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청소년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89)의 삶 하이라이트
Robert Redford (1936-2025)
하늘의 별이 된 '선댄스 키드'

영화배우, 감독, 독립운동가 겸 환경운동가였던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9월 16일 유타주 선댄스의 자택에서 잠든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공원에서 맨발로'에서 공연했던 제인 폰다는 "그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고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할 미국을 위해 싸웠다"라고 썼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함께 출연했던 메릴 스트립은 "사자 한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친구여, 편히 쉬세요"라고 썼다.
#비행소년 시절
본명은 찰스 로버트 레드포드 주니어(Charles Robert Redford Jr.). 1936년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회계사였고, 어머니는 쌍둥이 딸을 낳은 후 혈액질환으로 사망했다. 그는 모친 사망 후 신(God)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소년 시절 로버트는 갱단 싸움에서 감옥살이까지 전전하며 방황했다. 자신은 결국 부랑자가 될까봐 큰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취미는 일러스트레이션이었다.

#유타주 정착한 아웃사이더
레드포드는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할리우드 스타의 전형으로 여겨졌지만, 그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여겼고, 영화계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화가를 꿈꾸었던 것 같다. 1955년 어머니 사망 후 콜로라도대를 중퇴하고 유럽에서 1년간 체류하면서 파리의 에콜데보자르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거리에서 스케치를 팔아 용돈을 벌었다. 이 시절 깊은 우울증을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귀국 후 유타주 브리검영대 재학 중 만난 몰몬 학생인 롤라 반 와게넌과 결혼했다. 유타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The Sting, 1973
#불행한 가족사, 은둔자 되다
레드포드는 첫 결혼에서 네 자녀를 두었지만, 1959년 생후 2개월짜리 막내 아들이 영아 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했다. 1983년엔 딸의 애인이 총격으로 사망했으며, 이후 딸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또한 아들은 두번 간이식 수술을 받은 후 담관암으로 사망했다. 가족의 연이은 불행은 레드포드에게 죄책감과 은둔적인 성향을 부추겼다. 결국 그는 1985년 이혼에 이르렀고 2009년 독일 아티스트 시빌레 자가스와 결혼했다.
#브로드웨이 진출
레드포드는 15살 때 워너브라더스에 스턴트맨으로 자원했다가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유럽 여행 후 미연극 예술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Dramatic Arts)에서 공부하며, 연극과 TV에서 단역을 맡았다. 1959년 브로드웨이로 진출해 'Tall Story'의 단역으로 데뷔했다. 4년 후 닐 사이먼의 코미디로 마이크 니콜스가 연출한 '공원에서 맨발로(Barefoot in the Park)'에서 변호사 역으로 출연했다. 이 작품은 니콜스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제인 폰다와 주연을 맡았다.

The Great Gatsby, 1974
#할리우드 대표작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Sun Dance Kid, 1969)', '스팅(The Sting, 1973)', '추억(The Way We Were, 1973)',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74)',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1976)', '내추럴(The Natural, 1984)',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85)', '흐르는 강물처럼(River Runs Through It, 1992)'의 로맨틱 남성상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보통 사람들(The Ordinary People, 1980)', '은밀한 유혹(Indecent Proposal, 1993)', 그리고 '퀴즈 쇼(The Quiz Show, 1994)'까지. 로버트 레드포드는 멜로물에서, 서부극, 코미디, 스릴러까지 전 장르에 걸쳐 사랑받았던 배우였다.
레드포드는 수려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연기가 두드러지게 주목을 끌지 못했을까? 스타였지만,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가 배우로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폴 뉴만과 공연한 '스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로 오스카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Butch Cassidy and Sun Dance Kid, 1969
#선댄스 영화제: '독립영화의 대부'
1981년 신인 영화인 양성을 위해 비영리단체 선댄스연구소(Sundance Institute)를 설립, 할리우드 영화권 밖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들을 속하는 선댄스영화제를 개최해왔다. 극영화 뿐만 아니라 생식권, L.G.B.T.Q. 문제, 기후변화와 같은 진보적인 주제를 다루는다큐멘터리를 위한 최고의 쇼케이스가 되었다.
스티븐 소더버그(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퀜틴 타란티노(펄프 픽션), 대런 아로노프스키(파이), 데이빗 O. 러셀(아메리칸 허슬), 로버트 로드리게즈(데스페라도), 클로이 자오(노매드랜드), 리 아이삭 정(미나리) 감독 등이 선댄스에서 발굴됐다.
#환경운동가
레드포드는 1950년대 말부터 유타주의 한적한 목장에서 살아오면서 환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1970년 유타주 협곡에 제안된 6차선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벌였으며, 30년 동안 천연자원보호위원회의 이사로 재직했다. 2012년엔 환경 블로그 onearth.org에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2010년 영화와 환경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All is Lost, 2013
#방랑의 삶, 할리우드 전설
레드포드의 전기 작가 마이클 피니 캘런은 "그의 삶은 방랑의 연속이었다. 그는 동부 해안과 서부 해안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의 예술 실험실, 즉 '위대한 실험'(선댄스)이 1869년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의 황금 못이 박힌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아카데미 감독상(1980), BAFTA상(남우상, 1970), 골든글로브상(5회), 세실 B.드밀상(1994), 영화배우조합(SAG) 평생공로상(1996), 아카데미 명예상(2002), 케네디센터 명예상(2005), 대통령 자유의 메달(2016), 세자르 명예상(2019)을 수상했다. 2014 타임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에 선정했다.
Robert Redford, Screen Idol Turned Director and Activist, Dies at 89
He made serious topics like grief and political corruption resonate with the masses, in no small part because of his own star power.
https://www.nytimes.com/2025/09/16/movies/robert-redford-dead.html
Robert Redford, Golden Boy of Hollywood, Dies at 89
The 'Butch Cassidy' and 'All the President's Men' actor, Oscar-winning director and Sundance founder was "always about breaking the rules," he said.
https://www.hollywoodreporter.com/movies/movie-news/robert-redford-dead-oscar-winner-sundance-founder-was-89-1236372445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