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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이영주: 세구아로 사열식 그리고 세도나
뉴욕 촌뜨기의 일기 (41)
세구아로 사열식 그리고 세도나
글: 이영주, 사진: 이명선/Melissa Lee
세도나의 벨록(Bell Rock) Photo: Melissa Lee
아리조나 주에 있는 ‘세도나’는 늘 가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기를 받는다는 얘기 때문이었습니다다. 지구상에 우리가 기를 받는다고 표현하는 볼텍스(Vortex)가 21곳이 있는데, 그 중 5개가 세도나에 있다는 것입니다. 볼텍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땅 속에서 나오는 고유의 에너지 파장(Earth wave)이라고 합니다. 가톨릭인 제게 기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욕심으론 다섯 군데 다 찾아가 기를 받고 싶지만, 그저 한 곳만에서라도 기를 받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했습니다. 몇 년 전, L.A.에 갔을 때 마침 하던 식당을 접은 대학동창에게 자동차로 같이 가달라고 했더니 “어휴, 나 그렇게 장거리 운전 못해.”, 하면서 손사레를 치는 바람에 얼마나 야속하고 실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도나를 2월 중순에 다녀왔습니다. 작년부터 호리카 클럽에서 아리조나를 가기로 했었는데, 그만 멀리사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미루어진 것입니다. 해가 바뀌는 바람에 참가자도 저와 멀리사, 두 명으로 줄었습니다. 작년 9월부터 예약을 해놓고 목이 빠지도록 2월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세구아로 선인장 퍼레이드 Photo: Melissa Lee
피닉스에서 세도나로 가는 길은 산 위에 팔을 벌리고 우뚝 서 있는 세구아로(Saguaro) 선인장 때문에 마치 외국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와이에 가도 야자수 가로수들과 즐비한 열대식물로 이국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이라고 생각하지 외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피닉스에 도착했을 때부터 다양한 선인장군으로 정원을 가꾼 집들과 사막지대를 보니 마치 외국여행을 나온 것처럼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세구아로 선인장은 키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높이가 다양한데, 우뚝 선 굵은 몸통이 장승같기도 하고 손가락 같기도 해서 그 다양한 손가락들이 재미있습니다. 그런 녀석들이 두 팔을 벌리고 산에 군데군데 서 있으니 마치 우리를 환영하러 나온 사열대 같았습니다. 산 길을 따라 바닥에는 같은 선인장군인 조슈아 트리(Joshua tree)가 양탄자처럼 깔려 있고, 그 사이 세구아로들이 서 있습니다. 두 시간 걸리는 세도나 가는 길이 세구아로 덕분에 지루할 새가 없었습니다.
세도나의 벨록(Bell Rock) Photo: Melissa Lee
세도나에 도착해서 세도나의 얼굴인 벨록(Bell rock)부터 만났습니다. 거대한 종 모양의 붉은 색 벨록의 위용은 가까이서 보니 참으로 웅장했습니다. 우리는 벨록만 탐색하기로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표지만 따라서 걸으면 되었습니다. 둘러둘러 난 길은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가파른 경사가 없었습니다. 오르려고 마음 먹으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우선 너무 더운데다 그늘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서로 눈치보다가 삼분의 이쯤 올라갔을 때 “아휴, 힘드네.”, 하고는 “내려갑시다.”, 서로 합이 맞아서 그만 뒤돌아 내려왔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정상까지 가지 않고 우리처럼 내려가기에 아쉬움이 덜했습니다. 정상을 정복한 젊은이들이 두어 명 보였지만,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우리 벨록에서 기 받아야 하는데 어쩌지?” 하면서 그래도 아쉬워하니 멀리사는, “여기 온 것만으로 기는 받은 거얘요.”하는 바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붉은 산들이 주는 중압감 아닌 중압감은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장소라는 기운이 매우 강했습니다.
무조건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붉은 사암 산의 미색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올라올 때는 그렇게 멀지 않았는데 내려올 때는 왜 이렇게 길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멀리사가 시야에서 멀어진 벨록을 가리키면서 “우리 길을 잘못 들었어요. 벌써 산을 몇 개나 지나왔는지 몰라요.”, 하면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코 앞에 벨록을 두고 걸어 올라갔는데 우리는 벨록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무조건 벨록 방향으로 가면 되니까 걱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늘 없는 더운 길을 뜨거운 해를 머리에 이고 걷는 게 힘들었을 따름입니다.
세도나의 성십자성당 Photo: Melissa Lee
성십자성당(Chapel of the Holy Cross)은 마치 기적의 성당 같습니다. 바위 위에 아주 조그맣게 십자가 모양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1956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1957년, 미국 건축가상을 수상했을 만큼, 미니멀하지만 매우 매력적인 건축물입니다. 2007년에 아리조나 주의 7대 건축물로 지정되면서 이제는 세도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성당 안에 들어서니 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한쪽 귀퉁이에 앉아 기도를 올렸습니다. 몸에 뜨거운 기운이 퍼지면서 마치 봄의 아지랑이처럼 평화가 가슴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환각이었는지 환청이었는지, “세도나에서 받고 싶었던 소원을 이루었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도 모르게 비로소 안도의 숨을 깊이 들이쉬었습니다. 지하의 선물센터에서 멀리사는 제게 세도나의 붉은 사암에 십자가를 붙인 조그만 돌십자가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Photo: Melissa Lee
세도나. 그렇게 가고 싶었던 세도나는 물론 제가 꿈꿨던 세도나는 아니었습니다. 상업적으로 많이 개발되어서 식당이며 호텔, 상점들이 코 앞까지 성황 중인 주변 풍경은 절 안마당까지 주점이 들어선 한국의 현실과 오버랩 되어 기분이 편안치 않았습니다. 오래 전에 갔던 영국의 세익스피어 생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관광객을 위해 주변이 온통 관광산업으로 넘치는 모습이 참으로 낯설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옛날처럼 고고한 명상지대를 꿈꾸는 것부터가 모순이겠지만, 그래도 성스러운 곳 주변만은 품위 있게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도나 전체에 넘치는 기의 알 수 없는 힘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미지의 희망과 꿈의 에너지를 준다는 믿음에 변화는 없습니다. 그 신묘한 기운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성당에서, 산길을 걸을 때, 바위에 앉아 있을 때도, 그 에너지는 쉬지 않고 우리를 두드립니다. 그 두드림을 알아듣고 알아듣지 못하고는 개인의 능력일 것입니다. 벨록의 모습이 오늘따라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이명선 Melissa Lee/freelancer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대학원 미술교육학 전공, 사진 부전공. 항상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과 사진을 찍으면서 무심코 지날 수 있는 사물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