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49)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1)
- 홍영혜/빨간 등대(69)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294) 스테파니 S. 리: 살만한 세상
흔들리며 피는 꽃 (30)올바른 선택
살만한 세상
Self portrait, Stephanie S. Lee, 2013 , Color and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left), Claire Lee’s drawing, 2017
요즘 자주 차를 몰고 맨하탄을 오갔더니 못이 박힌건지 타이어 발란스가 맞지않다는 경고가 뜬다. 내일 또 나갈일이 있는데, 뉴욕 도로는 왜 이모양인가 투덜대며 여름학교에 아이를 보내놓고 바로 정비소로 향했다.
연일 내리던 비도 그치고 오랜만에 그리 덥지 않은 화창한 여름날씨라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어놓고 자연바람을 느끼며 가고 있는데 앞 차가 운전석 지붕 위에 덩그라니 지갑을 올려놓고 가고있다. 마침 신호에 걸린데다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고 있길래 창밖으로 손을 내서 할수 있는 최선의 바디 랭귀지로 ‘너 차 지붕위에 뭐 있다’ 를 표현했으나…. 정신나간 여자 보듯 찡그린 눈으로 쳐다보더니 신호가 바뀌자 쌩 하고 그냥 달려나가 버린다.
눈앞에서 데굴데굴 지갑은 떨어지고 차들은 무심하게 지나쳐 가버렸지만 젠장, 바로 내 앞에 있던 차에서 떨어진데다 지갑주인하고 눈까지 마주쳤던지라 그냥 지나가려니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결국 비상등을 켜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차들이 없을 때를 기다렸다가 지갑을 주어왔다.
근처 정비소에 도착해 차를 맡겨놓고 지갑 안을 뒤져 연락처를 찾는데, 이런 저런 카드들은 많은데 지갑 주인의 전화번호 찾기가 쉽지 않다. Medicaid 카드, 꼬깃꼬깃하게 접은 얼마 안되는 현금, 학교 앞 건널목 crossing guard 일을 한다는 신분증… 그리 여유있어 보이지 않은데다 카드가 빼곡하니 많이도 들어있어서 꼭 찾아줘야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연락처가 적힌 정비소 영수증을 발견했다. 이 사람도 얼마전에 차가 말썽을 부렸나보네… 하고 영수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바로 전화를 받는다.
Claire Lee’s drawing, 2017
반가운 마음에 운전면허증에 있던 이름을 대며 본인이 맞느냐, 내가 당신의 지갑을 주워서 갖고 있다. 나는 지금 근처 정비소에 있으니 찾아가라. 신나서 말했는데 왠걸, 이 여자의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다. 당연히 “내가 당장 그리로 가서 받을게”, 할줄 알았는데 자꾸 딴소리를 한다. 본인은 내가 있는 정비소 쪽을 간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자기 지갑을 갖고 있냐고 의심가득한 목소리로 되묻는 것이다. 차에서 떨어져서 주웠다고 설명을 해도 믿지를 않는다. 지갑을 주운 길의 이름을 대고, 나는 타이어를 고치러 와야했기 때문에 그 길에서 조금 내려온 지금의 정비소에 와 있는 것이라는 걸 몇번이나 설명하고 나서야 지갑을 찾으러 오겠다고 한다.
위험한 도로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 구해온 지갑이건만… 내가 괜한 짓을 한건가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래도 지금 연락이 닿지 않았으면 경찰서까지 또 가야하느라 귀찮았을텐데 나와있는 김에 직접 전해줄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지갑 주인은 인사도 제대로 않고 내가 준 지갑을 받아 내용물들이 제대로 있나 꼼꼼히 확인을 하고서야 얼굴이 밝아진다. 그제서야 망설이듯 $20만 줘도 되겠냐며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하고 얼른 정비소를 빠져나왔다.
“Being too nice can be a dangerous thing sometimes.” 남의 편이 항상 나에게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범죄의 타겟은 항상 좋은사람,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도와주려다가 항상 멍청하게 당한다고. 그럴때마다 그럴리가 없다고 우기며 항변하지만 , 나도 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 이하의 짓을 하는지, 얽히고 섥힌 허영과 이기심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악하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가 도망나와 겨우 얻어탄 차에서 또 성폭행을 당하고, 돈 때문에 부모 자식간에 칼부림이 나고, 여리고 약한 아이나 동물들이 학대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아무런 이유없이도 사람을 모함하고, 죽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윤을 따지지 않는 선의로 돌아가고 있으며, 여전히 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않은가.
이제 일곱살인 딸의 그림은 아직 밝다. 딸이 그린 때묻지 않은 그림들을 보며 이 험한 세상 속에서 딸이 살아나가는 동안 어떻게 지금의 선한 마음을 많이 상하지 않으며 적응해 나갈것인가가 몹시 걱정스럽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살이에서 부디 손해를 보더라도 올바른 선택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사람됨을 지키는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살면서 옳은 일을 하기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천국에 가겠다는 기대도 아닌 그저 그것이 나쁜 놈이 되는것 보다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라는 글귀를 보며 공감한다. 사람들이 다 내맘같지 않다는걸 다시금 깨달았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고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이 행동했을것 같다. 그나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마음이 덜 불편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으므로…
저녁 때가 다 되어 지갑주인에게서 고맙다고 문자가 왔다. 아까의 의심은 어디갔는지 God bless you까지 곁들여서. 다행이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