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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과 허무의 캔버스 

최욱경(Wook-kyung Choi/崔郁卿, 1940-1984)

 

Wook Kyung-Choi, Untitled, 1968, acrylic on paper.jpeg

Wook Kyung-Choi, Untitled, 1968, acrylic on paper

 

"여자이자 화가로서의 나의 경험은 내 창의력의 원천이 되었다. 내 작품에는 과거와 현재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은 내 삶의 성장이고, 내 감정을 시각 언어로 풀어놓은 것이다. 내 작품들이 나의 삶에 대한 것이기는 하나, 이를 통해 단지 이야기만 들려주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나의 작품을 보는 이들이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공감하기를 바란다.” -최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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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 Wook-kyung at work/ Self-Portrait Series, 1976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여 10살 때 운보 김기창 화백을 사사했다. 이화여중 재학 중엔 김흥수, 장운상, 서울예고 재학 중엔 정창섭, 김창열, 문학진으로부터 배웠다. 서울대 서양화과에 다니던 중 21세로 한국미술가협회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최욱경, 세 악사, 1959년, 종이에 포스터컬러, 102X72cm.jpg

Wook-kyung Choi, Three Musicians (after Picasso), 1959

 

1963년 미국으로 이주, 미시건주 크랜브룩미술학교(Cranbrook Academy of Art)에서 서양화, 조각, 도자기를 배웠으며, 브루클린뮤지엄 미술학교, 메인주 스코히간 미술학교(Skowhegan School of Art)에서 수학했다. 1968년부터 뉴햄프셔주 프랭클린피어스대학교(Franklin Pierce University)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사라토가 스프링스(1969)와 뉴멕시코 로스웰(1976)에서 거주작가를 지냈다. 

 

 

Choi Wook-kyung, Ecstacy, 1977.jpg

Choi Wook-kyung, Ecstacy,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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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 Wook-kyung's, Reject, 1974

   

1971년 귀국해 신세계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듬해엔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1974년 다시 미국행,  1977년 위스콘신 주립대 교수로 지내다가 1979년 귀국했다. 이후 영남대, 덕성여대의 교수를 지내다가 1985년 삶을 마감했다. 평생 회화 500여점과 드로잉 1천여점을 남겼다. 

 

 

최욱경은 시 쓰는 화가였다. 1965년 영문시집 '작은 돌들'(Small Stones, 크랜브룩미술학교), 1972년엔 '앨리스의 고양이' 등 45편을 수록한 국문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Like Strange Faces, 교학사'을 출간했다.  

 

 

강렬한 컬러와 대담한 붓질

 

Wook-Kyung Choi, Untitled, 1966, acrylic on canvas.jpeg

Wook-Kyung Choi, Untitled, 1966, acrylic on canvas

 

미국 체류 시절(1963년-1978년) 초기엔 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가 주도했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콤바인 페인팅에서 영감을 얻어 신문을 활용한 콜라쥬로 반전, 인종차별 등 이슈를 캔버스에 담았다. 한스 호프만, 조지아 오키프와 프란시스 베이컨도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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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Kyung Choi, In Peace, 1968

 

2021년 파리 퐁퓌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열린 여성 추상미술가 특별전(Women in Abstraction, 5/19-8/23)에 최욱경의 작품 3점을 비롯, 조안 미첼, 헬렌 프랭켄탈러, 일레인 드 쿠닝, 힐마 아프 클린트, 카르멘 헤레라, 루이스 부르주아, 에바 헤세 등 세계 여성작가 106명의 150점이 전시됐다. 이후 빌바오 구겐하임뮤지엄(Guggenheim Bilbao, 10/27-2/27, 2022)으로 순회전시됐다. 

 

같은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선 최욱경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10/27-2/13, 2022)가 열렸다. 11월 뉴욕 아모리쇼(ADAA/The Armory Show)에서 최욱경의 미국 작업기를 조명한 토론회(American Years: Wook-Kyung Choi, 1940-1985)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1987), 호암갤러리(1989) 개인전, 스코히건재단 초대전(1967-68), 도쿄 한국현대작가전(1972), 상파울로 비엔날레(1981) 등 그룹전에 참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스코히간 미술학교 등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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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경, 비참한관계, 1984
 

"내 그림 속에는 생명체들의 생명이 숨 쉬고 있다.

그 생명체들이 숨 쉬는 색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색상들은 찬란한 태양광선에서 찾아보았다.

이런 작업들은 자연과의 만남에서 추려내어진 경험들로서

아무래도 자연은 내 그림의 고향이다."

 

-최욱경-

 

 

최욱경, 자화상(푸른 모자를 쓰고), 1967년, 종이에 파스텔.jpg

Wook-kyung Choi, Self-Portrait, 1967

 

나의 이름은
 
한때에 나의 이름은 낯설은 얼굴들 중에서
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였습니다
타향에서 이별이 가져다주는
기약 없을 해후의 슬픔을 맛본 채
성난 짐승들의 동물원에서 무지개 꿈
'길 잃은 아이'였습니다.
 
결국은 생활이란 굴레에서 
아주 조그만 채
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랍니다.
-최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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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08.19 14:25
    최욱경씨는 50년대, 내가 중고교 시절일 때 예술고등학교 미술과를 다녔습니다. 아침 조회시간이나 교내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예고 미술전시회에서 그분의 그림을 직접 가까이서 감상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양을 그렸는데 양이 실제로 뛰어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로서는 그 전시회가 최욱경씨의 그림을 마지막 본겁니다. 그후로는 생활 속에 묻혀서 전시회는 뒤로 밀리고 지냈습니다. 컬빗에서 반세기도 훨씬 넘는 그때를 회고하게 해주니 감회가 밀려옵니다. 최욱경씨가 일찍 요절을 했군요. 안타깝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