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유태인으로 오해받은 '문스트럭' '밤의 열기 속으로' 노만 쥬이슨(Norman Jewison, 97) 감독 별세
인종문제, 사회정의,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장르 섭렵
크리스천 노만 쥬이슨(Norman Jewison) 감독
셰어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문스트럭(Moonstruck)' 시드니 포에티어, 로드 스타이거 주연 '밤의 열기 속으로(In the Heat of the Night)' 등 다양한 장르를 탐험해온 노만 쥬이슨(Norman Jewison, 97) 감독이 1월 20일 장소를 알 수 없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뉴욕타임스의 사망기사에 따르면, 쥬이슨 감독은 '밤의 열기 속으로'로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졸업(The Graduate)'의 마이크 니콜스에 패했고, 평생 오스카를 거머쥐지 못했다. '밤의 열기...'는 '졸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제치고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쥬이슨의 영화와 배우는 총 46개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1926년 토론토에서 태어난 쥬이슨(Norman Frederick Jewison)은 아파트 아래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자라며, 영화, 라디오쇼, 보드빌에 빠졌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해군으로 복무했고, 토론토의 빅토리아대 재학 중 연극부에서 활동했다. 그가 1940년대 미 남부를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던 중 멤피스 인근에서 버스 뒷좌석에 흑인들과 함께 앉았다고 운전사로부터 질책받은 경험이 있었다. 이후 인종문제와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런던 BBC, 토론토의 캐나다방송(CBC) 뉴욕의 CBS-TV 등을 거쳐 1962년 할리우드에 진출, '40 파운드 오브 트러블(40 Pounds of Trouble)'로 감독 데뷔했다. 1965년 스티브 맥퀸의 대공황기 도박사로 분한 '신시내티 키드(The Cincinnati Kid, 1965)'로 연출력을 공인받은 후 맥퀸과 페이 더너웨이가 주연한 범죄영화 '토마스크라운어페어(The Thomas Crown Affair, 1968)'의 메거폰을 잡았다. 이후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s on the Roof, 1971)',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1973)', 그리고 1987년 '문스트럭(Moonstruck)'으로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1988년 토론토에 영화학교 캐나다영화센터(Canadian Film Center)를 설립했다. 1999년엔 아카데미상 명예상인 어빙탈버그상을 수상했으며, 2010냔 미감독조합(DGA)의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감리교도였지만, 이름 Jewison(유대인 아들) 때문에 유대인으로 잘못 알려졌다.
Norman Jewison, “Moonstruck” and “Fiddler on the Roof” director, dies
https://www.nytimes.com/2024/01/22/movies/norman-jewison-dea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