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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이영주: 블루, 한국학교 갔어요
뉴욕 촌뜨기의 일기 (27)
블루, 한국학교 갔어요
사진: 안 마리아
요즘 최대 화제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21살의 조성진입니다. 쇼팽콩쿠르는 세계 3대 음악 콩쿠르 중 하나로, 피아노를 공부하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공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그런 큰 콩쿠르에서 그것도 21세 밖에 안 된 젊은이가 우승했으니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저도 음악 하는 딸 셋을 가진 사람으로서 제 딸이 우승한 것처럼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한국에선 그가 언제 한국에서 연주하게 될지를 목매어 기다리고, 음반은 나오자마자 사고자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조기교육 문제입니다. 조성진의 우승에서 감격한 사람들을 한편 무언가를 깊이 되돌아보게 만든 일은 그의 부모님 이야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자녀를 음악 시키는 부모들처럼 앞에 나서서 극성스럽게 자녀를 밀어붙이는 부모가 아니라 지켜보면서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부모라는 점 말입니다. 그런 기사를 신문에서 보면서 그처럼 믿음직스런 부모를 가진 조성진이 더욱 우러러 보였습니다. “루시아가 큰일을 했다.” 지난 8월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는 저를 보실 때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이 말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다. 그만큼 둘째 루시아의 아들 블루는 우리 집안의 유일한 아기여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0월에 세 살 된 블루의 교육 역시 우리 가족의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관심만큼 할머니와 엄마의 세대 차이가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기를 낳자 마자부터 자기 방에 혼자 재우는 일입니다. 그래야 독립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큰 이모부에게 수영 교습받는 블루. 사진: 안 마리아
저는 첫애를 쌍둥이로 낳았으니 첫애 때는 할 수 없이 아기 침대를 사서 재웠지만 막내 때는 친정어머니께서 이불처럼 넓은 요를 새로 꾸며 주셨습니다. 아기와 함께 자야 하니 한 사람이 자도록 만든 요는 작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널찍한 요에서 막내와 저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면서 함께 잤는데, 지금 막내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로 지금 저는 둘째와 전쟁 중입니다. 하루 저녁 엄마, 아빠가 외출했을 때 할머니와 함께 잤던 블루가 그 후에도 할머니만 집에 오면 같이 자고 싶어해서 입니다. 전쟁이라지만, 사실은 블루 엄마, 아빠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다만 둘째가 말을 섭섭하게 했다고 엄마인 제가 철없이 삐쳐있는 상태입니다. 하하.
다행인 것은 그나마 학교 문제에선 서로가 뜻이 맞는 점입니다. 둘째 친구들은 아기가 한살 반만 되면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아기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가졌을 때 한국에선 아이가 4살만 되면(미국 나이로는 3살이지요) 악기를 시키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제 친구도 두 아들이 네 살 때부터 바이얼린을 시키고, 첼로를 시켰습니다. 제 딸들은 6살, 8살에 뒤늦게 시작했고, 주말이면 연습도 시키지 않고 동굴탐사며 산과 바다로 여행이나 데리고 다녔습니다. 아이 옆에서 지키며 하루 8시간씩 연습시키던 열성 엄마의 아이들이 콘체르토를 배울 때 제 딸들은 스케일이나 연습하고 있는 게 솔직히 마음 편하진 않았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한 엄마는 제게 “마리아 엄마, 주말이 황금시간이에요. 주말엔 더 오래 연습시킬 수 있잖아요. 그런 황금 시간에 애들을 놀리면 어떻해요.” 하면서 주말마다 애들 데리고 놀러다니기 바쁜 제게 충고를 해주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부터 시작했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게 현실 아닙니까.
한국학교 수업시간에. 사진: 정은송(담임 교사)
블루가 가을 학기에 한국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블루가 한국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제가 하도 궁금해 하니까 블루 엄마가 담임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제게도 이메일을 보내주었습니다. 매주 담임이 학부모들에게 보낸다는 이메일엔 가을 학기의 전체 교과 내용이며 그날의 학습 내용이 도표로 상세하게 적혀 있고, 그 날의 알림장과 아이들 수업하는 사진이 30장이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우리 블루가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어떤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보는 것처럼 알 수 있었습니다. 정규학교도 아닌 토요한국학교에서 이렇게 체계적으로 아이들에게 그 나이에 맞는 교육 과정을 만들어서 성의껏 하는 모습이 참으로 든든했습니다.
세대의 간격은 있어도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데 어릴 땐 어린애답게 맘껏 뛰놀게 하고, 유치원부터 어떤 특별교육을 해야 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블루는 가르치지 않아도 첼로와 기타를 가지고 이모(마리아 이모가 첼리스트입니다)처럼, 이모부(기타의 주인)처럼, 연주하는 흉내를 얼굴 표정과 몸을 다써서 하면서 가족들을 웃깁니다. 피아노를 치면서는 제법 몸을 흔들어가며 작사, 작곡해서 노래까지 부르는 바람에 포복절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초스피드 시대인 지금, 천천히 아이의 정서를 나이답게 잡아주면서 한 계단씩 밟아가는 육아법을 좇는다 해도 결코 아이가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부모들이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마리아 이모와 함께. 사진: 안 루시아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