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여왕들 (3) '베를린의 모나리자' 네페르티티(Nefertiti)
Queens of Egypt
고대 이집트의 여왕들 <3>네페르티티 Nefertiti
브루클린뮤지엄 아케나텐 & 네페르티티 부조 전시
2019년 3월 1일-9월 2일
@National Geographic Museum, Washington D.C.
Head And Shoulders Of A Sphinx Of Hatshepsu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집트의 여왕들' 연재
<1> 내셔널지오그래픽 뮤지엄 특별전(워싱턴 D.C.)
<2> 하트셉수트(Hatshepsut)
<3> 네페르티티(Nefertiti)
<4> 네페르타리(Nefertari)
<5> 클레오파트라(Cleopatra VII)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일명 '윌버 플라크(The Wilber Plaque)', 브루클린뮤지엄 3층 Brooklyn Museum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는 네페르티티(Nefertiti, c.1370 – c.1330 BC)가 꼽힌다. 아니, 네페르티티는 세계 최고의 미녀로 꼽힌다. 네페르티티는 기원전 14세기 제 18왕조 아케나텐 왕(Pharaoh Akhenaten)의 큰 왕비(Great Royal Wife)이며, 소년왕 투탕카멘(Tutankhamun)의 계모이자 장모다.
우아한 곡선의 짙은 눈썹, 날씬한 코, 도톰한 입술, 날렵한 턱과 긴 목선, 그리고 미스테리한 눈매와 야릇한 표정은 오늘날 화장품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의 극치다. '나일의 여왕(Queen of the Nile)'라는 별명이 붙은 네페르티티, 그 이름도 "아름다운 이가 오셨도다"라는 뜻이다. 흉상 덕으로 네페르티티는 클레오파트라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고대 이집트의 여왕으로 남았다.
이집트와 독일에서 발행한 네페르티티 우표
베를린 이집트뮤지엄(Ägyptisches Museum und Papyrussammlung)의 소장품인 네페르티티 흉상은 '베를린의 모나리자'로 불리운다. 2009년부터 베를린 노이에스 뮤지엄(Neues Museum)에 전시해온 네페르티티 흉상은 연간 100만명의 관람객을 끌고 있는 뮤지엄의 스타다.
네페르티의 고국 이집트와 그녀의 흉상을 소장한 독일에선 네페르티티 우표를 여러차례 발행했으며, 네페르티티는 소설, 영화, 음악까지 영감을 주었다. 지난해 가수 비욘세(Beyoncé)는 네페르티티 이미지를 모방한 뮤직비디오와 T셔츠를 제작했고, 리한나(Rihanna)는 네페르티티 분장으로 보그(Vogue)지 커버에 등장했다. 독일 작가 이자 겐즈켄(Iza Genzken)과 미국 작가 프레드 윌슨(Fred Wilson)도 네페르티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네페르티티에 영감을 받은 작가 이자 겐즈켄(Isa Genzken), 무제, 2012/ 비욘세(Beyoncé)/ 리한나(Rihanna)
독일은 어떻게 이집트 미녀 네페르티티를 모시게 되었을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고대 이집트 유물 발굴에 혈안이 되어 있던 1912년 루드비히 보르하르트(Ludwig Borchardt)가 이끄는 독일 고고학 발굴단이 텔엘 아마르나(Tell El Amarna) 유적지 터트모세(Thutmose)의 작업실에서 나왔다. 왕궁 조각가였던 터트모세는 1345년경 25세의 네테르티티를 모델로 흉상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2년 당시 발굴된 유물은 이집트와 독일이 반반씩 나누기로 동의했었다. 그런데, 보르하르트는 네페르티티 흉상 사진을 침침한 조명 아래서 보여주며 별것 아닌 것처럼 눈속임 후 독일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네페르티티가 처음 베를린에서 공개된 후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독일은 네페르티티 흉상을 감추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메르커스 카이젤바흐(Merkers-Kieselbach)의 소금광산에 보관했다. 2009년부터는 베를린 노이스뮤지엄에서 전시해왔다.
이집트고등유물위원회는 독일정부에 지속적으로 약탈된 네페르티티를 반환하라고 요구해왔다. 주간 타임(Time)지는 네페르티티 흉상을 '톱 10 약탈 문화재'에 꼽았다. 현재 워싱턴 D.C.의 내셔널지오그래픽뮤지엄의 '이집트의 여왕들(Queens of Egypt)'에 전시 중인 네페르티티 흉상은 복제품이다.
네페르티티 부조, ca. 1353–1336 BC.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이집트 갤러리 #122, The Met Museum
네페르티티는 누구인가?
출생 배경은 확실치 않으나, 아케나텐의 친척이라는 설과 '아름다운 이가 오셨도다'라는 이름 때문에 외국인(시리아 공주)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네페르티티는 15세 즈음 아케나텐(본명 아멘호텝 4세)와 결혼해 6명의 딸을 낳았다.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에 네페르티티의 딸 안케세나멘(Ankhesenamun)이 이복 동생이자 9살에 왕위에 오른 투탕카멘(Tutankhmun)과 결혼한다. 따라서 네페르티티는 투탕카멘의 계모이자 장모가 된다.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석상, 루브르뮤지엄 소장. The Louvre
물론 아케나텐에겐 많은 왕비(첩)들이 있었지만, 네페르티티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녀에게 정치, 종교적인 권한을 줄 정도로 신뢰감이 돈독했다. 아케나텐왕은 이전의 관습을 거부하며 새로운 이집트로 만들었다. 아케나텐은 통치 6년 때 수도를 테베(Thebes)에서 엘 아마르나(El Amarna)로 이전했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시작한다. 전세대까지 이집트는 아문/아멘(Amun/ Amen, 바람과 공기의 신)을 비롯,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는 다신교를 믿었다.
아케나텐이 왕위에 올랐을 때 아문교 제사장들은 왕들보다 더 부유하고, 파워풀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아케나텐은 태양 원반을 상징하는 아텐(Aten)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는 획기적인 전환을 한다. 이는 파워풀해진 제사장들을 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이기도 했다. 아테니즘(Atenism)을 국교로 하면서 신전벽에 새겨진 아문신의 흔적을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아케나텐 거상(왼쪽)/ 아케나텐, 네페르티티와 공주들의 모습을 담은 석비, 카이로 이집트뮤지엄
원래 아케나텐(Akhenaten)의 이름도 아멘호텝 4세(Amenhotep IV, '아문은 만족한다'는 의미)였지만, '아텐에 효과적인'이라는 의미의 아케나텐으로 솔선수범 개명하게 된다. 왕비 네페르티티도 파라오를 따라 '아름다움은 아텐의 미인들이요, 아름다운 자가 오셨도다'는 뜻의 이름 네페르네페루아텐-네페르티티(Neferneferuaten-Nefertiti)을 쓰기 시작했다.
네페르티티는 아케나텐과 나란히 태양 원반을 상징하는 아텐에 제사를 지낼 때 신과 시민들의 다리 역할까지 했다. 또한, 전쟁 때는 파라오의 왕관을 쓰고, 적을 공격하는 모습, 전차를 직접 이끄는 모습도 묘사되어 왕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케나텐은 '왕들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우는 테베의 카르낙 신전(Karnak)에 네르페티에게 헌사하는 사원까지 지어주었다. 네페르티티는 절세의 미녀였지만, 남편 아케나텐과 함께 종교개혁을 진두지휘한 인물임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아케나텐왕, 네페르티티 왕비와 세 공주, 베를린 이집트뮤지엄/노이스뮤지엄 소장
아케나텐 재위의 이집트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융성한 시기였다. 아케나텐, 네르페테테 왕가도 행복했다. 사원의 벽화와 부조에는 왕과 왕비가 키스하는 모습, 전차를 함께 탄 모습, 공주들과의 행복한 일상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후대 르네상스 미술의 성가족(Holy Family)'를 연상시킨다.
왜 아케나텐과 네르페티티의 머리을 길쭉하게 표현했을까? 아케나텐은 다신교에서 유일신으로 종교개혁을 과감하게 펼쳤고, 미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미술 풍조는 당시 수도 이름을 딴 '아르마나 미술(Armana Art)'이라 불리운다. 아르마나 미술은 인물을 긴 두개골과 긴 목, 날렵한 이마와 코, 돌출된 턱, 큰 귀와 입으로 묘사했다. 엘 그레코(El Greco)와 모딜리아니(Modigliani)를 상상해 보시라. 아케나텐 재위 시절엔 과장된 표현주의, 상징미술이 풍미한 셈이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함께 방대한 고대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브루클린뮤지엄은 1973년 특별전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태양왕 시대의 미술(Akhenaten & Nefertiti: Art from the Age)'을 열고, 170여점을 소개했다. 현재 브루클린뮤지엄 3층 이집트 갤러리엔 네페르티티 부조 몇점을 감상할 수 있다. 메트뮤지엄보다 튼실한 네페르티티 컬렉션이다.
브루클린뮤지엄에 전시 중인 네페르티티 부조. Brooklyn Museum
아케나텐은 17년간(BC 1353-BC 1336) 통치했다. 아케나텐 재위 12년 즈음해서 네페르티티는 파라오에 대등한 섭정자의 지위에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1336-34년 경 아크나텐의 사망 후 네페르네페루아텐(Neferneferuaten)이 2년간 남장하며 이집트를 통치했다는 추정도 있다. 또한, 이름을 스멘카레(Smenkhkare)로 개명한 후 파라오의 지위에 올랐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무튼, 네페르티티는 아케나텐 사망 6년 후 흔적없이 사라지게 된다. 이즈음은 아텐교가 쇠락하고, 아문교가 복귀하는 때이다. 아케나텐 재위 시절 억압됐던 아문교 신관들이 권력을 휘둘렀을까? 이 때문에 네페르티티가 망명했을 가능성도 보인다.
Fred Wilson(1954- ). Grey Area (Brown version), 1993. Paint, plaster and wood, Brooklyn Museum
네페르티티의 무덤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1898년 룩소(Luxor)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의 아멘토프 2세(KV35)에서 발굴된 두명의 여성 미이라 중 젊은 미이라(Younger Lady Mummy)가 네페르티티일 것이라는 기대에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DNA 조사 결과 이 미이라는 네페르티티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네페르티티의 딸과 결혼한 이복아들인 소년왕 투탕카멘도 본명은 '아텐교'를 숭배하는 이름 투탕카텐(Tuntankhaten, 아텐의 살아있는 이미지)이었지만, 왕위에 오른 후엔 이름을 투탕카멘(Tutankhamun, 아문의 살아있는 이미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버지 아케나텐의 종교개혁을 전복시키며 아문교를 복구하게 된다.
Queens of Egypt, National Geographic Museum, Washington, D.C.
Queens of Egypt
National Geographic Museum:1145 17th Street NW, Washington, D.C
개관시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제외)
티켓: 일반($15), 학생/군인/62세 이상($12), 5-12세($10), 4세 이하(무료)
https://www.nationalgeographic.org/events/vis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