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스페셜 (9) 공공미술: 영웅의 시대에서 소통의 시대로
Chicago Special <9> 시카고의 공공미술 Public Arts in Chicago
공공미술: 거대한 '고철'에서 도시의 '심장'이 되다

'The Bean' (Cloud Gate) by Anish Kapoor, 2006.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시카고 스페셜' 연재 순서
1. 시카고 건축 '마천루의 파노라마'
2. 시카고 핫도그 '노 케첩!'
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설계 로비하우스 투어
4.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하이라이트
5. 시카고 블루스, 버디 가이의 전설
6. 오리지널 딥디쉬 피자
7. 시카고대 고대문화연구협회(ISAC) 박물관 하이라이트
9. 시카고 공공미술
10. 호텔 '더 드레이크':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공공미술: 영웅의 시대에서 예술의 시대로
필드 박물관(Field Museum)안에 박제된 유물들이 과거를 증언한다면, 거리의 공공미술(Public Art, 公共美術)은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도시의 살아있는 표정을 만든다.
공공미술(Public Art, 公共美術)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공원, 광장, 거리, 지하철 등 대중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개방된 장소에 설치되어 소통하는 예술작품이다.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obelisk)나 피라미드(pyramid)는 공공미술의 기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벨리스크는 광장이나 사원 입구에 세워져 태양신에 대한 숭배와 파라오의 권위를 세상에 공표하는 역할을 했으며, 압도적인 규모의 피라미드는 공동체에 경외심과 정체성을 부여했다. 이집트의 거대한 구조물들은 파라오의 권력을 과시하고, 신격화하기 위한 선전도구에 가까웠다.

#파블로 피카소의 '무명' Pablo Picasso, Untitled, 1967
그후로 오랫동안 공원과 광장에는 늘 역사 속 장군이나 정치인의 동상들이 위용을 자랑했다. 대부분이 남성들이다. 그러다가 공공미술계에 현대미술품이 등장한 도시가 바로 시카고다. 1967년 시카고 데일리 광장(Daley Plaza)에 피카소의 거대한 무명(Untitled) 조각상이 세워졌다. 특정 인물도 아니고, 제목조차 없던 이 거대한 추상 조각은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시카고 시장 리처드 J. 데일리조차 당황해서 "이게 도대체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거대한 고철 덩어리다" "피카소가 시카고를 놀리려고 만든 원숭이같다" 등 비난했으며, 한 시의원은 조각상을 철거하고, 소방관 동상을 세우자는 법안까지 제출했다.
원래 이 조각은 시카고시민센터(현 리처드 J. 데일리 센터)의 건축가 리처드 베넷이 피카소에게 시를 한편 써보내며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당시 피카소는 원래 어떤 종류의 커미션도 수락하지 않는데, 이번엔 두 유명한 갱스터 도시(시카고와 프랑스 마르세이유)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며 수락했다. 그리고, 피카소는 작품비 10만 달러를 거절하면서 "이것은 내가 시카고 시민들에게 주는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훗날 피카소는 이 조각이 자신의 아프간하운드 '카불(Kabul)'의 머리 형상을 표현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Photo: Jim Widmer Photograph Collection, Wisconsin Historical Society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이 조각상의 경사면을 미끄럼틀 타며 놀고, 사람들이 모임의 장소로 약속을 잡으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무엇을 상징하는 지 정답을 강요하지 않은 '무제' 조각상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담는 시민들의 도화지이자, 시카고의 연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로써 피카소의 고철 덩어리 추상조각은 공공미술 '영웅의 시대'와 작별하고, '예술의 시대'로 문을 활짝 열어놓은 셈이다. 이 조각은 '시카고 피카소(Chicago Picasso)', 또는 'The Picasso'로 불리우고 있다. (50 W. Washington St., Chicago IL)
사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는 '동상의 시대(Statue-mania)'라 불릴 만큼 수많은 이름모를 위인을 신격화한 동상들이 세워졌다. 대중은 점차 박제된 영웅 이야기에 흥미를 잃게되었다. '피카소' 설치 후 시민들의 현대 공공미술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미 대도시들에 공공 건설 프로젝트 예산의 1%를 미술품에 할당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1% 미술법(Percent for Art)이 확산되었다. 시카고는 1978년, 뉴욕은 4년 후인 1982년 1% 미술법을 통과시켰다. 이후로 알렉산더 칼더, 이사무 노구치같은 현대 작가들의 추상 작품들이 동상을 대신해 빌딩 앞을 차지하게되었다.
시카고의 거장 공공미술

#마크 샤갈의 '4계' Marc Chagall, Four Seasons, 1974
마크 샤갈이 1974년 250가지가 넘는 컬러의 수천개 조각으로 제작한 '4계'는 새, 물고기, 꽃, 태양, 그리고 연인들의 모습을 모티프로 시카고의 6가지 풍경을 묘사한 모자이크 작품이다. 프랑스의 작업실에서 도안을 디자인했고, 시카고에서 상감기법으로 짜맞추어 제작된 길이 70피트, 높이 14피트, 너비 10피트의 직사각형 구조물이다. 개막식은 1974년 9월 샤갈이 참석한 가운데 루프(Loop) 지구 내셔널시티은행 플라자에서 열렸다.
샤갈은 이 작품에 대해 "4계절은 인간 삶의 각기 다른 시기, 즉 육체적이고도 영적인 삶의 단계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척 올린(Chuck Olin) 감독의 다큐멘터리'선물: 마르크 샤갈의 사계 모자이크(The Gift: Four Seasons Mosaic of Marc Chagall, 1974)'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Chase Tower Plaza, 10 S. Dearborn St.)

#알렉산더 칼더 작 '플라밍고' Alexander Calder, Flamingo, 1974
거리에 이름까지 붙여진 시카고의 데표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가 설계한 세채의 연방건물로 둘러싸인 페더럴 플라자 앞엔 알렉산더 칼더의 높이 53피트짜리 추상 조각 '플라밍고'가 설치되어 있다. 'Calder Red'로 불리우는 선명한 붉은색의 곡선 조각은 주변의 각진 철골, 유리 건물과 대조를 이룬다. 시카고 건축 보트 투어를 하면서도 감상할 수 있다. (John C. Kluczynski Federal Building, Federal Plaza, 50 W. Adams St. Chicago IL)

#호안 미로의 '시카고' Chicago by Joan Miró, 1981
양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여성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이 조각의 공식 명칭은 '태양, 달, 그리고 별 하나(The Sun, the Moon and One Star)'지만 '미로의 시카고(Miró's Chicago)' 혹은 '미스 시카고(Miss Chicago)'로도 불리운다. 높이 40피트의 이 조각은 마치 드레스 입은 여성이 머리 위에 포크를 꽂고 있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1981년 브런스윅 빌딩 광장에 설치된 이 조각은 피카소의 '무제'(1967) 바로 남쪽에 자리해 짝을 이룬다. (Bunswick Building Plaza, 69 W. Washington St. Chicago IL)
뉴욕 Vs. 시카고: 시민과 소통하는 공공 미술

The Vessel, Hudson Yards, New York
오늘날 공공미술은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특정 영웅을 우러러보게 만드는 '수직적' 조각상에서 누구나 만지고,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수평적' 체험을 중시한다.
2019년 맨해튼 허드슨야즈에 설치된 베셀(Vessel)은 뉴욕의 에펠탑을 표방하며 공개됐다. 영국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위크(Thomas Heatherwick)가 제작한 2억달러 짜리 청동 벌집 혹은 바구니 모양의 조형물은 16층, 150피트 높이에 2천500개의 계단으로 시민들이 오르내리며 즐길 수 있는 공공미술작이었다. 그러나, 공개 18개월 만에 4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2021년 폐쇄됐다가 2024년 10월 철망난간 설치와 보안강화를 거쳐 재개장했다. 공공미술의 실패작으로 남았다.
한편, 2024년 10월 맨해튼 하이라인 공원에 설치된 콜롬비아 출신 조각가 이반 아르고테(Iván Argote)의 6.4 미터 높이 초대형 조각 '다이노소어(Dinosaur, 공룡)'은 뉴욕 곳곳에 상주하며 '날개 달린 쥐(winged rats)라는 악명을 가진 골칫덩이 비둘기를 모델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각은 아이러니컬하게 소외된 뉴요커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정받으며, 영구전시 청원에 5천여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The Bean' (Cloud Gate) by Anish Kapoor, 2006.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한편, 시카고에서 본 세 공공미술작은 소통하는 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뉴욕의 베슬이 허드슨 야즈라는 사유지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본주의적 과시물의 형태로 태어난 반면,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는 서민의 휴식처에서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시민, 관광객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며, 예술의 일부로 만들어 준다. 시카고의 중심거리인 매그니피션트 마일의 고층 건물에 그려진 '블루스의 전설'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벽화는 시카고의 자부심인 블루스의 리듬과 에너지를 도시에 퍼트리는 현재를 상징한다. 또한, 시카고문화센터 뒷 골목에 자리한 '러시모어 여성들(Rushmore Women)'은 사우스다고타의 절벽에 새겨진 미 대통령 4인의 모습 대신 흑인 여성들을 조명하면서 역사를 새로 쓴다.

#아니쉬 카푸어의 '콩(구름 문), 'The Bean' (Cloud Gate) by Anish Kapoor, 2006
2006년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공식 명칭은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지만, 주민들에게는 '더 빈(The Bean, 콩)'으로 불리우는 이 조형물은 길이 66피트, 높이 33피트, 무게는 무려 110톤에 달한다. 영국 출신 작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제작한 미 최초 야외 공공 미술 작품이다. 수은에서 영감을 받은 타원형으로 매끄럽게 광택 처리된 스테인리스 스틸 판 168개로 이루어져 거울 효과를 내며 시카고의 스카이라인과 사람들이 반사된다.
관람객들은 안으로 들어가 거울처럼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을 만지고 왜곡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영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공공미술품으로 인스타그램 시대에 인기있는 작품이다. (Grainger Plaza at Millennium Park, 201 E. Randolph St., between Michigan Ave. & Columbus Ave.)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by Eduardo Kobra, 2016
'시카고 블루스의 아버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1913-1983)는 컨트리풍의 블루스를 탈피해 전기기타, 베이스, 드럼, 하모니카, 피아노를 도입해 도시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시카고 블루스를 확립한 인물이다. 롤링스톤스의 밴드 이름은 그의 노래 "Rollin' Stone"(1950)에서 따왔다.1981년 11월 22일 시카고의 블루스 클럽 체커보드 라운지(Checkerborad Lounge)에서 머디 워터스가 노래할 때 마침 미국 투어 중인 롤링 스톤스(믹 재거, 키스 리처드, 로니 우드, 이안 스튜어트)가 이 클럽을 방문해 그들의 아이돌이었던 워터스와 함께 노래했다. 그리고, 이 레코딩 "Live at the Checkerboard Lounge, Chicago 1981"은 2012년 출시됐다.
높이 9층에 달하는 머디 워터스 벽화는 2016년 브라질 출신 스트리트 아티스트 에두아르도 코브라(Eduardo Kobra)가 그렸다. 코브라의 벽화는 뉴욕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이스트빌리지의 '마이클 잭슨', 테레사 수녀와 간디가 마주보는 모습을 담은 첼시의 '관용(Tolerance)', 프로스펙트 파크의 '프리다 칼로' 등이 그의 작품이다. 머디 워터스 벽화는 2017년 6월 제 34회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 첫날 공개됐다. 조각상은 차갑고, 정적이지만,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머디 워터스 벽화는 시카고 블루스의 역동성을 도시 전체로 확산한다. (17 N State St. Chicago, IL)

#러시모어 여성들(Rushmore Women) by Kerry James Marshall, 2017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건너편 시카고문화센터(Chicago Culture Center) 후문 벽에 그려진 '러시모어 여성들(Rushmore Women)'의 작가는 흑인 생존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화가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이다. 사우스다코타주의 러시모어 국립공원(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 1941)엔 미 대통령 4명(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 테오도어 루즈벨트)의 조각이 있다.
케리 제임스 마샬은 20명의 여성들을 소환했다. 미술관, 출판물 설립자에서 문학계의 거장까지 도시 문화계 발전에 이바지한 여성들이다. 시인 그웬돌린 브룩스, 시카고 셰익스피어 극단 창설자 바바라 게인스,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까지 담았다. 시카고 시는 2017년을 '공공미술의 해(Year of Public Art)' 프로젝트에 150만 달러를 투여했지만, 마샬은 '시민적 의무'로 작업하며, 1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30 N. Garland Court, Chicago, IL)
'시카고 스페셜' 연재 순서
1. 시카고 건축 '마천루의 파노라마'
2. 시카고 핫도그 '노 케첩!'
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설계 로비하우스 투어
4.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하이라이트
5. 시카고 블루스, 버디 가이의 전설
6. 오리지널 딥디쉬 피자
7. 시카고대 고대문화연구협회(ISAC) 박물관 하이라이트
9. 시카고 공공미술
10. 호텔 '더 드레이크':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