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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 이수임: 떠나는 이, 남겨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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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 남겨진 이
와이프가 죽으면 남자들은 화장실에 가서 웃는단다. 반대로 와이프를 보내고 우는 남자를 봤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눈물 흘리는 그를 보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부인이 떠난 빈집에서 혼자 움직거릴 그를 상상하며 마음 아파하고 있다. 한국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의 집안 풍경이 떠오른다. 넓은 리빙룸에 들어서면 검은 그랜드 피아노가 다이닝 룸을 가로지르는 통로에 있다. 부인이 오랜 세월 수집한 고가구들이 전시장에 들어선 것처럼 각각 외롭게 떨어져 있다. 함께 살던 동반자가 떠나고 가구처럼 남겨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어릴 적 데이트할 때 내 입으로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싫어도 싫다는 말 대신에 거리를 두는 방법을 선택했다. 스스로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리면 연락이 끊어지고 관계는 끝난다. 차라리 떠나는 사람의 뒤를 보며 남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아서였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취직했을 때 난 구직을 못했다. 그래서 일본어 학원 새벽반에 등록했다. 한달 한달 지날 때마다 등록했던 사람들이 떠났다. 뚜렷이 갈 곳이 없던 나는 남아 있었다. 결국, 다 떠나고 등록생 두명만이 남았다. 가르치던 선생님도 횅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수업을 중단했다.
대학원에서 지리산 여행을 갔다. 남원에서 시작해서 구례에서 끝나는 일곱 고개를 넘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당연히 몸이 연약한 나 때문에 강행군에 방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아버지가 준비해준 건포도와 치즈를 주머니에 넣고 먹으면서 동료들의 뒤를 살살 따라갔다. 중도에 동료들이 하나둘 뒤처지기 시작하다가 하산도 했다. 일곱 고개에 다다랐을 때 나는 앞장서 있었다.
함께 친하게 어울리던 친구 4명이 서둘러 결혼하고 나 혼자 남겨졌다. 난 선택받지 못하고 계속 남겨지는 한국 생활에 염증을 느껴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시절 동료들마저 학위를 받아 들고 고국으로 직장을 잡아 떠났다. 내가 기억하는 고국은 춥고 외롭게 홀로 남겨진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국에 돌아가 살고 싶지 않다.
지금도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다가 한 사람씩 자리를 떠도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남겨지는 것에 익숙해지며 즐기다가 그렇게 습관화돼버린 것이다. 장례식에서 만난 지인도 부인이 떠난 자리에서 슬퍼하지 말고 추슬러 남겨진 삶을 즐기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수임/화가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