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코폴라와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
칸 영화제 감독상 페미니스트 소피아 코폴라 감독
여성 7인의 통쾌한 복수극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의 매혹 ★★★★
'대부(The Godfather)'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1990년 자신의 외동딸 소피아(Sofia)를 대부 3편에 출연시켰을 때 비평가들과 관객은 야유를 보냈다. 용모에 카리스마가 결여됐고, 연기도 부족해서(발연기) '대부 3'를 망쳤다는 비난의 화살도 받았다. 그 소피아 코폴라가 페미니스트 감독으로 변신, 올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두번째 여성이 됐다.
소피아 코폴라에게 칸 트로피를 안겨준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은 1971년 돈 시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하지만, 코폴라의 버전은 2017년에 맞춘 페미니스트 시각이다. 니콜 키드만,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과 콜린 퍼렐이 출연한 '매혹당한 사람들'은 올 6월 미국 개봉되었고, 내년 아카데미상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선 그해의 우수 영화 상영회 'The Contenders 2017'를 11월 9일부터 1월 12일까지 열고 있다. 상영작들은 오스카상 노미네이션의 가능성이 큰 영화들이다. 한국 영화로는 25일 봉준호 감독의 '옥자(Okja)' 시사회가 열렸으며,
12월 22일 오후 7시 30분엔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On the Beach at Night Alone)'가 상영된다.
12월 2일엔 '매혹당한 사람들' 상영회 후 소피아 코폴라 감독, 필립 드 수르(Philippe Le Sourd) 촬영감독과 대화가 진행됐다.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매혹당한 사람들'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여자 7명이 살고있는 남부의 한 저택에 다리를 부상당한 북군 상병 존(콜린 페럴 역)이 머물면서 벌어지는 에로틱 스릴러다. 소녀 에이미가 산 속에서 버섯을 캐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미스테리한 풍경이 스릴러보다 '오즈의 마법사' 풍의 동화를 연상시킨다. 부상병 존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여자들만의 공간에 들어오면서 그를 사로잡기 위한 여자들의 호기심, 질투와 욕망이 분출한다.
청교도적인 리더 미스 마사(니콜 키드만 분), 교사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 분), 도발적인 유혹녀 알리시아(엘르 매닝 분), 그리고 네명의 어린 아가씨 제인, 에이미, 에밀리, 마리는 여심(女心)이라는 판도라 박스의 원형일 수도 있다. 칼 융 학파인 미국의 심리학자 진 시노다 볼린(Jean Shinoda Bolen)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Goddesses in Everywoman: A New Psychology of Women, 또 하나의 문화 간)'에서는 여성의 심리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7 여신의 유형으로 분석했다.
여권운동가 성향의 아르테미스, 전략가이자 지성파인 아테나, 화로처럼 내성적인 헤스티아, 질투하는 아내 타입의 헤라, 모성애가 풍부한 데미테르, 구제받기를 기다리는 페르세포네, 그리고 사랑과 미의 수호신 아프로디테의 7가지 유형이다. 볼린의 이론에 따르면, 마사는 아테나, 에드위나는 페르세포네, 알리시아는 헤라, 버섯을 캔 에이미는 아르테미스 형으로 보인다. 시나리오를 쓴 코폴라는 나머지 소녀들의 캐릭터는 명징하게 그려지 않았다.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소피아 코폴라의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매혹당한 사람들'을 지금 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할리우드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스캔달을 필두로, CBS와 NBC-TV 두 모닝쇼의 남자 진행자 찰리 로즈와 맷 라우어가 잇달아 성추행 폭로 하루만에 해고됐기 때문이다.
'매혹당한 사람들'에서도 존은 심각한 다리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자신에게 매혹당한 여성들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아미쉬 여인들같은 수수한 옷에서 부케처럼 화려하게 변모한다.
그러나, 존이 배신으로 치닫자 에드위나가 그를 계단으로 밀쳐 다리를 완전히 망가트리고, 미스 마사는 존의 성기를 은유하는 다리를 절단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저택의 평화를 깨트린 문제의 남자, 존을 독버섯 식사로 조용히 제거하는 공모자가 된다. 자매들의 연맹(female bond, sisterhood)이 감미롭다. 존의 시체를 흰 천에 말아 꿰맨 후 저택 바깥에 내놓은 결말은 여인네들의 통쾌한 복수극이다.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토마스 P. 컬리넌(Thomas P. Cullinan)의 소설 '색칠한 악마(A Painted Devil)'을 각색한 스토리는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Seven Dwarfs)'를 패러디한 인상을 준다. 새 왕비의 미움을 사서 왕궁에서 추방되어 숲 속을 헤매던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의 집에 살게되는 반면, 전쟁 중 부상당한 숲속의 병사 존은 '일곱'명의 여인이 사는 저택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존은 이 여인들에게 '백마 탄 왕자'의 모티프일지도 모른다.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고, 존은 독버섯을 먹고 사망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여인들이 총 대신 요리로 존을 제거하고, 공동의 바느질로 그의 시체를 싸는 장면으로 여성들의 예술을 복귀시킨다. 아티스트 주디 시카고가 '디너 파티'에서 요리와 공예를 예술로 등극시킨 것처럼 코폴라는 평가절하되어 왔던 여성들의 가내 업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미스 마사(니콜 키드만 분)가 수술을 집도하는 것 역시 여성들의 기술에 대한 예찬일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The Beguiled(1971)'
존의 등장으로 저택은 남자 1명과 여자 7명이라는 불균형의 구조로 전환되며, 7 여성들에게 억압되었고, 잠재해있던 욕망이라는 판도라 박스가 열리며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그런 의미에서 저택은 전쟁 중 7여인의 은신처였고, 후에 다리 잘린 존에게 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된다.
니콜 키드만의 계산된 섬세한 연기와 엘르 매닝의 요부끼 넘치는 눈매가 인상적이지만, 커스틴 던스틴의 절제된 연기는 아쉽다. 콜린 파렐의 연기력은 다리 절단 후 소리지르는 장면 외에는 함량미달의 연기다. 한 장소를 배경으로 밀도높은 갈등의 파노라마, '매혹당한 사람들'은 치밀한 캐릭터 갈등이 있는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12월 2일 MoMA에서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상영회 후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필립 르 수르 촬영감독이 대화를 나누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앤 로스, 촬영감독 필립 르 수르는 '매혹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물+로맨스+스릴러의 트라이앵글에서 동화처럼 그려낸다.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The Grandmaster)' 촬영을 한 필립 르 수르는 스모키한 화면으로 동화/신화같은 분위기에 조명을 변주하며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포착했다. 코폴라 감독은 리서치를 하면서 고증을 위해 당시 회화, 사진 등 자료 조사를 했고, 존 싱거 사전트의 회화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Tess)'를 참고했으며, 필림 르 수르는 카라바지오 회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돈 시겔 감독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버전의 '매혹당한 사람들'에는 흑인 노예 여성이 등장한다. 소피아 코폴라는 "노예 문제가 너무 큰 주제라서 자신의 영화에서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았다"고 밝히지만, 남북전쟁의 원인이 노예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흑인 캐릭터를 제거한 것은 정치적으로 무심해보인다.
사치의 여왕을 패셔니스타로 그린 '마리 앙트와네트(Marie Antoinette, 2016)'나 할리우드의 빈집털이 여성절도단 이야기 '블링 링(The Bling Ring, 2013)'도 사회문제보다는 여성들의 허영심에 주목한 영화들이었으니, 코폴라 키드의 한계일까? 소피아 코폴라가 인종과 계급문제까지 더 심도있게 다룰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 같아 아쉽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소피아의 오빠 로만 코폴라가 프로듀서로 참가했으며, 프랑스 록밴드 '피닉스(Phoenix)'의 리드싱어인 남편 토마스 마스(Thomas Mars)가 음악을 담당한 패밀리 비즈니스의 결과물이다.
*할리우드 빈집털이 한인 여성 이야기 '블링 링(Bling 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