나무에서 새잎이 나듯, 사소한 것이라해도 꾸준한 습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좋은 습관을 갖는 방법에는 기도나 명상같은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자연을 벗하는 자신만의 의식은 균형잡힌 정서와 신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행히 이곳 뉴욕에는 크고작은 공원들이 많아서 도심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자연을 만날 기회가 있다. 우리동네에도 호수가 있는 작은 공원이 있어서 자주 애용하는데, 공원을 걷다보면 그 안에 살고있는 동물들의 행동들을 관찰할 수 있다. 새는 왜 한발로 서서 자는지, 다람쥐는 매일 뭘 저렇게 분주한건지 일일이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함께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경이로움과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자연 속에 놓이면 딱히 특별한 걸 하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사람이 순해진다. 하늘을 보면 마음이 넓어지고, 꽃을 보면 마음이 말랑해지고, 웅장한 산과 바다를 마주하면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져 내가 안은 고민도 함께 작아진다. 그저 자연안에 존재하고 있는것만으로도 자기성찰이 절로 되어 겸손한 마음이 찾아드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공원안에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비온 뒤 길 위로 나온 지렁이들이 밟힐새라 한마리씩 굽어보며 구해주는 아줌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공원 구석구석을 찾아가며 쓰레기를 줍는 부부, 찻길로 나온 오리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해주는 사람들… 아마도 그들은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우주안에서 먼지보다 작게 공존하고 있음을 자연을 통해 깨달은 것이리라.
Relationship, Stephanie S. Lee, 2014, Color and gold pigment, ink on Hanji, 24˝ (H) x 20˝ (W) x 1 ¾˝ (D)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벗하며 넒어진 시야로 우주의 섭리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면, 만물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닌 한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면 적어도 돈이라는 숫자 때문에 자연을 해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스스로를 함께 해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지 않을텐데… 인간의 욕망과,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성공을 향한 집착은 얼마나 사람의 시야를 좁히고 마음을 편협하게 만들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게 하는지…
볕이 따사롭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읽은 구절처럼 저 먼 하늘에서 이곳까지 내려와 나를 따스하게 쓰다듬어주는 볕이 고맙기 그지없다. 자연을 닮아 내 좁은 마음이 한치라도 넓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공원을 걸어본다. 시력은 세월이 지날수록 흐려지는데, 해를 거듭할 수록 단풍과 초록은 더 짙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햇빛이 앞 유리창으로 비쳐들어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눈을감는 순간 그 빛이 나의 눈꺼풀을 따뜻하게 내리 쬐는 것이 느껴졌다. 햇빛이 그 멀고 먼길을 더듬어 이 작은 혹성에 도착해서 그 힘의 한자락을 통해 내 눈꺼풀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야릇한 감동이 나를 감쌌다. 우주의 섭리는 나의 눈꺼풀 하나조차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