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ria Elisabeth Riva (1924-2025)

 

"엄마(디트리히)는 잔인하고, 교활한 나르시스트"

"아름답고, 유명하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는 없어"

 

MM2.jpg

딸 마리아 리바가 쓴 마를레네 디트리히 전기(Marlene Dietrich: The Life)/ 배우였던 마리아 리바

 

독일 출신 전설적인 영화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2-1992)의 외동딸 마리아 리바(Maria Riva)가 10월 29일 뉴멕시코주 길라에서 100세로 사망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마리아 리바 역시 영화배우로 활동했지만, 유명해진 것은 어머니의 사망 1년 후 출간한 전기 'Marlene Dietrich: The Life' 때문이기도 했다. 리바는 엄마를 잔인하고, 교활한 나르시스트였으며, 자식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유산을 쌓게 위해 이용했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노예처럼 지냈던 어린시절을 회고하면서 "권력이 항상 승리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무슨 일을 하던 아름답기 때문에, 유명하기 때문에, 강력하기 때문에 용서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마리아 리바의 엄마 디트리히는 1923년 독일 무성영화 '리틀 나폴레옹'의 단역으로 데뷔했으며, 같은 해 에밀 야닝스와 공연한 무성영화 '사랑의 비극' 촬영장에서 조감독 루돌프 지버(Rudolf Sieber)를 만났다. 이들은 그해 5월 결혼했고, 이듬해 12월 디트리히는 마리아 엘리자베스 지버를 낳았다. 

 

이후 디트리히가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마리아는 LA에서 자랐다. 하지만, 영어와 미국인을 저속하게 여겼던 디트리히는 딸을 늘 곁에 두고 싶어했다. 디트리히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감독은 조셉 폰 스텐버그였다. 두 사람은 콤비로 '푸른 천사(Blue Angel, 1930)' '모로코(Morocco, 1930)' '상하이 특급(Shanghai Express,1932)' '악마는 여인(The Devil Is a Woman, 1935)' 등 7편을 만들었다. 폰 스턴버그는 어린 마리아에게 'sound stage' 'make up' 'wardrobe department' 등 할리우드 용어를 알려주었고, 마리아는 엄마의 의상, 소품을 관리하고, 홍보 사진에 서명을 찍어주는일을 하며 촬영장을 지켰다. 디트리히의 의상 디자이너는 마리아에게 유니폼을 만들어주며 '마를레네씨의 시녀(attendant to Miss Marlene)'라 불렀다.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의 본명이 'Maria Daughter of Marlene Dietrich'로 알았다고 한다. 

 

디트리히는 성적을 문란했다. 폰 스턴버그 감독, 배우 모리스 슈발리에, 게리 쿠퍼,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주니어, 그리고 극작가 그레타 가르보의 연인이었던 여성 극작가 메르세데스 드 아코스타 등이 집에서 자고 갔다. 또한, 조지 S. 패튼 장군, 패션디자이너 콜레트, 일리노이주 주지사였던 애들레이 스티븐슨, 배우 율 브리너 등과도 연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JFK의 아버지 조셉 케네디와도 장기간 불륜 관계를맺었다. 

 

때문에 마리아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다. 디트리히는 종종 나이를 줄여서 말했고, 마리아는 자신의 나이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엄마는 여왕이었고, 아버지는 엄마의 집사였고, 남자들은 구혼자였고, 딸은 시녀였다. 디트리히는 마리아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두었다. 따라서 또래 친구도 없었다.  

 

1934년, 아홉 살 때 마리아는 폰 스턴버그 감독의 '주홍빛 황후(Scarlet Empress)'에서 디트리히가 연기한 캐서린의 어린 시절 역을 맡았다. 마리아는 10대에 여자 가정교사가 1년 넘게 거의 매일밤 성폭행을 해서 알콜중독자가 됐고, 자살충동까지 느꼈으며, 10대 후반에 잠시 결혼도 했다. 케첩과 버번 위스키를 마시고, 수면제를 사재기하던 삶도 독일 정신분석학자이자 반프로이트주의자인 카렌 호니의 저서 'The Neurotic Personality of Our Time'를 읽고 재기, 뉴욕으로 이주했다. 포덤대에서 연극 연출하던 중 무대디자이너 윌리엄 리바를 만나 1948년 결혼에 이른다. 

 

이후 리바는 CBS TV의 드라마와 광고 등 500여편에 출연했으며, 두번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아들 넷을 낳았으며, 1961년 막내가 태어난 후 양육에 집중하기 위해 연기를 중단했다. 리바는 가족과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해 엄마가 사준 뉴욕 집과 스위스를 오가며 생활했다. 이후 율 브리너의 권유로 뇌성마비 환자를 위한 텔레톤과 자원봉사 활동, 디트리히의 카바레 공연을 제작하기도 했다. 

 

2017년엔 디트로이트에 이민온 이탈리아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첫 소설 'You Were There Before My Eyes: A Novel'를 출간했다. 2018년엔 손자 J. 마이클 리바 주니어가 감독한 단편영화 '올 어보드(All Aboard)'에 출연하며 연기에 복귀했다.

 
?
  • sukie 2025.11.06 15:20
    마를레네 디트리히 사생활.
    디트리히는 제 어머니 시절의 배우라서 어머니를 통해서 자주 듣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영화를 참 좋아해서 신작 영화는 개봉이 되자마자 영화관에 가서 보시곤 했습니다. 다니엘 다류, 그레타 가르보, 디트리히 등을 나에게 말씀하시면서 행복해 하셨습니다. 나는 틈틈히 들으면서 그들의 이름을 익혔습니다.
    디트리히는 특히 눈썹이 가늘어서 기억이 잘 납니다. 그녀의 딸 마리아 리바가 어머니의 전기를 써서 출판해서 유명세를 탔다고 합니다. 특히 엄마인 디트리히를 잔인하다고 썼다고 합니다. 디트리히는 딸을 가정교사를 두고 교육시켰으며 많은 걸 배우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연예인이란 바쁜 생활 속에서 늘 딸을 염두에 둔걸로 압니다. 잔인함과는 거리가 먼 느낌을 받았습니다.
    엄마를 잔인하다고 스스럼 없이 쓰고 출판까지하는 딸 마리아 리바야말로 잔인하다고 사려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