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비밀식당' 보헤미안(Bohemian)
"미안하지만, 전화번호는 공개할 수 없어요"
보헤미안 Bohemian
모험을 동반한 식사는 요리 맛에 스릴감까지 가미된다. 브롱스 아서애브뉴의 '로베르토, JFK 공항 인근 오존파크의 ‘돈 페페(Don Pepe)’, 아스토리아의 자그마한 이집트 식당 ‘카밥 카페(Kabab Café)’, 그리고 헬스키친 10애브뉴 멕시코 델리 ‘테후이징고(Tehuitzingo Deli Grocery)’ 안의 허름한 타코 카운터는 먹으러 가는 길부터 흥미진진했다.
1993년 봄 홍콩 국제영화제가 떠오른다. 나 홀로 홍콩 가서 2주간 영화를 약 45편 보았다. 페리 타고 이동하면서 하루에 3-4편을 보려니 물론 극장에서 졸기도 했다.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가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기 한달 전 영화제에서 공개되어 그 또한 스릴이 넘쳤다.
보헤미안의 바는 고작 6명 정도 앉을 수 있다. 유니크한 칵테일이 인기있다. SP
어느 배고픈 날 밤, 영화하는 친구들과 모였는데, 영국의 비평가 토니 레인즈와 그의 친구가 조금 특별한 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의했다. 배가 고픈 우리 10여명은 홍콩의 미궁 같은 길을 돌고, 또 돌아서 도착한 허름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당구장 안을 통과해서 들어간 식당은 식탁이 두어 개 뿐인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아마 그곳은 식당도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어로 ‘야매로 하는’ 미장원, 성형수술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집이야말로 불법이거나, 비밀로 하는 ‘야매 식당’인듯 했다. 그날 특별한 손님에게 펼쳐진 음식은 해산물 중심의 맛깔스런 ‘조주 요리(潮州料理, Chiuchow Cuisine)’였다. 그 맛은 그때까지 먹었던 중국요리 중 단연 최고였다.
이후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조주 요리 전문식당 ‘Sun Golden Island’(엘리자베스&베이야드 스트릿)를 발견한 후 들락달락했는데, 그만 문을 닫고 말았다. 오호통재라! 뉴욕에서 너무 좋아했는데, 문닫은 식당이 한둘이 아니다. 베이릿지의 모로코 식당 ‘라 메종 드 쿠스쿠스(La Maison du Couscous)’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일본 가정식 벤토 전문점 ‘Win 49’, 퓨전요리 연구가 윤정수씨가 운영하던 36스트릿의 바비큐 전문 한식당 '3692'도 오래 전에 단명했다. 평준화한 음식이 아니라 컬트 식당들이니 장사에 실패했던가, 치솟는 렌트 때문에 배겨날 수 없었나 보다. 그래서 식당의 부침이 심한 뉴욕에서 새로운 식당의 데뷔는 눈길을 끈다.
앤디 워홀이 주인이었고, 장 미셸 바스퀴아가 살고 작업하다가 사망한 건물. 정육점의 불을
꺼졌고, 셔터가 내려져있다. 식당 사인이 없다. 유리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보헤미안. SP
뉴욕에서 홍콩의 아련한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레스토랑이 바로 UN 인근 일본식 선술집 겸 레스토랑 ‘사카구라(Sakagura)'다. 43스트릿 빌딩의 지하에 숨어있는 이 곳은 갈 때마다 건물을 잊어버린다. 낮에는 한정 수량의 소바 런치 스페셜이 있고, 저녁 무렵 사케와 함께 소바와 두부나 그외 타파스 같은 안주를 즐기기에 쿨한 곳이다. 사케통 모양의 화장실 방문도 필수다.
그런데, 사카구라에 버금가는 ‘비밀 식당’이 몇 년 전 노호(NoHo)에 등장했다. 이 집은 전화번호가 없다. 그러나, 푸드트럭이나 카트는 아니다. 웹사이트에 메뉴도 없다. 그리고 찾기는 더욱 힘들다.
이스트빌리지 인근 그레이트 존스(Great Jones) 거리에 숨어있는 일본 퓨전식당 ‘보헤미안(Bohemian)’이다. 뉴욕 포스트가 ‘뉴욕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식당’이라고 썼다. 보헤미안은 열쇠를 가진 200명만이 식사를 할 수 있는 회원제라는 말도 들었다.
보헤미안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특권과도 같았다. 예약하고 싶었지만, 인터넷 검색을 아무리 해도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희귀한 이름의 웹사이트(www.playearth.jp)에선 레스토랑 위치와 연락처는 공개하지 않는다(the location and contact info is not open to the public). 한번 보헤미안에서 먹어본 사람이 친구나 지인에게 추천하는 식당이다. E-메일 예약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소개한’ 이메일을 ny-info@playearth.jp로 보내면, ‘초대할지도 모른다(We may contact you to come over!)’고 밝히고 있다. 도대체 무슨 식당이기에…
조그마한 보헤미안 사인이 있는 유리문을 닫혀있다. 비밀 번호를 알거나, 벨을 눌러야한다.SP
3월 하순 근처에 연극 보러 갔다가 보헤미안에 들렀다. iPhone의 지도로도 위치(57 Great Jones)를 찾는데 헤맸다. 겉보기에 전혀 식당이 있을 법하지 않은 곳. 미국산 고베 쇠고기를 파는 고깃간의 옆 홀웨이를 지나서야 입구가 보였다. 문은 잠겨있으며, 벨을 눌러야 한다. 웨이트레스(제시카)는 3주 후에나 테이블이 난다고 했다. 우리는 구두로 저녁을 예약을 했다.
며칠 전 마치 젊은 날의 첫 데이트처럼 설레이는 마음으로 보헤미안에 갔다. 그러나, 이건 완전히 보헤미안과의 블라인드 데이트였다. 벨을 눌러서 들어가보니, 부티크 호텔의 자그마한 라운지 같은 분위기다. 한쪽 벽엔 컬러 인물과 풍경 사진이 걸렸고,
다른 벽엔 홈페이지에서 본 붓으로 그린 세계 지도가 있다. 그 지도 아래엔 큰 기타와 작은 기타 2대가 이 집의 모던하면서도 보헤미안적인 감각을 느끼게 한다. 한쪽 아래엔 일본식 미니 인공정원이 고상하다. 거실용 테이블과 자그마한 테이블이 여유 있게 배치되어 있고, 라운지용 낮은 가죽 의자가 편안한 식사 분위기를 예고했다. 한 켠엔 이 집의 유명한 칵테일이나 사케,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바(bar)가 있다. 낮에는 천장에서 스카이라잇이 들어온다고 하지만, 저녁이라 알 수 없었다.
붓으로 그린 세계지도와 사진, 기타를 배경으로 라운지같은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 SP
보헤미안이 한번에 받을 수 있는 손님은 고작해야 25명 내외. 지극히 아담한 공간이다. 여느 뉴욕 식당처럼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에서 서두르는 스피드 서비스가 아니라 느림의 식사를 제공해주겠다는 그런 분위기다.
은밀하고도 특별한 저녁이 그렇다고 뉴욕의 톱 레스토랑처럼 비싼 것도 아니었다. 밖에 푸줏간이 있으니, 보헤미안에선 고기 요리를 시키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테지만, 마음은 생선으로 향했다. Yelp.com의 사진으로 본 생선 브란지노(branzino, $28) 구이 한 마리는 꼭 먹고 싶었다. 그런데, 고로께와 성게알($13)도 흥미로웠다. 콜레스테롤이 높은 생산 알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탓이다. 다행히 두 요리가 낀 ‘테이스팅 코스(Tasting Course)’가 있었다. 6코스에 $55으로 착한 가격이다. 테이스팅 메뉴는 반드시 테이블 전체가 주문해야 하므로 우리 둘은 합의했다.
이젠, 음료가 문제였다. 보헤미안은 그 집만의 고유한 칵테일이 유명하지만, 우리는 칵테일과가 아니라 와인을 골랐다. 육류와 어류가 섞인 ‘서프&터프(surf & turf) 코스라서 와인 고르기가 쉽지는 않았다. 우리의 와인 전문가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생산된 ' 피노 네로(Pinot Nero) ‘티에펜브루너(Tieffenbruner, $47)’를 골랐다. 재즈 피아노곡이 흐르고, 9시가 넘었으니 배가 고파진다.
보헤미안은 갤러리처럼 사진도 전시하고 있다. 재즈 피아노가 나직하게 흐른다. SP
보헤미안 테이스팅 코스(Dinner)
1. 신선한 야채 폰듀(Farmer’s Fresh Vegetable Fondue)- 2. 성게알 고로께(Uni Croquette)-3. 허브 카츠 모듬 콜드컷(Herve Katz’s Assorted Cold Cuts)-4. 브란지노 구이(Pan Roasted Branzini)-*선택 코스 5. 보헤미안 와슈비프 미니버거(Bohemian’s Washu-Beef Mini Burger)와 감자프라이(Fried Potato)/5. 연어알 덮밥(Ikura Cavia Rice Bowl)-6. 아몬드 파나코타(Almond Pannacotta)
1. 신선한 야채 폰듀: 커다란 얼음 통에 자주색 홍당무, 오이, 피망, 엔다이브, 토마토 등 야채가 예쁘게 나왔다. 크림치즈와 앤초비를 섞은 폰듀에 찍어 먹는다. cold & hot이 조화를 이루어 짭조름하니 따뜻하지만, 싱싱한 야채를 바삭바삭 씹으면서 식욕이 솟는다. (스위스/프렌치 스타일)
2. 성게알 고로께: 흰 단추 버섯(button mushroom)을 갈아 크림으로 버무린 후 빵가루로 튀긴 달걀만한 고로께. 고소하나 껍질이 약간 질기다. 그 위에 차가운 성게알이 올려져 있다. 두번째 코스도 hot & cold를 대치시켰는데, 입에 닿는 느낌(texture)가 달라 신선하지만, 양쪽의 맛을 놓쳐버린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버섯보다 야채 고로께가 낫지 않았을까? (일본식)
‘티에펜브루너(Tieffenbruner)는 레드 와인치고 무겁지 않아 콜드컷,
버거, 브란지노와도 잘 어울렸다. 5번째 코스에서 반병 추가 주문. SP
3. 허브 카츠 모듬 콜드컷: 허브 카츠는 파리에서 골동품 딜러를 하다가 2000년 뉴욕으로 이민와 퀸즈에서 훈제햄 숍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보헤미안은 이 집의 스모크 살라미, 햄과 초리조를 로즈마리 한 줄기와 함께 서브한다. 초리조는 좀 질기지만, 오른쪽 위의 햄은 스모크향과 함께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스페인 풍)
4. 브란지노 구이: 매일 그리스에서 수입해온다는 지중해 생선 브란지노. 마을 반통, 호박, 감자, 샬롯, 콩깍지, 아스파라거스, 로즈마리 그리고 올리브와 앤초비까지 함께 오븐에 구워서 짭잘하다. 브란지노가 무척 싱싱했다. 함께 구운 야채가 그윽하고 고소하다. 단연 코스의 센터피스다. 이름을 ‘로얄 브란지노(royal branzino)’라 부르고 싶을 정도. 제법 큰 놈이라 둘이서 나누어 먹어도, 벌써 배가 불러진다.(그리스 스타일) Photo: Sukie Park
5. 와슈비프 미니 버거: 오레곤에서 왔다는 고베의 육질과 맛이 최상급이다. 스테이크하우스 ‘피터 루거(Peter Luger’s)’ 버거에 버금간다.(미국식)
5. 연어알 덮밥: 공기(bowl)가 아니라 컵(cup) 사이즈라 부담이 없었다. 연어알, 와사비가 얹혀있다. 신선한 오이 피클과 가츠오부시 향의 간장 소스 젤리, 토사주(tosazu jelly) 반찬이 무덤덤한 연어알의 맛을 상쇄해주었다. 사실, 이보다는 밥에 녹차를 말아먹는 ‘오차즈케’가 간절히 생각났다.(일본식)
6. 아몬드 파나코타: 시원하고, 부드러우며, 달착지근하면서도 약간 시큼한 파나코타.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검은 알은 블루베리가 아니라 향미가 없이 고무같은 타피오카였다.(이탈리아)
♣결국 보헤미안은 일본 요리 전문이 아니라 다국적 퓨전 레스토랑이었다. 요리사가 최상의 싱싱한 재료를 쓰며, 냉열(冷熱)과 의외의 재료를 창의적으로 조화하는 것을 즐기는듯 했다. 테이스팅 메뉴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야채 폰듀, 브란지노 구이와 와슈비프 미니버거. 다음에 간다면, 와슈비프 사시미(Washu beef Short rib sashimi)와 프와그라 소바(fois gras soba)를 시도해보고 싶다. 알고 보니 BYOB(Bring Your Own Bottle)도 가능했다. 코키지는 $20. 보헤미안은 음식 자체의 맛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느린 템포로 정성 어린 퓨전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일 것이다.
보헤미안의 미니 젠(zen) 가든. 물이 흐른다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SP
보헤미안 이모저모
▶요리사: 키요 시노키
▶도쿄 니시자부에 본점이 있으며, 발리에 지점이 있다.
▶건물은 한때 앤디 워홀이 소유했으며,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퀴아가 집과 작업실을 갖고 있었다. 1988년 바스퀴아가 죽은 것도 이 빌딩. 고깃간 옆의 골목을 ‘바스퀴아의 길(Basquiat Road)’라고 부른다.
▶고깃간: 2009년부터 에이치 야마모토가 운영하는 정육점으로 미국 내에 유일하게 미국산 고베 ‘와슈(Washugy)’를 판다.
▶주소: 57 Great Jones St.(Bowery & Lafayette St.), www.playearth.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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