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미술의 거장들 (1) 정창모: 수묵화의 최고봉
장승업 화풍 계승자, 수묵화의 최고봉
북한미술의 거장들 <1> 정창모 화백
정창모
효원(曉園) 정창모(鄭昌謨, 1931-2010) 화백은 조선의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을 계승한 몰골화(沒骨畵, *뼈대가 없다는 뜻으로 윤곽/형태 대신 먹이나 채색으로 그린 그림)의 거장이다. 정창모 화백의 그림은 온화한 채색으로 붓의 기운과 발색은 활달하고 부드럽다.
1931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난 정창모 화백은 문인화가였던 외조부 리광렬 덕에 그림을 시작해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완산초등학교 재학 중 아동미술전람회에 '아침 해'를 출품, '꼬마 화가'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가난으로 인해 그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정창모
한국동란 중 의용군으로 입대한 그는 혈혈단신 월북했다. 이후 개성시 미술가동맹위원장 림실기의 지도를 받았고 스물여섯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한다. 이때 담임 교수가 "조선화를 하려면 필력을 가져야 한다"며 권유한 권투를 시작해 선수가 될 정도였다.
재학 중 '겸재의 생애와 활동' '오원 장승업의 생애와 창작' '19세기 러시아 이동파 화가들의 창작'등 미술 논문도 발표했던 학구파였다.
정창모
정창모 화백은 63년부터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미술가동맹 현역 미술가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했다. 테두리선을 긋지 않고 단붓질법으로 그리는 조선화 고유의 몰골기법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발전시킨 정 화백은 활달한 필치와 선명한 색상으로 시적이고 깊은 정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부드럽고 유연한 색채로 조화를 추구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그대로 재치있게 표현 친근하며 미적 정서 유발한다.
정창모
1977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정창모 화백은 89년에 인민예술가 반열에 올랐으며, 오랫동안 만수대창작사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북한미술을 대표해 왔다. '북만의 봄' '금강산 비봉폭포' '분계선의 옛집터' 등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 입상했으며 2005년 제 8회 베이징 국제미술제에서 선우영 화백과 나란히 금상을 수상했다. 평생 약 3000여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이 중 국보로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100여점에 이른다.
2000년 8.15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서울을 방문해 여동생 정남희씨, 화가인 조카 정진규씨와 만났다. 2010년 7월 전립선암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박숙희 기자
*북한미술의 거장들 시리즈는 2005년 2월 뉴욕중앙일보에서 열린 북한 작가 전시회 '북녘의 대가전'에서 소개된 정창모, 선우영, 김기만, 김상직, 오영성 등 5인 거장의 이야기를 보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