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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등대 (79) A Farewell to ODRE 

 

오드레(ODRE)가 남긴 온기와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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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One Last Meal”, 2026, Sept. Digital Painting

 

2년 전 이스트빌리지에 한식당 오드레(Odre)가 문을 열었을 때, 4코스 한식을 42달러에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맛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개업한 지 얼마되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혼자 오드레를 찾았다 ‘오드레’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 오드리 헵번을 떠올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강원도 사투리로 ‘어서 오세요’라는 뜻의 ‘오드레요’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새로 문을 연 식당이라 그런지 산뜻하면서도 따뜻한 정취가 느껴졌다. 9월, 벌과 나비가 붕붕거릴 것 같은 들꽃이 나를 편안하게 반겼고, 카운터에 놓인 커다란 가마솥 세 개에서는 구수한 밥 냄새가 모락모락 날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늘 비니 모양의 주방 모자를 쓰고 있던 분이 강창기 셰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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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하나하나도 손으로 빚은 도자기라서 그런지 저마다 다른 멋이 있었다. 혼자서 이렇게 오밀조밀한 음식들을 하나씩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따뜻한 물을 부탁했더니 내게 차를 내어주었고, 디저트로 수박 빙수도 서비스로 챙겨 주었다.

 

그날 저녁을 먹고는 시티센터의 ‘Fall for Dance’ 공연을 보러 갔다. 좌석에 상관없이 30달러에 표를 판매해 금세 매진되는 공연인데, 마침 앞쪽 가운데에 혼자 남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게 웬 행운인가 싶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날은 혼자였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공연을 보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남을 대접하듯 나 자신도 정성껏 대접했다는 것이 오래도록 뿌듯하게 남았다. 그날의 기억 속에 오드레가 있다. 

 

그 후 친구에게 오드레를 소개하기도 하고,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면 가끔 다시 찾곤 했다. 특별히 친지들을 만나는 일이 아니면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닌데, 남편 생일이 다가오자 어디에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일도 집에서 맹숭맹숭 보낼 걸 뻔히 아니까, 꼭 마음에 드는 식당을 골라 저녁을 먹고 자기들에게 생일 선물로 청구하라고 한다. 고맙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그냥 돈으로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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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오드레가 떠올랐다. 그런데 알아보니 8월 22일이 마지막 영업일이라고 했다. 8월 20일 개업 2주년을 맞아 사흘간 행사를 열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 행사의 주제도 ‘생일상’이었다. 한국의 미역국 전문점 ‘오일제’와 함께 준비한 특별한 자리라고 했다.

 

문을 닫는다고 하니 식당을 천천히 둘러보게 된다. 오드레의 트레이드마크인 가마솥 세 개, 그릇들을 수납해 놓은 심플한 나무 찬장, 손으로 빚은 그릇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벽의 그림들, 자그마한 화장실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비누와 휴지 케이스….  하나하나에 이 식당을 만들고 가꿔온 사람의 배려와 정성이 배어 있었다. 

 

문득 그날 아침 들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Blue in Green’이 생각났다. 빌리지 뉴스에서 영화 “Everybody Digs Bill Evans”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우연히 듣게 된 곡이었다. 제목 때문이었을까? 푸른빛의 멜랑콜리 속에서도 어딘가 초록빛 희망을 품고 있는 듯한 음악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음악이 오드레의 마지막 날과 잘 어울렸다.

 

요즘 뉴욕에서는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한식당도 많아졌고, 정식은 미쉐린의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았다. 오드레 역시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음식을 선보이며 빕 구르망에 선정되었다. 그래서인지 오드레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조금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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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주방 입구 쪽에 잠시 나온 강창기 셰프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식당이 문을 닫는 것이 아쉽기도 했고, 혹시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셰프는 지난 2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당분간은 좀 쉬고 싶다고 했다. 너무 힘들 때는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잘하셨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오드레에서 여러 번 식사를 했지만, 이날의 음식이 가장 좋았다. 집에서도 한번 만들어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2년의 마지막을 생일파티처럼 축하하는 것도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손님을 맞고 음식을 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오드레의 마지막 날을 글로 남기고 싶었나 보다.

 

이날의 메뉴는 식전 주전부리로 매작과와 김부각, 그리고 옥수수죽 튀김이 나왔다. 세 가지 막걸리와 소주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도 준비되어 있어 메인 코스와 함께 곁들였다.

 

오이감자 샐러드는 셰프가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샐러드에서 가져온 음식이라고 했다. 사과, 오이, 감자에다, 키위와 양배추도 곁들여 마요네즈에 가볍게 버무린, 어딘가 익숙한 추억의 샐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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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남편과 오믈렛을 만들면서, 남편이 호박과 양파를 카레라이스에 넣듯 큼직하게 썰기에 잔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오드레에서 잘게 썬 채소를 보니 남편에게 말했다. ‘거봐, 오믈렛에는 이렇게 써는 거라니까.’

 

잡채도 인상적이었다. 당면 대신 노란 호박과 푸른 호박을 얇게 썰어 전복을 올리고 잣가루를 입혔다. 반건조 방울 토마토와 황백지단까지 더해져 재료들이 조화로웠다.

사태찜은 매콤했다. 무와 당근, 단호박이 함께 들어갔다. 갈비찜은 아무래도 기름기가 많은데, 사태찜의 쫄깃하고 담백한 맛을 보니 집에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여기에 조그맣게 썰어 올린 배추전이 바삭한 식감을 더해주는 킥이었다

 

마지막에는 ‘오일제’가 3일 동안 팝업으로 준비한 반상이 나왔다. 들깨 미역국과 가마솥밥, 김치와 오징어회, 그리고 미역을 찍어 먹는 소스가 함께 나왔다. 오일제의 신동훈 셰프가 직접 나와 미역을 먼저 소스에 찍어 먹고, 나머지는 밥에 말아먹으라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원래 소스 없이 먹는 것을 좋아하고 밥을 국에 말아먹지 않아, 미역을 소스에 살짝 찍어 먹은 시늉만 한 뒤, 국물을 뚝배기째 들고 마셨다. 사골 국물에 들깨가 더해져 고소하면서도 시원했다. 몇 년 전에 팝업으로 시작했던 돼지국밥집 옥동식처럼, 뉴욕에도 이런 들깨 미역국집이 생기면 자주 갈 것같다.

 

바닐라 젤라토에 바삭한 쌀튀밥을 올린, 톡톡튀는 디저트가 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 작은 초 하나가 올라왔다. 남편의 생일을 알고 준비해준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촛불 하나에 마지막 식사가 더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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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Thank you for being part of our story”, 2026, Sept. Digital Painting

 

 

요즘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뉴욕에도 한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비싼 렌트와 인건비, 치열한 경쟁에 더해 사람들이 예전만큼 외식을 하지 않아 식당 운영이 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한다. 여러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도 이 같은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점심에는 도시락 판매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들은 하나 둘 사라지는 것 같다. 미쉐린 1스타를 받았던 Telepan, 일본 쇼진 요리를 선보였던 Kajitsu, Brushstroke, 그리고 화반도 그랬다. 딸도 내가 어떤 식당을 좋아한다고 하면 가끔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식당은 Endangered Species(멸종위기 종)야.  없어질까 봐 걱정돼.”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담백하고 깔끔하게 차려내는 음식이다.  그래서 오드레의 마지막 날이 더 아쉬웠나보다. 

 

하지만 마지막을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꼭 끝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 아침 들었던 ‘Blue in Green’처럼 지금은 조금 푸른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젠가 다시 초록으로 돌아갈 힘이 오늘의 마무리 속에 있는 것 같았다.

 

 2년 동안 좋은 음식을 만들어준 강창기 셰프에게 말하고 싶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언젠가 다시 세프의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PS1.

 

Miles Davis - Blue In Green (Official Audio)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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