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개인전 여는 화가/시인 강익중(Ik-Joong Kang)씨 인터뷰
강익중 인터뷰 An Interview with Ik-Joong Kang
시와 그림은 내 현 위치와 여정을 알려줍니다
3번째 시집 내고 12년만에 개인전 여는 강익중씨
Ik-Joong Kang, 2022/ The Moon is Rising paster https://www.instagram.com/ikjoongkang
뉴욕 아티스트 강익중(Ik-Joong Kang, 62)씨가 11월 4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서울 갤러리현대(Gallery Hyundai)에서 개인전 '달이 뜬다 (The Moon is Rising)'을 연다. 이번 전시는 12년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시 쓰는 화가 강익중씨는 최근 시화집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송송책방)를 펴냈다. '달항아리'(2018), '사루비아'(2019)에 이은 세번째 시집이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모여 하나의 음절이 되고, 달항아리는 위와 아래가 맞물려 빚어낸다. 그의 3인치 모자이크로 구성된 설치작도 모두 개인과 개인, 남과 북, 동과 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를 연결시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갈등과 불화, 아픔과 상처의 디스토피아 시대에 강 작가의 새 전시는 희망과 화합과 상생을 의미하는듯 하다. 달과 새와 산, 사람과 집과 밥그릇... 강익중 작가의 모티프들은 바로 옆에, 우리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달항아리같은 비움과 충만함의 우주가 아닐까? 달항아리는 작가가 상상하는 우리의 유토피아일까?
Ik-Joong Kang, The Moon is Rising, 2022, 120 x 120 x 4cm each, Mixed Media on Linen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채우거나 비우지 않아도
채워지고 비워지는
달이 뜬다
올리고 내리지 않아도
오르고 내리는
달이 뜬다
백두산 한라산
칠천만의 마음 밭에
영향 준 작가는 백남준과 반가사유상
-왜 개인전을 12년만에 하게 되었나요.
강익중: 여러가지 핑계로 화랑 전시를 한 해 두 해 미루다 보니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준비 기간과 제작 과정을 필요로 하는 공공미술에 매달리느라 개인 작품 전시를 소홀히 한 이유도 있고요. 공공미술은 100미터 허들 경기를 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허들 하나를 간신히 넘으면 또 다른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올해 가을은 12년 전으로 돌아가 맨땅을 달리는 기분입니다.
-공공미술과 개인전은 작가로서 마음가짐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강익중: 개인의 작품을 발표하는 개인전은 정말 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합니다. 이에 비해 공공미술은 대중과의 소통, 재료에 대한 이해, 그 밖에 사회적인 책임이 따르는 미술 형식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공명하는 일종의 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둘 다 지도 상에서 자기의 위치를 물어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참여자와 관람객들은 어망처럼 서로 연결된 자신들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고 기뻐할 때 작가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신작전인가, 회고전인가요.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나요.
강익중: 회고전을 할 나이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작은 회고전 형식입니다. 작은 A4용지에 아무렇게나 그린 여러 설치미술의 밑그림부터 3인치 작업, 달항아리 작품, 신작인 달 그림 작품이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Scenery from Itaewon Bugundang
-전시를 앞두고 강 작가가 성장했던 이태원에서 참사가 벌어졌는데...
강익중: 숙소인 남산에서 삼청동 현대화랑까지 주로 걸어서 출퇴근을 했습니다. 뉴욕에서처럼 하루에 꼭 만 보는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요. 서울의 풍경은 매년 조금씩 더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안타깝게도 건물 뒤의 옛 흔적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있지만, 대신 독특한 디자인의 카페나 음식점, 그리고 작가들의 공방이 구석구석 들어오고 있습니다. 관광객들로 좁은 골목길이 더 좁아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뿌듯함을 느낍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하는 도시가 서울인 건 확실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태원도 마찬가지이고요. 숙소를 남산으로 정한 이유도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태원이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촌 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경리단 길이 나오고, 조금 더 걸어가면 제가 다니던 이태원 초등학교, 왼쪽 길로 올라가면 보광동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에 해밀튼 호텔이 나옵니다. 156명의 아까운 생명을 앗아간 참담한 사고가 발생한 건 제가 서울에 도착한 후 사흘 뒤였습니다. 어릴 때 뛰어 다니던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서 멀지 않은 골목입니다. 사고 이틀 후 화랑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다시 남산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들렸습니다. 생각보다 조문객 행렬이 길지는 않았지만 하얀 국화 한 송이씩을 받아들고 기다리는 시민들의 경건하고 엄숙한 모습에서 그날의 슬픔과 비애가 묻어 나오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닌 한식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한식구
같이 먹어서 한식구
같이 울어서 한식구
같이 웃어서 한식구
같이 아파서 한식구
같이 품어서 한식구
같이 나눠서 한식구
같이 꿈꿔서 한식구
Ik-Joong Kang, We Eat Together, 2022, Rice and Soup Bowls with Bird Sound
-강 작가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강익중: 물론 백남준 선생님이죠. 백 선생님과의 첫 전시회 후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가장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에 오는 길 백남준 선생님은 낮에 별을 보는 무당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이 외줄을 타는 서커스와 같다면 백남준은 미래 1000년, 과거 1000년 길이가 합쳐진 지름 2000년이 되는 장대를 든 분입니다. 그분의 그릇 크기는 2000 x 3.14가 되겠지요?
전에도 뉴욕컬처비트에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영향을 준 작가를 물어볼 때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무명의 작가라고 대답합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는 너무 편안합니다. 생로병사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은 미소입니다. 걸을 때는 걷고, 들을 때는 듣고, 웃을 때는 웃고, 바람 불면 바람에 안기고, 내려놓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 미소입니다. 우주를 품고도 또 그 품 안에 가만히 안기는 이 미소의 주인공은 반가사유상을 빚은 작가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그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 이상 문화활동이 중지됐었습니다. 작업엔 변화가 있었나요.
강익중: 전시나 공연은 잠시 중지되었지만 대부분 작가들은 작업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저 또한 외부와 물리적인 단절은 있었지만, 내면에 흐르고 있던 나만의 호흡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흐르고 있었을 겁니다. 요즘 같은 세상 코로나만 전염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아침 마당에 핀 환한 꽃을 보니 원래는 웃음도 전염되고, 친절도 전염되고, 행복도 전염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 작가의 콜렉터는 어떤 분들인가요.
강익중: 미술관, 기업 그리고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개인 컬렉터들입니다. 제가 품다 내놓은 작품들을 소장하는 분들은 저와 ‘인연’이라는 긴 줄로 이어진 특별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땅으로 이어지고 바람으로 섞인 것처럼요.
-성공한 작가란.
강익중: 성공의 레시피는 정직과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을 해도 정직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작가가 습관적으로 캔버스 앞에 앉아 있다고 창의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소셜미디어 활동도 하고 있는데.
강익중: 2017년 ‘내가 아는 것’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통신수단 및 일종의 작가 노트가 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저에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는 일종의 창이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경우 풍경이 왜곡되어 있어서 잘 걸러서 봐야하는 필터가 덮인 유리창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시 쓰고파
시화집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 (송송책방)
-이번 세번째 시집은 시화집인데, 어떤 컨셉인가요.
강익중: ‘오므라이스 잼잼’으로 유명한 웹툰 작가 조경규씨가 이번 세번째 시화집도 디자인했습니다. 달 항아리, 사루비아 시집과 다른 점은 지난 38년간의 주요 작품들과 설치들을 정리해서 올려 500여 페이지가 되는 무겁고 두꺼운 책입니다. 우리 말로 된 시 101편과 영문 시 30편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쓴 시가 몇편이나 되며, 어떤 주제에 대해 쓰게 되는지요.
강익중: 지금까지 3천여 편의 시를 썼습니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작은 먼지에서 가장 큰 우주가 보이는 시를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
나는 시를 새벽에 쓴다
꿈에 본 걸 쓰려고
나는 시를 낮에 쓴다
낮에 본 걸 쓰려고
나는 시를 늦은 밤에 쓴다
오늘 본 걸 쓰려고
나는 시를 쉰 넘어 쓴다
살며 본 걸 쓰려고
아니다
나는 시를 그냥 쓴다
나는 시를 아무 때나 쓴다
그림처럼
나는 생각없이 쓴다
-시를 쓰는 습관은.
강익중: 주로 이른 새벽에 시를 씁니다.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에서요. 대충 써 놓고 샤워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가능한 한 한번 쓰면 고치지 않는 편입니다. 자꾸 다듬으면 처음에 섰던 시의 날이 무뎌지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시인과 이유는.
강익중: 시집을 내고 나서 친구들이 이런저런 시집을 보내줬습니다. 참고하라는 것인지 시간 나면 읽어 보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작업실 책장엔 여러 시인들의 시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존경하는 마종기 선생님의 시집과 김정기 선생님의 시집도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특별히 두 분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서 제가 가장 아끼는 시집입니다.
-이민자로서 글쓰기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강익중: 시가 뭔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게 시가 되는 줄도 모르고 시를 썼습니다. 첫 시집 커버에 지금까지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을 그린 것처럼 시 같지 않은 시를 쓰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가족도 강 작가의 시를 읽고 평하는지요.
강익중: 첫 번째 시집을 냈을 때 아내에게 시집을 주니 "아니, 시도 써?"라며 의아해했습니다. 얼마 전 아들 기호가 밴드에서 기타 연주를 한다고 첼시마켓 지하에 있는 클럽으로 초대를 했는데 놀랍게도 자기가 작곡을 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 작곡도 해?"
Ik-Joong Kang in front of Things I Know (English), 2003, 3 x 3in each, Mixed Media on Wood
-시와 그림은 강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강익중: 대부분의 고속도로 휴게소 벽면에 붙은 지도엔 현재 위치가 빨갛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표시가 없으면 내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와 그림이 저에게는 그런 빨간 스티커 역할을 해줍니다. GPS 같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는 일을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시와 그림이 대중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읽혀지기를 바라시나요.
강익중: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고 느끼고 있었는데 시원하게 먼저 말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실은 제가 먼저 가렵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지만요. 누군가가 공감을 해준다면 기운이 나겠죠.
시
마음을 챙기려고
시를 써본다
잊지 않으려고
시를 써본다
세월에 끄적이려고
시를 써본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를 써본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팬데믹이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강익중: 작년 여름 델타 바이러스에 걸려 응급실에 입원을 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갑작스러운 삶의 멈춤이 의외로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숨이 차서 마당에 나가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는데 하늘에 뜬 달무지개를 보았습니다. 흐르는 인생은 보는 것이지 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을 해봤습니다.
Ik-Joong Kang, The Moon is Rising, 2022, 60 x 60 x 4cm each, Mixed Media on Wood
달무지개
우리 집 지붕 위로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달무지개가 떴다
이번엔 사진으로 담아야지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느라 꾸물꾸물
무지개 반이 사라졌네
아이고 하는 순간
나머지 반도 사라졌네
그냥 쳐다볼 걸
가만히 기다릴 걸
기쁨을 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행복을 가둘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보통날 하루의 일과는.
강익중: 새벽에 일어나는 어릴 적 습관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오기 전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했던 것에 작은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요즘 하루 일과는 5시 전후에 기상, 제일 먼저 강아지 밥을 주고, 마당에 있는 나무와 화초들에게 물을 준 후에 집과 작업실 바닥을 깨끗하게 닦습니다. 아들 기호가 대학을 가지 전까지 아침을 꽤 정성껏 만들었는데 요즘은 차이나타운 스펀지케이크 집에 들러 커피와 스펀지케이크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하루에 한 번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돌며 만 보를 꼭 걷는 편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지금 전시 때문에 서울에 출장 와 있지만, 도착한 다음 날부터 매일 만 보를 걷고 있습니다. 큰 길보다는 건물 뒤에 숨은 옛날 동네 골목길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1970년대의 서울이 아직도 큰 건물 뒤에 숨어 있습니다. 어제는 광화문에서 약수동 떡볶이 동네까지 골목으로 걸어가 봤습니다. 35년 전 화가 친구들과 매주 화요일 오후 1시에 만나는 화요 런치 클럽을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때 10명 이상 모였지만 많은 친구들이 타주나 본국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세상을 떠나서 지금은 저와 저와 중국인 친구 Bing Lee 둘만 남았습니다.
-부인(이희옥씨, Margarette Lee)도 미술을 전공했지만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었는데, 서로 미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강익중: 함께 미술을 전공했지만 집안에 예술가가 둘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집사람이 결혼 후 미술을 포기했습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끝까지 양보를 안 한 까닭이죠. 아내는 낮에 직장에서 풀타임 일을 하며 밤에 법과대학을 다녔습니다. 지금도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바쁜 사람입니다. 하루에 이메일이 400개 이상이 온다고 하니. 얼마 전 피어 57에 있는 Google 빌딩을 개발한 Youngwoo and Associates 의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요즘 뉴욕 대학 Schack Institute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가끔 제 작업을 보고 훈수를 두기도 하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맞는 말이라 제가 거의 수용을 하는 편입니다. 하하… 코로나 이후 아내는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서고 있습니다.
Ik-Joong Kang in front of Moon Jar at Gallery Hyundai
-아들 기호에게도 미술 재능이 있는지요.
강익중: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AI 회사에 취직을 해서 2년쯤 잘 다니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직장을 바꿔 영화 촬영장의 현장 보조로 밤낮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하기 어떠냐고 물어보면 AI 회사에서 일할 때 보다 백배쯤 기쁘다고 합니다. 어릴 때 그림을 곧잘 그려도 혹시 화가가 될까 봐 걱정이 돼 칭찬 한 번 안 했는데 대학(조지타운) 신문에 삽화를 꾸준히 연재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따로 그림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차피 영화 쪽으로 뛰어들었으니까 최선을 다해 일하다가 세상 이치 하나만 깨달아 건지고 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결과에도 연연해 하지 말고요.
-무엇이 강 작가를 행복하게 하나요.
강익중: 단순한 생각, 욕심 없는 마음, 부지런한 몸
-10년 후 강 작가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강익중: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고 어제가 오늘로 이어졌다고 하니 마음은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합니다. 그때가 되면 지난 30여 년간 임진강에 설치하려고 했던 ‘꿈의 다리’가 이미 완성이 되어 남과 북의 사람들이 갈라진 민족이 아닌 통일된 민족으로 다리를 건너게 되겠죠? 저도 관람객의 한 사람으로 같이 걷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강익중 Ik-Joong Kang
1960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1984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1987년 프랫인스티튜드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멀티플/다이얼로그'를 열었다. 1997년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했다. 공공미술작품으로 2016 영국 런던 템즈 페스티벌(Totally Thames)의 메인 작품 '집으로 가는 길(Floating Dreams)',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벽화, 광화문 복원현장의 '광화문에 뜬 달: 산, 바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삼라만상: 멀티플 다이얼로그∞', 2013 순천 국제정원 '꿈의 다리', 2016 오두산 통일전망대 '그리운 내 고향', 2018 순천 국제정원 '현충정원' 등이 있다. 구겐하임뮤지엄, 휘트니뮤지엄,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18년 첫 시화집 '달항아리', 2019년 두번째 시화집 '사루비아'를 출간했다.
강익중: 달이 뜬다 IK-JOONG KANG: THE MOON IS RISING
2022년 11월 4일-12월 11일
갤러리현대: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삼청로 14)
두가헌갤러리: 화-금, 오전 10시-오후 6시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80)
https://www.galleryhyundai.com
시집: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
뉴욕 판매처: 맨해튼 고려서적(Koryo Books, 35 West 32nd St. 212-564-1844)
플러싱 한양서적(Hanyang Book & Music, 156-24 Northern Blvd. Flushing, NY)
*강익중씨 런던 템즈강에 '꿈의 섬(Floating Dreams)' 설치
*Inside Korea(The New York Times) Interview
*코리아소사이어티 개인전 '달에 보내는 꿈' 여는 강익중씨, 2020
*Artist Ik-Joong Kang’s Chinatown Restaurant Guide
강 작가님의 새로운 시를 읽게되니 마음이 기뻐옵니다. 세번째의 시집을 내셨다니 독자의 한 사람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미술과 시, 두마리 토끼를 어떻게 이렇게 잘 조화를 하면서 나가시는지 감탄이 나옵니다.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세번째 시집은 제목부터가 마음을 당깁니다. 시아닌 시를 쓰신다고 하셨는데 시아닌 시야말로 시라는 것을 강 작가의 시를 접하고서 알았습니다. 미사려구의 거창하고 난해한 문장나열이 시라고요? 거기서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강익중씨의 시야말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시입니다.
우리 식구에서, 같이 먹고 울고 웃고---등으로 표현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완전 동감하는 말들을 찾으셨는지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저는 가끔 밤하늘을 처다봅니다. 별을 보고파서요. 강 작가님의 별에 대해 쓰신 시가 있으면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