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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스테파니 S. 리: 엄마는 외출 중
흔들리며 피는 꽃 (33)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
엄마는 외출 중
“Smiling” Figure, Mexico, 7th-8th century, Ceramic,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뒤늦게 다시 학생이 되어 허걱대며 쫒아가던 한 학기가 무사히 끝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청소며 자잘한 일상의 일들을 해치운다.
파이널만 지나고 나면 꼭 해보리라 결심했던일 중에 하나가 ‘영화관에서 영화보기’ 였다. 집에서 쉽게 영화를 보는 시대에, 극장에 찾아가 영화 보는 것이 특별한 나들이가 되었다. 때마침 좋아하는 배우 케이트 블랜쳇(Cate Blanchett)이 일인다역을 했다는 영화 '매니페스토(MANIFESTO)'가 개봉되었기에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몇몇 독립영화관에서만 상영하는 영화라 맨하탄까지 찾아가야 하지만, 이번에는 체인 영화관에서 하는 '애들 영화' 말고, 내가 좋아하는 '어른 영화'를 극장에서 보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날을 잡아 기분좋게 길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리고 난데없이 학교에서 아이가 결석이라는 자동 응답 메세지가 돌아간다. 결석이라니 무슨소리야, 아침에 내가 학교입구까지 데려다 줬구만. 복도에서 손흔들며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 까지 보고 왔는데. 분명히 착오가 있다고 확신하고 학교로 전화를 했다. 기계 응답기를 돌고 돌아 드디어 사람하고 통화가 되었으나 다시 담당부서로 연결해 주겠다며 자동 응답기로… 간만에 뭐 좀 할라고 하는데 협조를 안해주시는구만. 짜증이 있는대로 난다.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아까의 확신과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슬슬 불안함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설마 내가 모르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혹시 친구랑 놀다가 학교 밖으로라도 나간건가? 전화 연락은 계속 안되고 점점 더 불안해져서 영화고 뭐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화좀 받아라…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가 출석 담당부서 사람과 드디어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 줄 생각은 않고 결석이 되면 자동으로 응답기가 전화 메세지를 남기는 거에요. 하고는 똑 끊어버린다. ‘아니 이여자가…’ 머리가 하얘져서 만사 재쳐두고 차를 돌려 학교로 향했다.
교무실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아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한다. 다행히 아이는 교실에 있다고, 담임선생님이 지각에 체크한다는게 결석란에 잘못 표시해서 그런것 같다고 한다. 휴~ 천만 다행이다. 그래 그깟 영화가 뭐가 대수라고, 애만 잘 있으면 된거지.
Film Forum and "Manifesto" poster
그렇게 1차 시도에 실패하고 결국 영화는 다음 주로 미루었다. 이번에는 아예 친구와 함께 미리 표를 구매했다. 환불도 안되는 티켓에 친구랑 약속까지 해뒀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며. 언제부터 영화관에서 영화 한편 보는 일이 이렇게 작정하고 결심해야 하는 일이었나… 아이 엄마에게 자신을 위한 시간들은 늘 우선 순위의 제일 마지막으로 밀려난다.
일주일을 기다려 드디어 D-Day. 아 그런데, 날씨는 갑자기 추워지고, 비까지 내려 차가 꽉 막힌다. 영화시간은 다 되가는데 차는 움직일 생각을 않고 이러다 영화 못보는 거 아닌가 불안불안해 하며 겨우 주차를 하고 우산도 없이 냅다 뛰었다. 나도 늦었는데 친구는 나보다 더 늦게 온다고 연락이 왔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먼저 들어가 있을게. 필름포럼 극장에 자리를 잡았다. 앞부분을 놓치니 더 난해한 영화를 다 보고나오니 허기가 밀려왔다. 영화관 근처 레스토랑에서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마침내 여유를 되찾고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비내리는 풍경을 보며 낮술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행복감이 차오른다. ‘너무 좋다! 이렇게 자주 나와야해!’ 하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이쁜 척 사진을 찍어본다. 이런…얼굴이 예전같지 않네… 하며 잠시 시무룩해 졌지만 그래도 마냥 행복해서 수다를 떤다. 하지만 디저트를 채 끝내기도 전에 찰나의 행복은 지나가고 두 아줌마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12시가 되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시간을 자꾸 확인하며 “애 끝날시간 다 되지 않았니?” “어. 나도 애 픽업가야해. 나가자.”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At Cotenna restaurant
같이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하교시간이 겹쳐 그런지 아까보다 차가 더 막힌다. 불안한 친구는 아무래도 지하철이 빠르겠다며 비내리는 찻길에서 먼저 내린다. ‘아이고 영화를 괜히 봤나’, ‘음식을 좀 더 빨리 먹을걸 그랬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조마조마하게 막히는 빗길을 운전해 가까스로 픽업시간 맞춰 세이프-! 아이를 무사히 픽업하고 그제서야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니 친구도 무사히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오는길 가는길 빗속에서 초조해 하며 운전했더니 정글 숲을 헤치고 뭐 대단한 사냥이라도 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름도 의미심장한 보고싶었던 영화를 봤으니 소원 풀었다.
배는 왜이리 자주 고프고, 밥 때는 왜이리 빨리 돌아오는지 오자마자 앉을 틈도 없이 저녁을 한다. 밥을 차려내 주니 아이가 재잘재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한다. 아이고 그래, 영화보다 너가 더 재미나구나. 벌써부터 다음 학기에 애 맡길 곳이 없어서 걱정이지만 그것도 어찌 어찌 되겠지 뭐.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하지만 무사히 지나간다. 울다, 웃다, 고민하다, 행복하다… 영화처럼 내 삶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