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다섯발가락 용문 청화백자 321만달러 낙찰
<업데이트>
다섯발톱 용문 청화백자가 11일 크리스티에서 321만8500달러에 팔렸다. 숙종 때 왕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항아리의 당초 예상가는 200만 달러였다.
이제까지 크리스티에서 경매된 한국미술 최고가는 1996년 841만7500달러에 팔린 철화백자 운룡문 항아리다.
또, 박수근의 '나무와 세 여인'은 198만6500달러에 낙찰됐다. 박수근은 당초 크리스티가 기대한 60-80만 달러의 3배를 넘기며 팔렸다. 이 기록은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박수근의 작품 중 최고가다.
이전의 최고 기록은 2004년 123만9500달러에 팔린 '앉아있는 여인과 항아리'(64.8x52.7cm)였다. (2012.9.11/17:10 update)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9월 11일 크리스티 뉴욕 한국미술품 경매
A Blue and White Porcelain Dragon JarJoseon dynasty, 18th century23 13/16in.(60.5cm) high; 16 7/8in
(43cm) approx.diameter. CHRISTIE'S IMAGES LTD. 2012
18세기 청화백자용문항아리와 박수근의 회화 등 한국미술 45점이 9월 11일 크리스티 뉴욕(Christie’s New York)에서 경매된다.
크리스티는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아시아 주간(Asia Week)에서 열리는 한국미술품 경매에서 조선 왕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청화백자용문항아리(Blue and White Porcelain Dragon Jar)를 내놓는다. 높이(60.5cm) x 지름(43cm) 크기의 위용있는 대호의 예상가는 200만 달러.
청화백자의 디테일.
청화백자용문항아리엔 두 마리의 용이 불타는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날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마리 용은 다섯 개의 발톱(오조룡)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 위임받아 제작된 도자기로 확실시되고 있다. 五爪龍
용은 우주만물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제왕의 권력을 상징했다. 오조룡은 왕실에서만 그릴 수 있었으며, 특히 제왕에게만 허가됐다.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잡았던 중국의 황제는 5개, 조선은 4개, 일본은 3개 발톱만 쓸 수 있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Park Sookeun (1914-1965) Tree and three figures, 1962 Oil on canvas, framed 25¾ x 19 7/8in.
(65.5 x 50.5cm.) CHRISTIE'S IMAGES LTD. 2012
박수근(Park Sookeun, 1614-65)의 작품 ‘나무와 세 여인(Tree and Three Figures, 1962)의 경매 예상가는 60만-80만 달러다. 세로(65.5cm) x가로(50.5cm) 크기의 이 그림은 앙상한 겨울 나무가 정면에 배치되어 있고, 세 여성이 담겨있다. 한복 입은 소녀가 머리에 짐을 이고 있는 두 여인에 앞장서서 시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늠름해 보인다. 전쟁 후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차세대의 희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1994년부터 박수근의 작품을 경매해온 크리스티에서 최고가에 팔린 작품은 2004년 3월 123만45만 달러에 낙찰된 ‘앉아 있는 아낙네와 항아리’(Seated woman and jar, 1962)다.
앉아있는 아낙네와 항아리(1962). CHRISTIE'S IMAGES LTD.
이외에도 2012 가을 아시아 주간에는 십장생이 그려진 19세기 청화백자(에상가 6만5000-7만 달러) 등 45점이 경매에 나온다.
크리스티는 이에 앞서 8월 15일 서울 신세계백화점에서 경매 작품 14점을 선보였다. 뉴욕에선 9월 7일부터 10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한국 미술품 경매는 11일 오후 2시 일본 미술품 경매 후 4시경 시작된다.
▶전시 일정: 9월 7, 8, 10일 오전 10시-오후 5시. 9월 9일 오후 1시-오후 5시. ▶크리스티뉴욕: 20 Rockefeller Plaza. bet. 5-6th Ave. www.christies.com.
☞박수근(1914∼1965)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양구보통학교 졸업. 그러나, 가세가 기울자 진학을 포기한다. 열두살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후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봄의 농부들의 모습을 그린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 1939년 24세 때 같은 소재를 유화로 그린 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했다.
중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다가 1952년 보수가 좋은 미 8군 부대에 초상화가로 취직한 후 그림에 전념했다. 형편이 나아지면서 오두막집을 사서 작업실로 썼다. 50년대 중반 이름이 알려지면서 샌프란시스코의 UNESCO 전시회를 비롯, 뉴욕, 도쿄에서 그룹전에 참가했다. 1959년 국전 추천작가, 62년 국전심사위원까지 지냈다.
가난한 농가의 정경과 서민들의 일상에 시정을 가미했다. 기법상에서도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로 독보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1965년 간경변으로 사망할 때까지 박수근은 400여점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고향 양구에 박수근미술관이 세워졌다. www.parksookeun.or.kr.
2009년 9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72만2500달러에 팔린 박수근 작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1966).
2008년 9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80만 6500달러에 낙찰된 '풍경 속의 사람들'(1964).
*NYCultureBeat의 뉴스레터 Catch of the Day를 받기원하시면, NYCultureBeat@gmail.com으로 신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