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헤이븐: 미술관 2곳, 도서관 2곳, 그리고 조개피자
미 대통령들, 대법관들, 억만장자 등 파워 엘리트들을 무수히 배출한 예일대가 자리한 커네티컷주 뉴헤이븐은 뉴욕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다. 성당같은 도서관과 최첨단의 현대식 도서관, 루이스 칸이 설계한 예일대 미술관과 영국 미술관의 놀라운 컬렉션에 빠졌다가 프랭크 페페에서 뉴욕에선 맛보기 힘든 조개 피자로 여행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33> 미술관 둘, 도서관 둘, 그리고 조개피자
뉴헤이븐(New Haven, CT)
예일대미술관에서 본 뉴헤이븐 전경. 중앙에 하크니스 타워를 비롯 예일대 캠퍼스 건물들. 예일대 로고엔 히브루어가 있다.
미국의 많은 도시들은 유럽을 카피한 것을 인증하듯 NEW가 접두사처럼 부착되어 있다. 뉴욕이나 뉴암스테르담보다는 어쩐지 낭만적인 도시 이름 '뉴헤이븐(New Haven)'. 말 그대로 '새로운 안식처'라는 뉴헤이븐은 커네티컷주 롱아일랜드 사운드에 면한 항구도시다. 하지만, 아이비 리그 중 하나인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를 빼 놓은 뉴헤이븐은 속 없는 만두 껍질에 불과할 것이다. 뉴저지주 프린스턴처럼 뉴헤이븐은 대학이 중심인 교육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하버드(1636년 창립)보다는 뒤늦지만, 예일대(1701)는 동부의 다른 대학교 유펜(1740), 프린스턴(1746), 컬럼비아(1754), 그리고 뉴욕대(1831)에는 훨씬 앞선 대학이다. 그 만큼 캠퍼스 건물도 고풍스럽다. 대학교 고딕 양식(Colleiagte Gothic)으로 운치가 있어서 마치 유럽의 어느 고도시에 들어간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이네키 도서관 플라자의 이사무 노구치 조각과 알렉산더 칼더 조각이 서있는 우슬리 홀.
모든 것이 예일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뉴헤이븐의 볼거리들은 예일대의 이름을 달고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만큼이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이 설계한 예일대미술관과 영국미술관을 비롯, 성당같은 스털링 도서관과 대리석의 새 도서관 '바이네키 라이브러리'는 뉴헤이븐의 자부심이다. 미술과 책, 예일대의 학풍에서 연극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 폴 뉴만과 메릴 스트립이 연기를 닦은 예일대의 극장도 뉴헤이븐의 자랑거리다.
예일대 미술관 창 너머의 예일대 올드 캠퍼스.
그리고, 눈이 호강하고, 발은 피곤한 하루 여행을 마감하는 먹거리로는 피자를 추천한다. 뉴욕, 특히 브루클린은 '피자의 성지'인데, 왜 뉴헤이븐에서? 프랭크 페페 피자리아에는 싱싱한 조개를 토핑으로 올리는 클램 피자가 명물이다. 옆에 지점을 냈어도 늘 1시간 이상 기다려야하는 곳. 뉴헤이븐에 간 보람을 위장 속 깊이 느낄 수 있는 만족감, 당일치기 여행의 화룡점정이다.
# 예일대학교 Yale University
성당같은 스털링 메모리얼 라이브러리.
뉴욕은 1624년 설립됐고, 뉴헤이븐은 14년 뒤인 1638년 영국 청교도에 의해 세워졌다. 예일대는 1701년 창설되었으나, 여학생의 입학이 학부에 허용된 것은 1969년에 이르러서다. 캠퍼스 부지가 16에이커에 이른다. 신기한 것은 예일대의 로고에 히브루어가 있다는 점. 방패 모양에 라틴어로 빛과 진실(Lux et veritas)을 뜻하는 히브루어가 씌여있다. 서울대학교 로고처럼 라틴어는 공통이지만, 그토록 오래 전 예일대 로고에 유대어가 들어가 있는 사연은 알 수 없다. 학교 이름은 영국인 상인이자 노예 무역상이었던 엘리후 예일(1649-1721)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에노크 씨만의 엘리우 예일 초상화, 예일대미술관 소장
예일대에서는 대통령 5명을 배출했다. 윌리엄 H. 태프트, 제럴드 포드, 조지 부시 부자, 빌 클린턴까지 5명으로 하버드대(7명)의 뒤를 잇는다. 연방 대법관은 19명, 생존 억만장자는 20명, 노벨상 수상자 57명, 맥아더 천재상 78명, 로즈 장학생 247명에 이른다. 예일대도 하버드, 컬럼비아, 조지타운대 등처럼 노예무역가나 노예제 옹호자들로부터 기부받고, 노예를 고용해 공사했던 과거사가 있는 예일대도 최근 미 대학가의 과거 청산 바람에 동조하고 있다.
# 예일대 미술관 Yale University Art Gallery
영국미술관 창으로 바라본 예일대 미술관(구관)의 전경.
예일대학교는 1832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미술관을 오픈했다. 하버드대의 첫 미술관은 1895년이었다. 늘 하버드에 이어 2등인 예일이 미술관 개관은 앞서갔다.
1928년 에거톤 스와투트(Egerton Swartwout)가 피렌체의 네오고딕 양식으로 건축한 구건물(Old Yale Art Gallery)과 1953년 루이스 칸 설계로 연결된 신관(Louis Kahn building)에 소장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1층에 야외 조각 갤러리, 발코니 조각 갤러리도 시원하다.
헨리 무어의 'Draped Seated Woman'(앞)과 아리스티드 마이욜의 'L’Air'.
소장품은 20만 여점에 이르며 빈센트 반 고흐의 걸작 '밤의 카페(Night Cafe)'를 비롯, 그리스 도기 거장 베를린 화가 등 고대 미술부터 아프리카, 이탈리아 비잔틴, 르네상스 미술, 인상주의, 근대, 현대 미술품까지 소장품이 메이저 뮤지엄급이다.
예일대 미술관의 마르 로스코 벽. 예일대 미술관은 마크 로스코의 초기작 3점과 색면화 6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 벨리니, 벨라스케즈, 렘브란트, 피터 폴 루벤스에서 뒤샹, 몬드리안, 모란디,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의 벽과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 3점이 걸린 벽은 눈이 부실 정도다. 윌렘 드쿠닝, 프란츠 클라인, 루이스 부르주아, 조안 미첼, 헬렌 프랭켄탈러, 그리고 장 미셸 바스퀴아까지 튼실한 컬렉션을 자부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파리 생피에르 광장'(왼쪽)과 '밤의 카페'.
삼국시대 토기에서 고려청자까지 한국 고미술품도 전시하고 있다. 반 고흐가 숭배했던 '만종'의 화가 밀레의 '별이 빛나는 밤'이 걸려있는데, 다분히 반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MoMA)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뮤지엄 숍이 조악한 편으로 입구 벽에 엽서 정도만 팔고 있어서 아쉽다. 입장 무료. http://artgallery.yale.edu
Louis Kahn (1901-1974)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처럼 여성과의 스캔달을 끼고 살았던 루이스 칸(1901-1974)은 펜스테이션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그의 가족은 이틀이 지나서야 사망통보를 받았다. 그의 세번째 부인 아들 나타니엘 칸이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는 다큐멘터리 'My Architect'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루이스 칸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러시아계 유대인 소년인 루이스는 세살 때 석탄불에 매혹되어 만지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다섯살 때 미국으로 이민왔다. 뉴욕 미드타운의 레버하우스 빌딩과 2012년 사후에 완공된 루즈벨트 아일랜드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4대자유공원이 그의 설계작이다.
# 예일대 영국미술관 Yale Center for British Art
영국미술관 내부의 레이아웃. 어느 앵글에서도 볼 수 있도록 설계, 전시되어 있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예일대미술관 신관은 기술적인 혁신이 담긴 그의 첫번째 걸작으로 평가되지만,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해 보인다. 루이스 칸의 유작이 된 건너편의 영국미술관도 겉에서 보기엔 한국의 주상 복합 아파트 건물처럼 평범하게 보인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육중한 칼럼.
원통같은 기둥에 갤러리 공간들이 서로를 향해 창으로 오픈되어 있다. 건축자재도 외부는 매트스틸과 반영유리, 내부는 대리석, 백상수리나무, 벨기에산 린넨을 혼합했다고. 루이스 칸이 사망한 후인 1974년 완공된 후 1977년 공식 개관했으며, 2016년 확장 보수 공사를 거쳐 다시 오픈했다.
롱 갤러리는 주제별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966년 예일대 졸업생 폴 멜론이 소장품을 기부하면서 설립된 예일대 영국미술관은 영국 바깥에서 가장 규모가 큰 컬렉션(회화 2000여점, 조각 200여점)을 자랑한다.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주제별, 작가별, 연대별로 전시해놓았다. J.M.W. 터너, 토마스 갠스부르, 조지 스텁, 존 콘스타블, 루시안 프로이드, 프란시스 베이컨, 데이빗 호크니 등 영국 출신 화가에서 한스 홀베인, 피터 폴 루벤스, 앤소니 반 다이크, 존 싱글턴 코플리, 제임스 맥닐 휘슬러 등 영국에서 활동한 미술가들의 작품도 소개한다. 1080 Chapel St. http://britishart.yale.edu
# 예일대 스털링 메모리얼 라이브러리 Sterling Memorial Library
스털링 메모리얼 도서관과 예일대 건축과 출신 마야 린의 '여성 탁자(The Women's Table)'.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성당같은 도서관. 스털링 메모리얼 라이브러리(SML)는 유럽 중세 도시 속으로 들어간듯한 환상적인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1918년 사망하면서 유산을 예일대에 기증한 예일 출신 뉴욕 변호사 존 W. 스털링(법률회사 셔만&스털링)의 유산으로 건축됐다. 1931년 완공될 때까지 스털링의 기부금은 2900만 달러에 달했다.
스털링 도서관 내부가 성당같다.
설계는 제임스 갬블 로저스(James Gamble Rogers), 컬럼비아대, 노스웨스턴대 등 대학 캠퍼스 건물 전문 건축가다. 예일대의 상징인 하크네스 타워도 설계했다. 스털링 메모리얼 라이브러리 타워에는 16개층의 서고에 400여만권이 소장되어 있다고. 내부의 장식과 이솝 우화 중 '사자와 쥐' 이야기를 묘사한 스테인드글래스가 있으며, 1층의 안뜰(courtyard)도 수도원처럼 운치있다.
스털링 도서관
기회가 된다면, 엘리베이터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당같은 도서관 구성구석을 구경하고 싶다. 앞 마당에 워싱턴 D.C.의 월남전 추모벽으로 스타가 된 예일대 출신 중국여성 건축가 마야 린(Maya Lin)의 물이 흐르는 조각 'The Women's Table'이 설치되어 있다.
# 예일대 바이네키 희귀도서 & 원고 도서관 Beinecke Rare Book & Manuscript Library
버몬트에서 온 대리석이 햇빛을 받으면, 호박색으로 변한다는 바이네키 도서관 외관.
1963년 개관한 신 도서관도 예일대 캠퍼스의 명물이 되었다. 주변의 고딕/네오 클래시컬 스타일 캠퍼스 건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는 빌딩. 바이네키 희귀도서&원고 도서관은 유명 건축회사 스키드모어, 오윙스, 메릴(Skidmore, Owings & Merril)의 고든 번샤프트(Gordon Bunshaft)가 설계했다.
바이네키 도서관 내부의 희귀도서 서고는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유리관 내에 소장되어 있다.
이 건축회사는 원월드트레이드센터를 비롯, 세계 최고층 빌딩인 듀바이의 부르지 칼리파, 한국의 63빌딩과 삼성 타워팰리스를 설계했다. 바이네키 도서관은 창문이 없이 큐브가 모자이크된 것처럼 설계됐다. 바닥에 장롱다리를 부착하고 약간 올라 서있는 6층 건물이다.
외관 벽은 버몬트주 댄비 돌산에서 온 대리석으로 화창한 날 햇빛을 통과시키며 호박색으로 변한다. 창문보다는 투사력이 낮아 고서를 보관하는데 효율적이다. 내부 센터에는 유리벽으로 된 서고가 자리해 있다. 2005년 한 저명한 골동품 거래상이 희귀 도서 안의 지도를 칼로 성공적으로 자른 후 열람실에 도구를 떨어트리는 바람에 발각됐다. 이후 경비가 강화됐다고. 서고를 유리로 한 것도 경비를 위한 것인듯.
구텐베르크 성경
1454년 인쇄된 구텐베르크 성경(세계 48권, 뉴욕공립도서관 소장 포함)을 비롯, 찰스 디킨스, 벤자민 프랭클린, 괴테의 오리지널 원고 등 각종 희귀도서, 지도, 팜플렛 등 희귀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별전도 열린다. 난방, 냉방 시설 현대화를 위해서 보수공사에 들어가 지난해 다시 개관됐다. 도서관 앞 깊이 파인 플라자에 이사무 노구치의 조각( 정원, The Garden) 이 설치되어 있다. 시간을 상징하는 피라미드, 태양을 상징하는 원과 기회를 상징하는 큐브로 구성된 조각. 121 Wall St. http://beinecke.library.yale.edu
# 프랭크 페페 피자리아 Frank Pepe Pizzeria Napoletana
뉴헤이븐의 명물 프랭크 페페 피자리아. 옆에 별관을 열었는데도, 여전히 본관의 줄은 길다.
뉴헤이븐에도 '리틀 이태리(우스터 스트릿)'가 있고, 명물 피자리아가 성업 중이다.
20여년 전 프랭크 페페 피자리아(Frank Pepe Pizzeria)에서 뉴헤이븐 스타일 조개 피자를 처음 맛보았다. 싱싱한 조개살에서 흘러나오는 즙과 쫄깃하게 씹히는 바다의 향미에 반해 버렸다.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이나 올드라임 오가는 길에 들러서 먹곤 했다. 그러다가, 전화로 주문 후 테이크 아웃해 자동차 안에서 먹으면서 지루한 I-95를 버티면서 시간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토마토 소스(red)를 주문했는데, 살짝만 얹었다. 화이트가 조개의 맛을 더 음미할 수 있다.
프랭크 페페에선 토마토 소스 클램 피자(red clam pie)보다 마늘과 올리브유 화이트 클램 피자(white clam pie)를 추천한다. 토마토 소스에 조개의 맛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 레드를 시켜도 뉴욕처럼 토마토 소스가 뒤범벅이 되지는 않는다. 뉴헤이븐 스타일의 피자는 뉴욕처럼 얄팍하며 석탄 오븐에 구어져 나와 크러스트가 바삭하다.
프랭크 페페의 피자 키친.
1925년 오픈한 프랭크 페페(*뉴욕 리틀 이태리의 롬바르디아/Lombardi's Pizza는 1905년 오픈)는 옆 주차장에 분점을 냈으며, 업스테이트 뉴욕 욘커스를 비롯 9개의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웃에 라이벌이 있다. 샐리즈 피자(Sally's Apizza)는 1938년 오픈했는데,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샐리즈의 팬이었고, 도날드 레이건 대통령은 페페의 팬이었다고 한다. 프랭크 페페에는 빌 클린턴,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어네스트 보그나인, 빌 머레이, 빈스 본 등 스타들이 다녀갔다. 157 Wooster St. New Haven, CT. 203-865-5762 http://www.pepespizzer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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