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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강미현: 코로나와 이산가족 위기
쏙닥쏙닥 (1) 뉴욕 드라마 1
코로나와 이산가족 위기
미수(왼쪽부터), JP 조프레, 강미현씨
아티스트로서 뉴욕에서 살아 간다는 것은 늘 드라마틱하다. 일본에서의 긴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어렵게 얻은 강사직을 뒤로하고 느닷없이 뉴욕에 왔던 2013년 시작도 그랬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부딪쳐야만 했던 초반기 뉴욕생활 역시 그러했다.
2015년 가을 지금의 남편(*JP 조프레/반도네온 연주자, 작곡가)을 만나면서 뉴욕에서의 정체성 방황은 일단락 나고 그리고 2017년 가을 딸아이가 태어나면서 내 인생의 방황은 꼬리를 감추었다. 43살에 낳은 첫 아이를 뉴욕에서 독박육아를 하게되며 얻게 된 아줌마 정신이 내 과거의 방황을 한번에 소멸시켜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잠잠히 일상을 반복하며 살 즈음해서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 사람들과 더물어 내 가족에게 대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시작된 뉴욕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에 우리 가족은 이미 3월초부터 외출을 하지않고 대중교통을 타지 않았다. 2살 반인 내 딸 미수는 두달 넘게 집에만 있었고 그 아이와 온 종일 지내야 하는 나는 짜증이 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 아티스트인 나와 작곡가겸 반도네온 연주자인 남편은 3월과 4월 공연 일정이 취소되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11월까지 모든 일정이 다 취소되었다.
뉴욕의 비싼 임대료와 물가는 그대로인데 수입이 격하게 줄어든 상태에서 아이는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5월말 혹은 6월말에 끝난다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일상으로의 회복이 과거에 우리가 하던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Mihyun Kang, Live life like nothing happened, 2017
뉴욕의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던 4월초 한국의 가족들이 아이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걱정을 해 주었고, 우리 역시 건강과 경제적 사정상 올 한해를 한국에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우리는 인천공항 귀국 후 2주간의 자가격기 기간이 끝나면, 전원생활을 하는 친언니 집에 가서 아이에게 자연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해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4월 22일로 집 계약을 해지하고 중요한 살림살이는 창고에 넣고 비행기 표를 끊고 남편의 한국행 입국여부를 확인하고, 4월 22일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기위해 아침부터 JFK로 갔다. 모처럼만에 바깥으로 나가자 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우리는 마스크와 얼굴 가리개 그리고 소독용 알코올 스프레이로 연신 손을 닦으며 안전을 기했다. 여기까지는 한국행을 계획하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강미현씨와 미수
공항의 아시아나 카운터에서 수속을 위해 우리 가족 세명의 여권을 주자 계속 기다리라고 하더니 결국은 여직원이 우리를 다른 창구로 불렀다. 아르헨티나 국적인 남편의 한국입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머리 위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4월 17일 뉴욕영사관에 전화해서 아르헨티나 국적 남편이 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문의를 했고, 결혼증명서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는데요.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 결혼신고도 되어있는데요." 라는 나의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오로지 "아르헨티나가 먼저 국경봉쇄를 해서 한국도 아르헨티나에 관해 입국 금지를 했다"는 답만 되풀이되었다.
두시간 가까이 뉴욕 영사관을 비롯 한국 법무부등 가능한 우리가 연락할 수 있는 곳에 문의를 했다. 영사관측은 정부에서 내려오는 지침이 매일 변경되는 상황이어서 매일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이 정책이 시행된 것은 4월 13일이고, 내가 뉴욕 영사관에 남편의 한국 입국을 확인 한 것은 17일 이었다. 이 시국에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그러나, 내 경험상 영사관분들도 자택 근무를 하셔서 그런지 정부에서 내려오는 지침의 해석능력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 같다.
23일 영사관에 다시 전화해서 아르헨티나 국적의 남편이 언제끔이면 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어보자 너무나 친절하게 영사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공지사항을 알려 주셨다. 전화를 끊고 보니 그 정보는 한국발 안내였다. 한국발이란 한국에서 출발하는 한국인 여행자를 위한 안내이다. 뉴욕에서 출발하는 우리는 한국행 정보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어렵게 한국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기관의 안내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과 재차 삼차의 확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이나 부인 어느 한쪽이 금지대상 국가라는 이유로 함께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상태가 너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월 13일 이후 한국이 입국금지한 나라가 90여개국이 된다. 언제까지 각국의 국경봉쇄와 입국금지가 지속, 변경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국제결혼한 부부와 아이들은 한국행을 택할 경우 가족이 함께 할 수가 없다. 법으로는 일괄 처리되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질 경우 다국적 가족의 경우 비자, 체류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임신을 한 경우, 아이가 어려서 모유수유를 해야하는 경우에도 엄마 국적이 금지대상 국가라는 이유로 같이 한국으로 갈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수와 JP 조프레씨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남편만 뉴욕에 두고 한국에 갈 경우 언제 남편이 한국으로 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가족이 다 한국행을 포기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뉴욕집을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한순간에 뉴욕에서 홈리스가 되었다. 뉴욕에서 맞게 된 코로나 사태는 내 인생의 안정기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뉴욕 생활은 이렇듯 늘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이 상황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 세 가족은 모두 건강하다. 요즘같은 시기에 건강하다면 그것이 전부가 아닌가. 또한, 정부기관은 일괄적인 정책상 인도주의적 예외를 받아 주지 못하지만, 우리의 뉴욕 친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가족이 임시로 머물 수 있도록 러브콜을 보내 주었다. 남편이 우리의 상황을 페이스 북에 올리자 집을 내주겠다는 친구들이 곳곳에서 연락을 주었다. 뉴욕이라는 이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겪었던 시간과 상처는 우리의 DNA에 깊게 자리잡아 다른 이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마음이 된 듯 하다.
우리 가족은 현재 남편의 지인인 뮤지션 론 워서만(Ron Wasserman, Principal Bass at New York City Ballet)이 비워 준 맨하탄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가 한국에서 입국금지 대상 국가에서 해제될 때를 기다림과 동시에 플랜 B를 모색해야만 한다. 이 팬데믹이 길어질 경우 국경봉쇄는 더 길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조언이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의 나는 아르헨티나에 갈 수 없고, 아르헨티나 국적의 남편은 한국에 갈 수 없다면 우리는 뉴욕에 남아야 한다. 이것의 나와 뉴욕의 인연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틱하게.
Mihyun Kang, lost or missing,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