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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 12가지

6살 때 감옥살이, 계란 공포증, 금발 여배우, 맥거핀, 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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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플라자호텔 옆의 파리 시어터(Paris Theater, 4 West 58th Street)에서 5월 16일부터 6월 29일까지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제 '히치! 오리지널 시네마 인플루언서 (HITCH! The Oroginal Cinema Influencer)'를 연다. 이 영화제에선 히치콕의 연출작 '현기증(Vertigo)' '이창(Rear WIndow)' 36편을 비롯, 그의 유산을 기리는 작품 등 총 60편이 상영된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은 어떻게 '서스펜스의 거장'이 되었을까? 히치콕 감독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소개한다. 

 

 

#1. 6살 때 감방 트라우마

청과물 상인으로 카톨릭 신자였던 아버지는 알프레드가 6살 때 문제를 일으켜 파출소 경관에게 편지를 써서 5분간 아들을 감금하라고 요청했다. 당직 경관은 아버지 말대로 알프레드를 몇분간 감방에 가둔 후 "이게 우리가 나쁜 녀석들에게 하는 것이야(This is what we do to naughty boys.)"라고 경고했다. 이 사건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은듯 하다. 히치콕은 평생 경찰을 두려워하고, 많은 영화에서 부당하게 감금당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할 것이다. 

 

#2.10대에 가족 부양

1914년 아버지 히치콕이 폐기종과 신장질환을 앓다가 사망했다. 15세의 막내 알프레드는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전신 케이블 회사 헨리(Henley)에 취직해 기술 사무원으로 일하며 밤엔 미술사, 회화, 경제학, 정치학을 공부했다. 

 

#3. 영화를 향한 첫 걸음

제 1차 대전 때 왕립 공병대 생도로 복무한 후 헨리의 사보 편집자로 일하며 단편소설을 기고했다. 이후 광고부서로 승진해 전선 광고의 카피를 쓰고, 그래픽을 담당했다. 당시 히치콕은 에드가 알란 포우의 수리소설과 영화에 심취했다. 그는 당시 찰리 채플린, D. W. 그리피스, 버스터 키튼, 프리츠 랑 등의 영화를 즐겨봤다. 훗날 히치콕은 프랑소아 트뤼포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향한 첫걸음(first step toward cinema)"이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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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chcock and Reville on their wedding day, Brompton Oratory, 2 December 1926

 

#4. 부인 알마 레빌

히치콕이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는 부인 알마 레빌(Alma Reville)이었다. 1926년 히치콕과 결혼한 레빌은 남편의 영화에서 작가, 편집자,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캐스팅에도 관여했다. 젊은 시절 히치콕은 매번 촬영 후 레빌을 쳐다보며 "괜찮았어?"라 묻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이코'의 샤워 살인 장면에서 버나드 허만(Bernard Herrmann)의 현악 음악을 사용하라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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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Vertigo, 1958)

 

#5. 블론드 여배우

히치콕은 금발의 여배우들에게 집착했다.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만, 자넷 리, 킴 노박, 티피 헤드렌... 소위 히치콕의 블론드(Hitchcock’s Blondes) 여배우들이다. 금발은 카메라에 잘 받고, 관능적이며, 냉정함과 신비로움을 전달한다고 믿었다. 그는 종종 금발 여배우를 순수한 캐릭터로 캐스팅하고, 갈색 머리 여배우는 의심 많고, 교활한 역에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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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러시모어 촬영장에서.

 

#6.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촬영 거부

케리 그란트가 출연한 스릴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는 원래 제목은 '링컨 코 속의 남자(The Man in Lincoln's Nose)'였다. 히치콕은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라함 링컨의 조각이 있는 사우스다코타 러시모어 국립공원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케리 그란트가 추적자들을 피해 링컨의 콧구멍에 올라가다가 재치기를 해서 들키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미 국립공원 관리청은 이를 무례한 행위로 간주해 촬영 허가를 내리지 않았다.  

 

#7. 다크 유머 

히치콕 감독의 유머 감각은 매우 어둡고 때때로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는 늘 장난을 즐겼다고 한다. 영화 '39계단(The 39 Steps, 1935)' 촬영 때는 주연배우 로버트 도넛과 매들린 캐롤에게 수갑을 채워놓고, 하루종일 열쇠를 잃어버린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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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Birds, 1963)'에서 히치콕 감독.

 

#8. 카메오(Cameo)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에 대사 없는 엑스트라(카메오, Cameo)로 출연했다. 총 52편의 장편 영화 중 39편에 등장한다.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에선 히치콕이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는 남자, '오명(Notorious, 1946)'에선 파티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게스트, '이창(Rear Window, 1954)'에선 피아니스트의 집에서 시계를 만지는 사람, '현기증(Vertigo, 1958)'에선 트럼펫 상자를 들고 가는 행인,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선 타이틀 시퀀스에서 버스를 놓치는 인물, '사이코'에선 자넷 리가 사무실에 들어갈 때 밖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 그리고, '새(Birds, 1963)'에선 티피 헤드렌이 애완동물숍으로 들어갈 때 두마리 개를 끌고 나가는 인물로 출연했다. 그리고, 바다가 배경인 '구명보트(Lifeboat, 1944)'에선 신문 속 체중조절(Reduco Obesity Slayer) 시스템 광고 사진 속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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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Psycho, 1960)' 샤워 장면 촬영장에서 자넷 리와 히치콕. Photo: Universal

 

#9. 맥거핀 효과

히치콕은 서스펜스를 유발하기 위해 맥거핀(MacGuffin)을 사용했다. 맥거핀이란 실제로 줄거리에 상관이 없지만,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 관객의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는 '미끼'같은 장치다.  '사이코(Psycho, 1960)'에서 은행원 자넷 리의 돈 다발 클로즈업,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실존하지 않는 인물 '조지 캐플란'이 대표적인 예다. 

 

맥거핀은 히치콕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앵거스 맥페일(Angus MacPhail)이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히치콕 감독이 종종 영화 속에 속임수 장치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0. 계란 공포증

히치콕에겐 계란공포증(ovophobia)이 있었다. 1963년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계란이 무서워요. 무서움을 넘어 혐오감을 느껴요. 구멍 하나 없이 하얗고 둥근 게 있고, 깨트리면 안에 구멍 하나 없는 노랑색 둥근 것이 들어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히치콕은 부인이 만들어준 키쉬 로렌(quiche Lorraine)은 계란이 들어갔어도 좋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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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보트(Lifeboat, 1944)'의 체중조절 신문 광고 속에 등장한 히치콕.

 

#11. 히치콕 다이어트 

히치콕은 원래 스테이크와 아이스크림광이었다. 1943년 체중을 줄이려고 한동안 블랙 커피, 스테이크, 샐러드만 먹었다고 한다. 결국 135kg에서 90kg으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구명보트' 속 신문 광고에서 다이어트 성공 사례를 입증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체중은 다시 불어났다. 

 

 

#12. 아카데미의 외면

히치콕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레베카(Rebecca)'는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감독상 후보에 5번(레베카, 구명선, 스펠바운드, 이창, 사이코) 올랐지만, 오스카는 번번히 그를 빗겨갔다.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현기증'(1958)은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다. 1967년 아카데미는 명예상인 어빙 탈버그상을 주었다. 이때 히치콕은 수상 소감으로  “Thank you, very much indeed.”라고 간단히 말한 뒤 무대를 내려갔다. 

 

영화사상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의 오손 웰즈(Orson Wells),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의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도 오스카 감독상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79년 히치콕은 AFI(미영화협회)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후 친구들에게 "이건 곧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야"라고 농담했다. 그는 1년 후 LA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화장 후 태평양에 뿌려졌다.  

 

 

*세계 영화사상 걸작 Top 100...1위 히치콕 감독 '현기증(Vertigo)'

https://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4149990

 

*맨해튼 파리시어터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제 'Hitch!'(5/16-6/29)

https://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4149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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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5.05.31 11:40
    히치콕 감독의 흥미로운 사실 12가지를 읽었습니다. 흥미롭습니다. 특히 계란 공포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런 공포증도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고등학교때 영어교사였던 김숙동 선생님이 계셨는데 멋쟁이시고 실력파이셔서, 인기 짱이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가끔 영화 얘기를 해주시곤 했는데, 어느날 영어 시간에 히치콕 감독 얘기를 해주시면서 히치콕 감독이 phobia가 있어서 경찰서를 지나가지 못한다는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phobia란 단어를 알았고, 그 단어를 알았음에 어깨를 으쓱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아버지가 6살자리 어린애를 경찰서에 수감을 했으니 경찰 공포증이 왜 안생기겠어요? 충분히 이해가 돼지만, 계란 공포증은 정말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뿐입니다. 이렇게 이상한 공포증을 가진 감독이 또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천재는 뭐라도 다르다고 스스로 정의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특별상 시상식에서 한말이 빛납니다.
    "Thank you very much indeed".

    끝으로 저도 컬빗에게 이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받아주세요.
    Thank you very much indeed.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