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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이버 로맨스' 엘레지 

그녀(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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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물었던 대사다. 
우디 알렌의 ‘범죄와 비행’ * ‘앨리스’에서 누군가는 “Love Fades Away”(사랑은 시들해지기 마련이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온라인 쇼핑,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태그램 등 소셜미디어가 일상이 되었고, 온라인 데이트 성공 스토리가 이어지는 시대.
거리, 지하철에서도 아이 컨택없이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오늘 날 사랑이란 무엇일까? 
앞으로 50년 후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무엇보다 영화 ‘그녀(HER)’는 인간의 절대 고독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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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존스(Spike Jones) 감독의 신작 ‘그녀(HER)’는 가까운 미래 LA를 배경으로 러브 스토리를 그려나간다. 
호아퀸 피닉스(Joaquin Phoenix)가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테오도어 트웜블리로 분해 컴퓨터 오퍼레이팅 시스템(OS)의 여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Scarlett Johansson 목소리 출연)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컴퓨터화한 인간, 인간화한 컴퓨터의 멜팅 팟.

테오도어는 beautifulhandwrittenletters.com라는 회사에서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이혼 절차 중 외로움과 무료함에서 탈피하기 위해 비디오게임이나 폰 섹스로 도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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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자 진화된 OS 사만다가 등장하고, 테오도어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 들어간다. 문제는 사만다의 육체가 부재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데이트도 만나기 전까지는 몸 없이 소통하지 않나. 그래서 테오도어와 사만다의 관계가 그다지 낯설어 보이지는 않는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은 인간과 컴퓨터 OS 여인의 로맨스를 소재로 ‘블레이드 러너’같은 SF 액션이나 ‘리틀 호러 숍’같은 호러영화, 혹은 코미디로 포장하지 않았다. 존스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번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분위기의 멜란콜리한 로맨스로 시나리오를 썼다. 

존스에게 중요하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사랑의 정체는 무엇인가? 등 철학적인 질문에 있는 듯 하다. 스칼렛 요한슨이 두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감독들이었던 존스와 코폴라는 1999년 결혼했다가 4년 후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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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LA가 배경인 ‘HER’에서 컬러 톤 캘리포니아답게 밝지만, 회색으로 필터를 한듯한 분위기다. 대조적으로 인간은 더욱 더 고독해지고 있다. 테오도어와 엑스트라들의 패션 또한 주목할만 하다. 벨트 없는 하이 웨이스트 울 바지가 과연 미래의 패션일까? 하지만, 패션 브랜드 오프닝 세레머니가 스파이크 존스와 제휴했다는 소식이다.

콧수염에 안경을 낀 데오도어 역의 호아킨 피닉스는 컴퓨터를 사랑하는 가장 난해한 연기를 매끄럽게 소화하고 있다. 이어폰을 끼고, 심지어는 비치에서도 몸뚱아리가 없는 사만다와 계속 소통하고 있는 테오도어는 ‘군중 속의 고독’의 전형이다.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호아킨은 이제까지 그가 출연했던 영화 중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로 분했다. 약물 중독으로 돌연 사망한 배우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다.


tumblr_mz3xp2HFyH1seyhpmo2_1280.jpg Interview Magazine


스칼렛 요한슨의 섹시한 허스키 보이스는 ‘사만다’ 역으로 안성맞춤이다. 2년 전쯤 센트럴파크 사우스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We Bought a Zoo)’에 기자 간담회에 화장끼 없는 맨 얼굴로 나타난 요한슨은 마침 목욕탕에서 찍은 셀폰 사진 유출 스캔달에 휩싸였었다. 요한슨은 자그마하고, 도자기 같은 피부지만, 스크린에서 라나 터너, 진 할로우, 마릴린 먼로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면서도 특히나 강점은 그 매혹적인 목소리. 

본질이 기계인 사만다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테오도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필요할 때 나타나는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만다에게 몸은 없다. 사랑의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시소 게임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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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존스의 ‘HER’는 데이빗 오 러셀의 ‘아메리칸 허슬’의 잘 그려진 5인조 캐릭터들과 비교할 때, 주인공 테오도어를 제외한 조연급 인물들은 스케치에 불과하다. 테오도어가 왜 부인과 이혼하는지, 마지막 장면 빌딩 옥상에서 나란히 앉게 되는 에이미와는 어떤 관계인지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아마도 테오도어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존스 감독의 의도일 수도 있다. 불필요한 인물들의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테오도어의 시각(클로즈업)으로 본 21세기 여성 판타지를 그리고 싶었다면, 그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시각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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