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거장들 (4) 정상화(Chung Sang-Hwa, 1932- ): 고령토로 빚은 침묵의 캔버스
단색화(Dansaekhwa) 거장들
<4> 정상화(Chung Sang-Hwa 鄭相和, B. 1932)
고령토로 빚은 침묵의 캔버스
Chung Sang-hwa, Untitled(detail), 1982, Oil on canvas
"발로 비벼버린다든가 손으로 쥐어버리는 행위, 즉 종이를 손에 쥐고 구겨버리는 행위 등을 집합시켜 형상화한 게 추상화의 시작이다." -정상화 화백-
정상화 화백은 1932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랐다. 1950년대 초 서울대학교 회화과 재학 시절 미 대사관에서 본 'LIFE' 잡지의 컬러 화보를 통해 서양의 추상화를 처음 접했다. 1950년-60년대 앵포르멜(Informel, 비정형 회화)로 추상화 작업을 시작했으며, 대학 졸업 후엔 전위 그룹에 가담해 카오린, 아교, 아크릴 물감, 유화 물감, 흑연, 한지 등 다양한 재료와 색채를 실험했다.
Chung Sang-Hwa: Excavations, 1964–78, Lévy Gorvy, London
“학교를 오가며 미국 대사관 앞에서 봤던 잡지가 추상화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미술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을 때다. 그때 눈에 들어온 미군 잡지의 색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당시 그런 인쇄술은 한국에 없었다. 미국의 통조림이나 자동차 광고의 색이 아주 고왔고 내게 뭔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967년 서울 예고 교사로 가르치던 정 화백은 서양미술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파리로 갔다. 이후 파리(1967-68), 일본 고베(1969-76), 다시 파리(1977-92)에서 약 25년간 체류한 후 한국으로 귀국해 작업해왔다. 파리 비엔날레(1965)와 상파울루 비엔날레(1967), 광주 비엔날레(2000)에 참가했으며, 2011년 프랑스의 생테테엔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SaintÉtienne Métropole)에서 회고전 '정상화: 고고학의 회화(Painting Archeology)'전이 열렸다.
Chung Sang-hwa, Untitled 1987-2012, Acrylic on canvas from "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 Christies New York, 2015
2016년 6월엔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도미니크 레비 갤러리(Dominique Lévy Gallery, 6/1-7/30))와 첼시의 그린 나프탈리 갤러리(Greene Naftali, 6/1-8/5) 에서 개인전 'CHUNG SANG-HWA: Tansaekhwa (monochrome painting)'이 동시에 진행됐다. 정상화 화백은 뉴욕을 방문해 도미니크 레비 갤러리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정 화백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허쉬혼뮤지엄(워싱턴 D.C.),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홍콩의 M+,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Chung Sang-hwa, Untitled 78-11-29, 1978, Acrylic, graphite and hanji on canvas
정상화 화백의 작업은 노동집약적이다. 그는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高嶺土)를 사용한다. 먼저 캔버스 위에 5㎜ 두께의 고령토를 칠해 말린 후 규칙적인 간격으로 가로 세로를 접어가면서 고령토에 균열을 만들고 그 위에 물감을 메우고 뜯어내고, 메우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 완성한다. 고령토는 얇게 발라야 해서 1주 이상 소요된다. 서서히 적은 양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그의 기법은 마치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보인다.
Chung Sang-hwa, Untitled 97-3-26, 1997, Acrylic on canvas
정상화 화백의 캔버스는 멀리서 보면 단색의 단조로운 표면같다. 캔버스는 침묵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네모꼴의 균열이 드러난다. 질서정연한 격자무늬 모자이크의 미세하고, 정교한 균열은 바둑판, 직물을 연상시킨다. 그의 캔버스는 사실 침묵하지 않는다. 전체 속에서 부분, 부분에서 전체로 확장하는 캔버스, 미세한 맥박이자 요동의 캔버스다.
캔버스를 찢어내고, 메우는 반복적인 과정은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작가의 치유이자 수련의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의 경과 속에서 마침내 평정을 찾는 캔버 처럼 보인다. 완성된 캔버스는 드러냄과 감춤의 긴장 속에서 우주의 질서가 담긴듯 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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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