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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황/택시 블루스
2015.07.21 20:44

(109) 필 황: 내 택시 안의 게이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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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블루스 <8> 그들도 우리처럼 


내 택시 안의 게이 커플



taxi-eastvillage.jpg


 

시 운전을 하다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태우게 된다. 거기엔 게이 커플도 당연히 포함된다.

 

게이 커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성적 취향을 나타내 보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남자끼리 또는 여자끼리 탔는데 키스와 같은 신체접촉을 하면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도 말투나 분위기에서 동성 커플임을 짐작할 수 있는 손님들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게이 커플이든 레즈비언 커플이든 상관없이 남녀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한쪽은 좀 칭얼거리듯 투정하거나 애교를 부리고 다른 쪽은 어르고 달래며 받아주는 식인데 그런 모습들은 일반 남녀 커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처음 게이 커플이 뒷좌석에서 키스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다소 신기하기는 했으나 그리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 신경도 안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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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시카고에서 택시 안 게이 커플이 키스를 하다가 운전수에 의해 쫓겨난 후 동성애 차별이라며 일리노이주 인권국에 고소했다.



런데 기억에 남는 게이 커플이 있기는 하다. 왜냐면 그 중 한 명이 20대 초반의 한인 청년이었으니까. 사실 그가 한국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그들을 코리아타운에서 태웠고 청년의 얼굴 모습이 한국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 유학생으로 짐작할 뿐이다. 


다른 한명은 외국인이었는데 국적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스라엘이나 아랍 출신으로 보이기도 하고 유럽 출신으로 보이기도 했다. 둘 다 취해 있었는데 한인 청년이 더 많이 취한 상태였다. 루즈벨트 아일랜드로 가는데 아마도 한인 청년의 집으로 가는 듯 했다. 대화 내용을 들어서는 그들은 그날 처음 만났거나 적어도 오래 알던 사이는 아닌 듯 했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이때는 좀 깜짝 놀랐다. ‘어 얘들 게이였어?’ 외국인 청년이 키스를 먼저 시작했고 한인 청년은 다소 방어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한인 청년의 얼굴은 슬퍼보였다. 그에게서 눈물을 본 것 같은 기분은 내 감정이입 때문일까? 참 기분이 묘했다.



taxi+driver+gay.jpg Photo: New York Post

2009년 뉴욕 택시 드라이버가 키스하는 게이 커플을 쫓아냈고, 이 커플은 NYC 택시리무진인권위원회에  이 드라이버를 불평했다. 



다른 커플은 백인 남성들이었다. 30대로 보였다. 잘 생기고 옷도 정장으로 잘 갖춰 입었다. 그들도 여느 게이 커플과 다를 바 없었다. 애정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투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연인 사이에서나 오갈 수 있는 부드러운 말투와 표현들. 그리고 한 명이 중간에 먼저 내렸다. 


남은 남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의 목소리가 달려져 있었다. 통화 내용을 들으니 자신의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이때 그는 게이 남성이 아니라 그저 효성스러운 보통의 아들의 모습이었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그 남자는 다른 곳에 전화를 걸어 업무와 관련한 일들을 처리했다. 이때 그의 모습은 지적이고 명석한 전문직 남성이었다. 이날의 경험은 내가 갖고 있던 게이 남성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았다. ‘이 사람들 특별하지 않구나.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이구나.’

 

어쩌면 요즘도 많은 게이 커플들이 탔을 것인데 내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굳이 티를 내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갖고 있던 게이 남성의 이미지는 옷을 특이하게 입고 말투나 행동거지가 여자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도 있겠으나 실제 내가 택시에서 만난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외모로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성적취향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택시기사인 내 입장에서는 그들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손님이다.



002황길재100.jpg 필 황/택시 드라이버, 전 뉴욕라디오코리아 기자

1960년대 막바지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고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486세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독립영화, 광고, 기업홍보 영상, TV 다큐멘터리, 충무로 극영화 등 영상관련 일을 주로 했다. 서른살 즈음 약 1년간의 인도여행을 계기로 정신세계에 눈뜨게 된 이후 정신세계원에서 일하며 동서고금의 정신세계 관련 지식을 섭렵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차 미국에 왔다가 벤처기업에 취업,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2010년부터 뉴욕라디오코리아 보도국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3년 여름부터 옐로캡 드라이버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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