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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2.07.30 13:48

(631) 이수임: 여행의 참맛

조회 수 97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26) 식도락가와 도시락 

 

여행의 참맛 

 

도시락 여행.jpg

 

비가 곧 떨어질 듯 어두운 먹구름이 하늘을 가린 날이다. 뉴욕 턱시도 파크(Tuxedo Park) 호숫가에서 친구와 도시락을 먹으며 시시덕거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늘을 보고 피식 웃는 내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친구와 나는 뉴욕시를 벗어날 때마다 도시락을 먹고 싶으면 싸고, 귀찮으면 빈손으로 간다. 서로 요깃거리를 장만할지 말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도시락이 4개 그리고 와인 안주 2개, 토탈 6통이 겹칠 때가 있었다. 친구는 보온 통에 따뜻한 야채 수프를 가져왔다. 시간에 쫓겼는지 감자가 서걱서걱 씹혔다. 그 서걱거리는 감자가 어찌나 맛있던지. 

 

“조그만 여자가 오지게도 많이 먹네.” 

게걸스럽게 먹다가 친구 말에 아쉬운 듯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나 이렇게 야외에서 먹는 즐거움에 놀러 다니나 봐.” 

 

먹을 때는 몰랐는데 도를 넘은 것 같다. 소화를 시키지 못해 꺽꺽댈 불안감이 엄습한다. 고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넣고 계속 들어간다. 목구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뱃가죽 늘어지는 통증이 왔다. 허리선이 드럼통처럼 일자가 되려고 한다. 

 

집 밖에서 먹는 맛이 너무 맛있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차 뒤에 와인을 싣고 다니며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종이컵에 와인을 담아 뚜껑을 덮고 커피 마시듯 마시며 낯선 마을을 기웃거린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 전봇대를 끌어안고 우리는 수다를 떤다. 

 

“우리 기차 타고 갔던 곳이 어디였지?” 

“어디?” 

“기차 떠날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고 역전에서 도시락 펼쳐 놓고 먹었잖아. 놀라서 뚜껑 덮어 싸 들고 뛰었던 곳.” 

“아! 포킵시(Poughkeepsie).” “

 

"오래전 남편과 캐나다에 갔다 오다가 국경 검문소에서 캐나다에 뭐 하러 갔다가 오느냐고 물었어. 

'점심 먹고 오는데요.'

했더니 검문하는 사람이 웃으며 즐거운 여행하라던 기억이 나네. 그때 우리 정말 국경 넘어갔다가 점심만 먹고 왔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여행하면서 본 것은 기억나지 않고 먹은 것만 기억나.” 

 

나는 먹었던 장면을 말해야 갔던 장소를 기억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가 거기다. 다 그렇고 그래서 그 많은 장소를 기억하기 쉽지 않다. 친구와 도시락 까먹고 놀다 보니 2022년도 화살처럼 내가 모르는 어디론가 부지런히 날아간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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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8.03 08:03
    여행의 참맛-제목이 신선함을 주네요.
    여행은 시들었던 몸과 마음을 충전시켜 줍니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어디고 여행을 떠나자고 하면서 살았는데 나도 모르게 귀밑부터 흰머리가 늙음을 재촉합니다. 지금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건만 다리에 힘이 약해져서 장거리보다는 가까운 거리를 산책하거나 드라이브하면서 여행의 맛을 냅니다. 남편과 같이 갈때는도시락을 싸서 갑니다.잡곡밥에 멸치볶음, 파계란말이, 조미김, 두부조림, 아삭고추(맵지않음)를 찬합에 담아서 가져가고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숭늉을 만들어서 마호병에 넣어서 갑니다.
    호수가나 꽃이 만발한 작은 공원이 눈에 띄면 차를 파킹하고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을 꺼내서 먹으면 꿀맛이지요.
    여보, 다음에는 행선지를 어디로 할까요? 서로 물어보면서 흰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이날만은 부부가 싸우지않고 다정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란 말을 듣겠지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