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영화의 '드림 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laudia Cardinale, 87) 별세
Claudia Cardinale (1938-2025)
거장 비스콘티, 펠리니, 레오네, 헤르조크 영화 주연
독립적인 여성상...UNESCO 여성인권 친선대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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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엔 MM(마릴린 먼로), 프랑스엔 BB(브리지트 바르도), 그리고 이탈리아엔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있었다. 1950-6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의 스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laudia Cardinale, 87)가 9월 23일 파리 남쪽의 느무르(Nemours)에서 세상을 떠났다.
'8 1/2' '레오파드' '로코와 형제들' '표범' '피츠카랄도' '핑크 팬더' '옛날 옛적 서부에서' 등 150여편에 출연했던 카르디날레는 루키노 비스콘티, 세르지오 레오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찬사를 받으며 이탈리아 '드림 걸(dream girl)'로 극찬받았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카르디날레는 소피아 로렌,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함께 이탈리아의 섹스심볼이었지만, 보다 더 친근한 '동네 소녀'같은 페르소나로 인기를 얻었다.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
본명은 클로드 조세핀 로즈 카르디날레(Claude Joséphine Rose "Claudia), 1938년 프랑스 보호령 튀니지에서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18세에 튀니지의 미인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후 부상으로 베니스영화제에 참가하면서 비키니 차림으로 언론의 플래시를 받았다. 자신의 희망이 배우는 아니었지만,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타의
클로드 조세핀 로즈 카르디날레는 1938년 4월 15일, 프랑스 보호령 튀니지에서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 프란체스코 카르디날레와 욜란다 그레코의 딸로 태어났다. 튀니지에서 열린 미인대회에서 우승해 부상으로 베니스영화제에 참가했다가 비키니 차림의 사진이 언론에 실리며 주목을 받았다.
당초 클라우디아의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10대에 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 19살 때 런던에서 아들을 낳았다. 부모는 그녀의 아들을 남동생처럼 키우며, 8살이 되어서야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출산 후 남편이 될 프로듀서 프랑코 크리스탈디(Franco Cristaldi)를 만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라는 이름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The Leopard, 1963
카르디날레는 1961년 발레리오 줄리니 감독의 '가방을 든 여인(Girl with a Suitcase/La ragazza con la valigia)'으로 주목받았다. 음악으로 친숙한 이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다. 1963년엔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표범(The Leopard)'에 알랭 들롱(1935-2024)과 공연했으며, 같은 해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 1/2'에선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공연하며 이탈리아 시네마의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해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코미디 '핑크 팬더(The Pink Panther)'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1966년 자신을 키워준 크리스탈디와 라스베가스에서 결혼 후 아들을 입양했다. 카르디날레는 훗날 이 결혼식은 열리지 않았으며, 결혼 파티만 열렸다고 밝혔다. 2005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자서전 '나의 별들(Mes Étoiles)'에서 그녀는 아름다움은 배울 수 있으며, 비스콘티가 자신에게 아름다워지는 법, 신비로움을 키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썼다.

Fitcarraldo, 1982
1968년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서부극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에서 헨리 폰다, 찰스 브론슨과 공연했다. 뉴올리언스의 매춘부로 분한 카르디날레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길들여지지 않을 개성을 갖춘 여배우로 각인됐다. 실제로 그녀는 페미니스트 운동을 지지했으며, 2000년엔 UNESCO의 여성인권옹호 친선대사로도 활동했다.
1975년 크리스탈디와 헤어진 후 영화감독 파스콸레 스퀴티에리(Pasquale Squitieri)와 동거를 시작해 1979년 딸을 낳았다. 2017년 남편이 사망한 후부터는 아들, 딸과 함께 프랑스 느무르에서 살며 여성과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예술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다. 카르디날레는 이탈리아, 불어, 영어, 스페인어에 능통했고, 평생 하루에 두갑씩 피우는 골초였지만, 말년에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2023년 뉴욕현대미술관(MoMA)는 이탈리아 국립영화사 치네치타와 함께 카르디날레 영화 23편을 상영하는 회고전을 열었다.
Claudia Cardinale, Actress Who Was ‘Italy’s Girlfriend,’ Is Dead at 87
A sex symbol with girl-next-door appeal, she rose to fame in the 1960s and starred in more than 150 films, including the Oscar-winning ‘8½’ and ‘The Leopard.’
https://www.nytimes.com/2025/09/23/movies/claudia-cardinale-dead.html




60년대 대학시절, 영화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명동 근처에 있는 중앙극장에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주연의 '가방을든 여인'을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번쩍 띄는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화 포스터 밑에 CC가 든 가방사이즈를 들고 오는 사람은 입장료가 무료라는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친구와 같이 남대문 가방가게를 뒤졌습니다. 찾았다고 좋아하면서 그 가방을 들고 갔더니, 입구에 서있던 직원이 줄자로 면밀히 재보더니 길이가 조금 모자란다고 하면서 퇴짜를 놓았습니다. 오기가 나서 반드시 영화 속 그 가방을 찾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끝내 못 찾고 말았습니다.
화도 나고 약이 올라서 그 영화를 안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져본, 가방을 물색했던 추억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린 몬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도 고인이 됐고, BB만 살아있네요. 추억속의 여인들이 떠오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