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의 부엌
2013.12.07 03:27
(1) 요리는 내 운명: 강원도 촌놈이 셰프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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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메뚜기 튀김, 아버지와 맛집 여행
강원도의 출렁이는 황금빛 들판. 벼가 무르익을 무렵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고소한 메뚜기 튀김이 최고의 간식이었다. Photo: Tony Yoo
내가 어쩌다 요리를 하게 되었을까?
‘요리는 내 운명’ 이라는 첫 타이틀을 정해 놓고 보니 나 역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 나는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강원도 촌놈이라고 나를 소개하곤 한다. 촌놈이란 말 그대로 시골 남자들을 일컫는 말인데, 좋은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공존하지만, 요리사 입장에서는 촌놈으로 태어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30대나 40대의 세대들은 물론 그 이전의 어른 세대에 비하면 풍족한 시대에 살았지만, 사실 70년대나 80년대에도 한국의 경제는 지금과 같이 풍족하지는 않았다. 먹거리가 오늘날과 같이 다양하지도 않았고, 문화적인 혜택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강원도는 그야말로 정말 시골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산과 들로 놀러 다녔고, 야생의 동식물들과도 가깝게 지냈었다. 파란 가을 하늘, 맑게 쏟아지는 햇볕을 반사시키며 출렁이는 황금들판 그렇게 벼가 무르익을 무렵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던 고소한 메뚜기 튀김은 최고의 스낵이었고, 감자나 옥수수는 뛰어다니느라 많이 소비했던 열량을 채우는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요즘 같으면 주변에 햄버거나 피자를 쉽게 사먹었겠지만 그 당시는 패스트푸드점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금도 그 시절 먹었던 감자, 고구마, 옥수수, 메뚜기, 도토리 등의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그 맛에 대한 기억들...
생각해보면 이러한 기억들이 오늘날 요리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하나의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감자의 맛이란? 옥수수의 맛이란? 쉽게 표현 할 수 있을까? 힘들다. 왜냐하면 그만큼 복합적인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식재료 일수록 그 맛은 더 복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감자의 맛보다 더 맛있는 감자를 먹어 보지 못했다.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많은 식재료를 접하고 맛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맛을 찾기 힘들었다. 감자뿐만 아니라 모든 식재료들의 맛이 좋고, 신선했다.
Photo: Tony Yoo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조미료도 지금보다 덜 사용했고, 집에서 장을 담가서 양념에 사용했기 때문에 식재료나 장맛이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요리를 하면서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 맛이었지!”, “맞아, 그때 할머니가 이렇게 해 주셨었어!”. 돌이켜보면 나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좋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미각 훈련을 받았던 것이다. 요리사에게 미각이란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미각이 결정적으로 그 음식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시 내가 요리사의 길을 가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사실 나의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내가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는 걸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신다. 한창 요리를 시작할 때는 대학 졸업하고 남부럽지 않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왜 요리사의 길을 가느냐고 많이 꾸중을 들었었다.
비단 우리 아버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에 와서야 한국에서 요리사나 셰프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아졌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다르다.
요리사는 한마디로 한국사회에서 그리 인정 받지 못하는 직업군에 속했었다. 힘들고, 급여도 적고, 쉬는 날도 별로 없고 이러한 이유들을 보면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님들 대부분은 자녀가 요리사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 말리기 바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린시절 한동안 음식점을 운영하셨었다. 때문에 그 길이 얼마나 힘든지 남들보다 잘 아시기에 더욱 반대가 심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주방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요리사나 음식 냄새, 칼, 도마 등을 접했었기에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이 편할 수 있었다.
또한, 여행을 좋아하셔서 주말이면 언제나 가족을 차에 태우고 좋은 식당들을 찾아 전국으로 나섰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이 발달했기에 맛집을 찾아 다니기 쉽지만 그때는 차 타고 다니다가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서 다니기도 했었다.
아마도 한국 음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지역색일 것이다.
국토는 좁지만 산과 강이 많고 계곡마다 물이 흐르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어 지역마다 각기 다른 식재료, 조리법, 장맛 등이 있다. 때문에 다른 지역의 맛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에 비해서 음식에 많은 양념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하기에 그대로 날것으로 먹거나 최소한의 조리를 해서 먹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인 요인도 음식의 스타일이나 맛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보통 미식가가 불리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어린 시절 여행을 많이 다니며 다양한 음식 맛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아버지 따라 다녔던 여행들이 지금에 와서는 값진 미식투어였던 것이다.
이외에도 요리를 너무나 잘 하시고 언제나 아낌없이 손주에게 따뜻한 밥과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와 함께 고추 말리고 장 담그던 기억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것 등... 이렇게 하나하나 돌이켜보면 지난 날의 기억들이 요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큰 밑거름이 되고 있고, 그러한 경험들이 내게는 요리가 운명처럼 느껴진다.
Tony Yoo 유현수
주영한국대사관 총괄셰프 (London, UK)
Executive Chef of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London, UK)
한국 슬로푸드협회 정책위원
D6 (전)총괄셰프(Contemporary Local Korean Cuisine)
Executive Chef of Restaurant D6 (Seoul, Korea)
Aqua Restaurant (Michelin Guide Two Stars) (San Francisco,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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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게 잘 읽고 가요! 2편도 기대합니당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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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유 셰프의 글이 어릴 적 제가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나게 해주네요.
시골에서 먹은 어리굴젓, 동네 길가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던 떡볶이, 엄마가 목욕시키기 전 사주던 동네 제과점 쇼빵... 커서는 학교 후문에서 팔던 딸기골 김밥, 80년대 후반 중부 고속도로가 생겼다고 했을 때 경기도 마방집에서 먹은 된장찌개... 음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서 그 때,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마음의 한켠에 자신만의 부엌/음식이 있는 것 같지요? -
응답하라 강원도 원주네요 ㅎㅎ 토니유 쉐프 현재 뉴욕에 계시나봐요. 내일 한양마트에서 요리특강 한다고 하시던데 눈이 예쁘게만 왔스면 좋겠네요. ^^ 앞으로 맛있는 글 많이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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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울릉도 오징어내장탕, 거북손과 영광 법성포 보리굴비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내킨 김에 팔도강산을 다 커버하시면 좋겠네요! 읽으면서 군침이 돌아요. 언제 울릉도 한번 가보고 싶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