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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준 코리아: 엄마야, 나는 왜?
잊혀져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 (5)
엄마야, 나는 왜?
03년 여름 즈음부터 가게에 사진을 걸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2년 정도 전이었나.
'연애소설'이라는 영화에서 차태현이 자기가 일하는 작은 찻집 여기저기에 나무집게로 걸어놓은 흑백사진들을 보고,
그게 너무 좋아서, 나도 저거를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손님들 식사하는데 걸리적거린다는 엄마의 작은 반대가 있었으나, 나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했기에-
그렇게 한 장 두 장 사진을 걸기 시작했고, 점점 사진이 늘어감에 따라 손님들은 엄마에게 사진의 출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들놈의 대수롭지 않은 취미활동.’ 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손님들의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하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예쁘죠. 우리 아들이 찍은 사진들이예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손님들의 궁금함을 해결해 주는 것은, 힘든 가게 일 와중의, 엄마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더욱더 열심히 사진을 걸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공대생인 내가 사진기를 가지고 밖으로 나도는 정당성을 엄마에게 증명하기 위함이라 했으나,
사실은 바르지 못했던 고교시절, 단 한번도 성적표로 엄마를 기쁘게 해줄 수 없었던 내가,
이렇게 늦게나마 무엇인가로 당신을 뿌듯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가슴 설레는 일이었고,
그런 생각들이 은연중에 나를 더욱더 열중하게 만들었던 듯하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고, 나는 사진 공부를 위해 홀로 미국으로 왔다.
일년전 겨울, 준욱이형이 선물해준 아이패드로 엄마는 어렵게 어렵게 인터넷을 하는 법을 배웠고,
어떻게 알았는지 내 홈페이지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꽤 많은 경우 내가 전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을 이미 아는 눈치인 엄마를 대하며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전화기 너머로 엄마는 이야기했다.
“준태야, 매일 네 홈페이지를 구경한단다.
네가 이곳을 떠난 지금,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조용한 가게에 홀로 앉아 네가 쓴 생각들과 사진을 보는 것이,
내 아들이 이렇게 하루 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가 요새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란다.
엄마에게, 이런 즐거움을 주어서 고맙구나 아들아.”
최근 무의식중에 부쩍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예쁜 이야기들만 골라서 쓰려고 노력했던 것은,
그래, 아마도 은연 중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June Korea/Visual Artist
서울 출생. 한국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사진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 캘리포니아 Art Center College of Design(ACCD)의 학사 과정, 뉴욕 School of Visual Arts(SVA)의 석사 과정을 각각 장학생으로 수료했다. 뉴욕에 거주하며 영상과 사진을 통해 그와 인형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속 세계의 이야기들을 현실 밖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미국 첫 개인전 'Still Lives: As I Slept, I Left My Camera Over There'로 데뷔했고, 미 서부와 동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지에서 전시와 출판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http://www.Jun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