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락(Jackson Pollock)에게 영감을 준 무명화가 자넷 소벨(Janet Sobel)은 누구인가?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의 선구자 자넷 소벨
잭슨 폴락의 추상표현주의에 영감을 준 무명 화가
휴스턴 메닐 컬렉션 자넷 소벨 특별전
Janet Sobel: All-Over
Feb 23 – Aug 11, 2024
The Menil Collection, Houston Texas
Janet Sobel, Untitled, ca. 1946. Oil and enamel on board, 18 × 14 in. (45.7 × 35.6 cm), The Museum of Modern Art/ Jackson Pollock. Free Form. 1946. Oil on canvas. 19 1/4 x 14" (48.9 x 35.5 cm), The Museum of Modern Art
뉴욕현대미술관(MoMA)는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선구자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1912-1956)의 첫 드립 회화 '자유 형식(Free Form, 1946)'을 소장하고 있다. MoMA엔 여성화가 자넷 소벨(Janet Sobel, 1893-1968)의 '은하수'(Milky Way, 1945)도 소장하고 있다. 잭슨 폴락이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기 전에 자넷 소벨이 있었다. '은하수'는 캔버스 표면에 흩뿌려지진 다양한 색의 에나멜로 정교하게 구성한 작품이다. 한편, 잭슨 폴락의 '자유 형식'은 보다 역동적이며 즉흥적인 리듬이 파워풀하다. 소벨이 먼저 시작한 독창적인 미술 기법은 악명높은 잭슨 폴락이 채택하면서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으로 알려지게 된다.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에 영향을 주었지만, 미술사에서 폴락의 그림자에 가려져온 여성화가 자넷 소벨의 대규모 전시가 휴스턴의 메닐 컬렉션(The Menil Collection)에서 열린다. 2월 23일부터 8월 11일까지 계속되는 특별전 'Janet Sobel: All-Over'는 1968년 자넷 소벨이 사망한 후 열리는 최대 규모의 전시로 1940년대 작품 약 30여점의 회화와 드로잉이 소개된다.
Hilma af Klint: Painting for the Future, Guggenheim Museum, 2018
2018년 구겐하임뮤지엄에서 열린 스웨덴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 회고전(Hilma af Klint: Painting for the Future)은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에 앞서서 추상미술을 시도했던 인물로 뒤늦게 재평가됐듯이 백인남성 위주의 미술사에서 가려진 여성작가들, 가부장적인 추상표현주의 궤도에서 잭슨 폴락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졌던 자넷 소벨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1944년경 브루클린 브라이튼비치 아파트에서 작업 중인 자넷 소벨 Courtesy of Gary Snyder Fine Art, NY
자넷 소벨은 1893년 현재의 우크라이나 에카테리노슬라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니 올레초프스키(Jennie Olechovsky). 농부였던 아버지가 러시아의 유대인 학살 중 살해된 후 1908년 14살 때 조산사였던 어머니, 형제들과 엘리스아일랜드에 도착해 자넷으로 이름을 바꾼 후 브루클린의 브라이튼비치로 이주했다. 그녀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영어가 부족해 포기했다. 16살 때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 막스 소벨과 결혼해 5자녀를 두었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소벨이 그림을 시작한 것은 1937년 45세 할머니가 되어서였다. 소벨은 당시 아트스튜던트리그에 다니던 아들 솔(Sol)의 그림 한점에 대해 비판했고, 분노한 아들은 붓을 버리고, 엄마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말했던 거스로 전해진다. 이에 소벨은 우편물, 세탁소에서 딸려온 카드보드, 심지어는 손녀가 그린 그림까지 보이는 표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스튬 쥬얼리 공장에 다니는 남편에게서 얻은 붓, 에나멜 물감, 유리 피펫 등 다양한 용구를 사용했다. 그녀의 창의력이 분출했던 시기였다. 소벨이 캔버스를 기울이고 속건성 에나멜 물감을 사용해 대리석같은 표면을 구현했다. 이 기법은 초현실주의의 기법에 비유되었다. 소베은 “나는 내가 느끼는 것만 그린다”고 답했다.
솔은 어머니의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고, 막스 에른스트, 마크 샤갈 등 화가에서 철학자 존 듀이까지 작품을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다. 1946년 시드니 재니스는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 신문에 "자넷 소벨은 궁극적으로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초현실주의 화가중 한명으로 알려질 것"이라고 썼다.
Janet Sobel, Milky Way, 1945, Enamel on canvas, 44 7/8 x 29 7/8" (114 x 75.9 cm), Mueum of Modern Art.
1944년 소벨은 뉴욕의 푸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듬해엔 페기 구겐하임의 아트 오브디스센추리 갤러리(The Art of This Century Gallery)의 여성작가 그룹전 'Women'에 루이스 부르주아와 함께 참가했다. 그리고, 1943년부터 3년 연속으로 브루클린뮤지엄의 그룹전에서 전시했다. 1940년대 큰 성공을 거둔 후 가족과 뉴저지주 플레인필드로 이주해 공장을 운영하는 남편을 내조하며 드로잉 작업을 계속했지만,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다.
언론은 소벨을 할머니이자 주부라고 불렀고, 그 다음에야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미술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은 화가, 이민자, 여성이라는 아웃사이더는 주목을 받았다가 금방 잊혀졌다. 잭슨 폴락은 전형적인 화가 타입이었다. 물감이 묻은 작업복에 담배를 피우면서 바닥에 누운 캔버스 위를 오가며 물감을 뿌렸다. 그리고, 불륜을 즐기다가 드라마틱하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Janet Sobel, The Burning Bush, 1944. Oil on canvas, 30 × 22 in. (76.2 × 55.9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뉴욕타임스는 2021년 7월 30일 자넷 소벨의 사망기사를 '평가절하된 인물(Overlooked No More)'에 실었다. 유관순과 차학경의 사망기사도 실린 바 있다.
타임스는 "자넷 소벨이 종이 쪼각, 상자, 봉투 뒷면에 가장 잘 알려진 미술 스타일 중 하나인 드립 페인팅을 창안했을 때 45세였으며 미술 수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자신의 미술도구도 없었다"고 소개했다. 소벨은 붓을 사용하는 대신 물감을 표면에 뿌리거나 유리 피펫을 사용해 물감이 떨어지는 것을 제어했으며 때때로 물감을 옮기기 위해 진공청소기를 사용한 결과 형태와 모양의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전면적인 구성(allover composition)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담배를 물고 작업 중인 잭슨 폴락. PhotoL Martha Holmes
미술역사가들은 소벨의 즉흥적인 회화 방식이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특징이라고 말하지만, 이 운동의 창시자로 명성을 얻은 드립 페인팅으로 유명한 화가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라고 전했다. 한편, 소벨의 전문가인 아트딜러 개리 스나이더(Gary Snyder)씨는 뉴욕타임스에 “폴락처럼 드립 페인팅을 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놀랍게도 소벨이 그보다 먼저 드립 페인팅을 했다...소벨은 잭슨 폴락 이야기에서 주석(footnote)”이라고 말했다.
Janet Sobel, Untitled, ca. 1946–48. Oil and enamel on canvas, 18 × 14 1/2 in. (45.7 × 36.8 cm). San Diego Museum of Art.
당대의 파워 미술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와 잭슨 폴락도 소벨의 그림을 직접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버그는 그의 칼럼 "American Type Painting"(1955)에서 "폴락과 나 자신은 이 그림을 다소 은밀하게 존경했다....나중에 폴락은 이 그림이 그에게 인상을 남겼다고 인정했다"고 썼다. 그린버그는 결국 "소벨을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고 언급하지만, 소벨의 작업을 "원시적"이고, 소벨은 "주부"로 특정지음으로써 폴락의 작업보다 열등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의 막대한 영향력으로 소벨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1949년 8월 LIFE지는 잭슨 폴락을 "그가 미국에서 생존한 가장 위대한 화가인가(Is he the greatest living painter in the United States?)"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한다.
Jackson Pollock, One: Number 31, 1950, Oil and enamel paint on canvas, 8' 10" x 17' 5 5/8" (269.5 x 530.8 cm), Museum of Modern Art.
잭슨 폴락의 드립 페인팅에 영감을 준 것에 대해서는 종종 소벨 대신 미 원주민 인디언과 폴락의 스승이었던 토마스 하트 벤튼(Thomas Hart Benton)이 언급된다. 일부 평론가들은 소벨의 작품에 대해 "훈련되지 않은(untrained)" 또는 "원시적인(primitive)"이라고 일축했다. 소벨은 평생 1천여점의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벨의 전시는 몇회 열리는데 그쳤으며, 학술계와 미술계 외부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소벨은 1968년 11월 11일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6년 소벨의 삶이 덴버미술관에서 열린 여성 추상표현주의 화가(Women Abstract Expressionism) 그룹전 카탈로그에 소개됐다. 메닐 컬렉션의 특별전 'Janet Sobel: All-Over'은 폴락에게 영향을 준 무교육의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 여성 화가 자넷 소벨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천재 화가와 두 여인 <1> '미국의 반 고흐' 잭슨 폴락
*천재화가와 두 여인 <2> '잭슨 폴락의 구원자' 리 크래스너
*천재화가와 두 여인 <3> '뉴욕화단의 팜므 파탈' 루스 클리그만
*잭슨 폴락 회고전(1934-1954)@MoMA, 3015
*빵굽는 화가 잭슨 폴락 요리책 Dinner with Jackson Pollock 출간
*Artist and Music (3) 잭슨 폴락(Jackson Pollock)과 재즈
*추상회화의 선구자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구겐하임뮤지엄, 2018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