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큐레이터: 정도련 M+ 부관장
2019년 개관할 홍콩의 현대미술관 M+(엠플러스)의 부관장 겸 수석 큐레이터 정도련(Doryun Chong)씨가 최근 온라인 미술저널 Artsy에 의해 마씨밀리아노 지오니 뉴뮤지엄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류 휘트니뮤지엄 큐레이터와 함께 2016년 가장 영향력있는 큐레이터 20인에 선정됐다.
정도련씨는 올해 자매 미술관인 M+ 파빌리온의 개관전 홍콩작가 창킨와(曾建華) 개인전 'TSANG KIN-WAH: NOTHING'으로 기획력을 공인받았다. 정도련씨는 2015년 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 스텔라 퐁과 홍콩관 커미셔너로 창킨와의 작품을 소개했다. 정도련씨는 M+로 스카웃되기 전 뉴욕현대미술관(MoMA) 회화조각부의 부큐레이터로 일했었다. 2009년 한인 최초의 MoMA 큐레이터로 임명됐을 때의 인터뷰를 플래시백한다.
*다음 기사는 2009년 8월 28일 뉴욕중앙일보에 게재된 필자와의 인터뷰를 보완한 글입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최초의 한인 큐레이터
정도련(Doryun Chong)씨
'세계미술의 메카’ 뉴욕, 그중에서도 ‘현대미술의 센터’라 불리는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 회화조각부의 부큐레이터 정도련(36·사진)씨. 그는 MoMA 80년 역사상 최초의 한인 큐레이터다.
지난 6월부터 MoMA 근무를 시작한 정도련씨는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의 아트 바젤, LA카운티미술관의 한국 현대작가 12인전 오프닝에 참가한 후 일본까지 출장을 다니며 분주한 3개월을 보냈다. 29일은 정씨의 MoMA 근무 100일째 되는 날이다. 오는 11월 7일 80세를 맞아 부산한 MoMA에서 뛰고 있는 정씨를 만났다.
아시아 미술 연구 기획
-뉴욕, MoMA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뉴욕이란 곳이 미술계의 중심이기도 하고, MoMA의 높은 명성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좀 더 사회적, 공공적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부큐레이터의 역할은.
“전시 기획과 컬렉션이 중요한 일이며, 매일매일 해야하는 행정업무도 큰 몫을 차지한다. 나의 전공이자 초점인 현대미술, 즉 20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미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MoMA뿐 아니라 미술계의 대부분을 아직도 점령하고 있는 서구 중심 미술의 바깥, 즉 아시아 등지의 미술 경향과 담론 등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MoMA 측에서도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
-80주년을 맞은 MoMA의 특별 행사는.
“11월에 80주년 기념 행사를 열 예정인데, 자세한 것은 추후에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MoMA는 어떻게 오늘날 세계미술의 중심이 되었나.
“MoMA는 1929년 세 사람의 특별한 여인들인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 릴리 P. 블리스, 메리 퀸 설리반에 의해 창립됐다. 오늘날 역동적인 큐레이터와 헌신적인 이사들의 힘이다. MoMA의 소장품은 1880년대 혁신적인 유럽미술에서 시작해 현재까지를 망라하며, 전통적인 매체에 영화와 산업 디자인도 포함하고 있다. 지금 뮤지엄이 소장한 근현대 미술품은 15만점에 이르고 있다.”
Installation view of Tokyo 1955–1970: A New Avant-Garde at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November 18, 2012 to February 25, 2013). Photo by Jonathan Muzikar.
-MoMA에서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같은 센터피스라면.
“역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이 아닐까? 세계 전역에서 이 그림을 보기 위해 MoMA까지 순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MoMA가 소장한 한인의 작품은.
“확실한 수는 아직 파악하지 못 하고 있으나 이우환, 이응로, 서도호, 조승호씨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까지 MoMA 전시에 참가한 한인 작가는.
“MoMA는 전시 작가의 국적으로 기록을 하지 않아서 그 동안 몇 명이 전시를 했는 지는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1997년 이불, 2004년 진 신씨가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전시하는 ‘프로젝트’ 시리즈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
-MoMA의 최대 관람객이 본 특별전은.
“2007년 우리 시대의 저명한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 27점을 소개한 회고전 ‘리처드 세라의 조각: 40년’을 70여만명이 봤다."
'백남준 작품 보고 충격'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 언제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나.
"여러가지 꿈이 자주 바뀌었던 것 같다. 건축가를 꿈꾸기도 했었고, 늘 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큐레이터는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진입하게 된 일이다. 뒤돌아 보면 참 나에게 잘 맞는 일이구나 느껴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뮤지엄에 대한 기억은.
“어렸을 때 부모님 따라 미술관을 많이 다녔다. 지방에서 자주 옮겨 다니며 살았었는데 아버님이 특히 가족을 데리고 여기저기 명소를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다. 경주 국립박물관을 자주 갔었으며, 중학교 때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했을 때 백남준의 대형 설치작인 ‘다다익선’을 보고 놀랐다.”
Video projections, sound, wood, stainless steel, soil, and text installation, 2016, Dimensions variable©Tsang Kin-Wah
-직업으로서 큐레이터의 가장 큰 매력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들이 MoMA 등 기관의 사명에 공헌하고, 기관 역사의 일부가 되어서 보존된다는 것. 결국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다.”
-큐레이터를 지망하는 한인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항상 호기심을 갖고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화려해 보일 수도 있고,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서 외롭게 연구하고, 제대로 된 전시와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대중의 반응을 걱정해야 하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 9 to 5의 직업이 아니고 항상 미술, 문화, 사회, 정치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숙고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돈 벌기 위해서 하는 직업은 절대 아니다."
정도련 Doryon Chong
서울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199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미술사·인류학·비교문학을 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과 버클리미술관을 거쳐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큐레이터로 뉴욕 작가 서도호씨와 마이클 주의 전시를 기획했다. 2003년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의 큐레이터로 중국작가 황용핑의 회고전과 일본작가 쿠도 테츠미 회고전을 기획했다. 2006년엔 부산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참가했다.
<Updte> MoMA에서 Bruce Nauman: Days (2010), Projects 94: Henrik Olesen (2011), Tokyo 1955-1970: A New Avant-Garde (2012)를 기획했다. 2013년 9월 홍콩의 미술관 M+의 수석 큐레이터(학예실장, Chief Curator)로 스카웃됐으며, 2016년 1월부터 부관장(Deputy Director)을 겸하고 있다. 2015년 구겐하임뮤지엄의 휴고보스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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