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소설가 스티븐 킹, '스탠드 바이 미' 본 후 로브 라이너(1947-2025)를 포옹한 이유
Stephen King: Why I Hugged Rob Reiner After Watching ‘Stand by Me’
자전적 소설 '시체' 원작 '스탠드 바이 미'
스티븐 킹, "울던 그 소년은 바로 나였다"

Stand by Me directed by Rob Reiner (Photo: Romy Reiner)
공포소설 대가 스티븐 킹(Stephen King, 78)이 비극적으로 사망한 영화감독 로브 라이너(Rob Reiner, 1947-2025)를 추모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스티븐 킹은 '나는 왜 '스탠드 바이 미'를 보고 로브 라이너를 안아주었나(Why I Hugged Rob Reiner After Watching ‘Stand by Me’)'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당시를 회고했다. 로브 라이너는 킹의 소설 '시체(The Body)'를 각색한 '스탠드 바이 미'(1986) 외에도 '미저리(Misery, 1990)'을 영화화한 인연이 있다. 라이너와 킹은 같은 해(1947)에 태어난 동갑이었다. 다음은 킹의 칼럼을 정리한 것이다.
이 경우에 난 기억보다는 감정을 더 믿고 싶다.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로브 라이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슬픔과 믿기지 않는 마음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나머지는...
로버트 스톤(Robert Stone,1937-2015, *소설가)이 "마음은 원숭이같다(the mind is a monkey, *心猿: 원래 불교 용어로 마치 나무 사이를 오가는 원숭이처럼 불안정하고 산만한 심리 상태)"라고 말했을 때처럼,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는 1985년 가을 '스탠드 바이 미'를 본 것 같다. 당시엔 내 소설 제목과 같은 '시체(The Body)'였다. 그는 비버리힐스 호텔 룸에서 내게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멀리서 록밴드의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전행적인 80년대 스타일의 밴드였다. 영화는 나를 더 순수한 시절이었던 1959년으로 데려다주었다.
당시 로브는 마치 골프장에서 막 온 사람처럼(어쩌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체크무늬 반팔 쳐츠에 카키색 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그가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을 나간 것이다. 나중에 그는 내가 영화를 좋아하지않을 경우 내 반응을 볼 수 없어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난 호텔 회의실에서 가져온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아 혼자 영화를 보고 있었다.
89분 짜리 영화를 보고 얼마나 깊이 감동했는지 나 스스로도 놀랐다. 많은 소설을 썼지만, '시체'는 내가 쓴 작품 중 유일하게 노골적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다. 그 아이들은 내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기찻길을 따라 걸어서 시체를 보러간 적은 없지만, 다른 장난을 치고 다녔다. 그 이야기는 내가 메인주 남부의 비포장도로에서 살았던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쓰레기장에 개가 있었는데, 이름은 초퍼(Chopper)가 아니었다. 정말 수영한 후 몸에 무진장 많은 거머리가 붙어있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고디 라챈스(윌 휘튼 역)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그리고, 우유값을 훔친 누명을 쓴 아이도 실제 있었는데, 이름은 크리스 체임버스(리버 피닉스 역)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엄마의 벨에어 자동차를 빌렸다. 훔쳤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내가 조수석에 앉아있었는데, 그는 우리 마을의 9번 국도를 시속 90마일로 달렸다. 그때 우리는 11살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로브의 손을 거치자 모든 것이 진실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재미 있는 부분은 정말 재미났고(barf-o-rama, 구토 장면 포함), 극적인 부분은 내 마음을울렸다.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었고, 휘발류 가격이 갤런당 25센트였던 시절 내 삶을 떠올리게 했다. 난 글쓰는 삶과 친구들의 삶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다. 친구들은 현재에 충실하며 특별한 목표없이 살았고, 어쩌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난 글쓰기를 선택했지만, 정말 아슬아슬한 선택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로브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를 껴안았다. 난 평소에 껴안는 사람이 아니고, 로브도 그런 경험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몸이 굳어지더니 영화가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라고 중얼거렸고, 우리는 서로 떨어졌다.
난 명백히 감정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난 제일 가까운 남자 화장실로 가서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 앉아있었다. 노스탈자는 가까이 마주하면 위험할 수 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후 로브와 좀 더 평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피드백을 물었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여운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실제 경험이 적임자를 만났을 때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로 탄생할 수 있는지 보며 감탄했다.

Misery (1990) directed by Rob Reiner based on Stephen King's novel
몇년 후 로브는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저리'의 시사회를 마련해주었다. 난 이 영화에도 똑같이 감탄했지만, '스탠드 바이 미'만큼 감정적으로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점은 로브가 유머와 서스펜스를 조합한 것이었다. 캐시 베이츠가 완벽하게 연기한 애니 윌크스가 폴 셸던에게 그들이 마실 샴페인이 '돔 페리-이그-논(Dom Per-IG-non)"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이다. 그녀에겐 아무도 발음을 제대로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로브는 그 부분을 완벽하게 포착했다.
한참 후에 로브가 거장 감독이 되었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던 간에, 우린 뉴욕에서 만났다. 그의 요청으로 난 도날드 트럼프에 대한 우리의 반감을 다룬 정치 다큐멘터리에 참여했다, 로브는 트위터에 쏟아진 비난과 욕설을 평소처럼 우아하게 감수했다(난 X라 부르지 않겠다, 그건 포르노 영화에나 어울리는 이름이니까) 그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자 사회 비평가였으며, 날카로운 풍자작가였다.
하지만, 크리스 체임버스가 울고 있는 고디 라챈스에게 "넌 언젠가 위대한 작가가 될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면 그 모든 것이 여전히 창백해진다. 울고 있던 그 소년은 바로 나였다. 그 장면을 만들어낸 사람은 로브 라이너였다.

Rob Reiner and Stephen K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