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스페셜 (1) 마천루의 발상지-잿더미에서 솟아난 고층빌딩 파노라마
Chicago Special <1> The Birth of Skyscrapers
A Panorama Rising from the Ashes

First Lady River Cruise, Chicago.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나에게 시카고에 대한 첫 이미지는 엽서도, 영화도 아닌 팝송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한국에서 FM 라디오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이나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를 들으면서 '시카고가 죽었던 그날 밤(The Night Chicago Died)'이란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경찰 사이렌과 함께 "In the Heat of Summer Night~"으로 시작되는 노래의 가사를 이해할 수 없었던 10대였다. 영국 그룹 페이퍼 레이스(Paper Lace)가 부른 이곡은 알 카포네 갱단의 총격전을 벌인 시카고 경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당시 무더위와 무시무시한 갱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 시카고라는 이름의 밴드가 히트시킨 애절한 발라드곡 "지금 당신이 날 떠난다면(If You Leave Me Now)"는 이 도시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순화시켰다.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도 시카고 여행은 처음이었다. 뉴욕은 세계의 중심, 뉴욕엔 모든 것이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루이스 설리번과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이끈 시카고의 건축 파노라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로비하우스 투어,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와 고대문화연구협회(ISAC, Institute for the Study of Ancient Cultures), 시카고 블루스, 그리고 시카고 핫도그와 딥디쉬 피자 등 건축물, 미술관, 음악, 음식 등 시카고의 매력을 소개한다.
'시카고 스페셜' 연재 순서
1. 시카고 건축 '마천루의 파노라마'
2. 시카고 핫도그 '노 케첩!'
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설계 로비하우스 투어
4.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하이라이트
5. 시카고 블루스, 버디 가이의 전설
6. 오리지널 딥디쉬 피자
7. 시카고대 고대문화연구협회(ISAC) 박물관 하이라이트
8. 자연사박물관 필드뮤지엄
9. 시카고 공공미술
10. 호텔 '더 드레이크':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시카고 <1> 마천루(skyscrappers)의 발상지
잿더미에서 솟아난 고층빌딩 파노라마

First Lady River Cruise, Chicago.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시카고는 오늘날 뉴욕(인구 850만명, 2024), LA(390만명)에 이어 미국의 세번째(270만명)로 큰 도시다. 1830년 미시간호 남서쪽의 인구 200여명에 불과한 자그마한 정착촌에서 출발했다. 일리노이-미시간 운하는 미시시피강을 거쳐 뉴올리언스까지 이어지는 무역로를 제공했으며, 철도는 시카고를 미 전역과 연결했다. 이후 제조업, 금융업, 상업, 문화의 발달로 시카고는 뉴욕 다음으로 인구가 집중된 도시였지만, 1984년 LA 인구가 시카고를 앞서게 된다.
한 도시에서 건축물은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정체성의 언어이기도 하다. 스카이라인 그 도시의 얼굴이다. 강철, 돌, 유리로 쓰인 도시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뉴욕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크라이슬러빌딩으로 대표되는 아르데코 건축물을 자부하지만, '마천루의 도시(city of skyscrapers)'로 불리우는 곳은 다름아닌 시카고다. 마천루는 가능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공학적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대화재의 재난과 마천루의 탄생

John R Chapin's rendering of the Great Chicago Fire, printed in Harper's Weekly
사실 시카고가 마천루의 도시가 된 이유는 1871년 발생한 대화재(Great Fire)에 있다. 10월 8일부터 이틀간 도시 중심부 4마일에 걸쳐 계속된 대화재로 300여명이 사망하고, 10만여명이 집을 잃었고, 1만7천500여채의 건물이 파괴됐다. 시카고의 1/3이 잿더미로 전락했고, 비극적인 황폐함 속에서 건축물이 피어났다. 백지가 되어버린 도시에 건축가들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 도시계획가들은 목재건축을 금지하는 규정을 신속히 도입했고, 건축가들은 더 강하고, 더 높고, 더 밝고, 더 개방적인 건축방식을 실험하기 위해 시카고로 몰려들어 벽돌, 돌, 철, 강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도심은 새로운 격자 구조로 조성됐다.

루이스 설리번이 Schlesinger & Mayer를 위해 설계한 설리번 센터(1899), 현재는 할인 스토어 타겟(Target)이 사용 중이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摩天樓/skyscraper)는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885년 윌리엄 르바론 제니(William LeBaron Jenney, 1832-1907)가 설계한 홈인슈런스빌딩(Home Insurance Building), 10층(138 ft) 건물이었다. 건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철골구조를 사용한 최초의 건물로 벽은 더 얇고, 창문은 더 크게 만들 수 있었다. 철골구조의 발명은 높이의 한계를 허물었으며, 마천루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건물은 '시카고 건축학파(Chicago School of Architecture)'의 상징이 되었다.

아르데코 양식의 머천다이즈 마트(Merchandise Mart, 1930).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곧 제니의 조수이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멘토가 될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을 비롯, 다니엘 번햄(Daniel Burnham), 존 웰본 루트(John Wellborn Root)같은 건축가들은 시카고를 살아있는 디자인 실험실로 변모시켰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며 기능성, 단순함과 빛을 강조했는데, 이는 오늘날 모더니즘이라 부르는 건축의 본질이다.
1893년, 조선을 세계에 처음 알린 시카고 만국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는 200여개의 웅장한 임시건물에서 전시했다. 세계 46개국의 문화를 소개한 이 엑스포는 6개월간 세계 2천7백만명의 방문객을 끌었고, 시카고의 자신감은 역대 최고조에 달했다.
매그니피선트 마일: 리글리와 트리뷴

미시건애브뉴의 매그니피선트 마일 시작. 왼쪽에 리글리 빌딩 오른쪽은 시카고트리뷴 빌딩.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카고는 뉴욕처럼 경제적, 문화적 호황을 누렸다. 1920-30년대 어떤 건축가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위엄, 전통, 권위를 표현하는 양식을 선호했고, 다른 이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모더니즘, 산업자재 및 기하학적 추상을 수용했다.
1893 시카고 엑스포에서 쥬시푸르트껌을 선보인 리글리(Wrigley) 가문은 재벌이 되었고, 1920년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William Wrigley Jr.)가 시카고강과 미시간애브뉴가 교차하는 곳에 본사 건물을 위임했다. 건축회사 그레이함, 앤더슨, 프로브스트 & 화이트(GAP&W, Graham, Anderson, Probst & White/ 시카고 필드뮤지엄, 시빅오페라)가 세비야 대성당의 탑에서 영감을 얻어 스패니쉬 콜로니얼과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을 혼합해 리글리 빌딩을 설계했다. 흰색 테라코타는 건물이 높아질수록 더욱 밝아지고, 밤에는 외관에 조명이 비친다.
리글리 빌딩은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에어컨이 설치된 사무용 건물이었다. 리글리는 시카고강에서 오크스트릿까지 이어지는 쇼핑가 '매그니피선트 마일(Magnificent Mile)'의 관문이 되었다. 뉴욕의 5애브뉴처럼 매그니피선트 마일엔 리글리를 비롯, 트리뷴타워, 존핸콕센터, 시카고워터타워, 드레이크호텔, 포시즌호텔, 리츠칼튼호텔, 그리고 블루밍데일, 루이뷔통, 티파니 등 럭셔리 숍이 이어진다.


시카고트리뷴 빌딩 외관.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1925년 리글리 빌딩 건너편엔 네오고딕 양식의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 신문사 건물이 세워진다. 트리뷴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무실 빌딩' 공모전을 열었고, 세계 260여명의 건축팀이 응모해 존 미드 하웰스(John Mead Howells)와 레이몬드 후드(Raymond Hood)의 36층짜리 디자인이 당선됐다.
트리뷴 타워(Tribune Tower, 1925) 건축을 앞두고 세계 각지 트리뷴지 특파원들은 파르테논 신전에서 피라미드, 타지마할, 앙코르와트, 만리장성, 파리 노트르담 성당 등 중요 유적지에서 돌과 벽돌을 가져왔고,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서 회수한 강철조각도 추가되어 건물 1층 외관 벽을 장식하고 있다. 고딕양식의 대성당처럼 솟은 트리뷴지는 23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권위있는 신문사다. 리글리와 트리뷴 빌딩의 완공으로 시카고는 부와 자신감을 상징하는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1930년 홀라버드 & 루트(Holabird & Root)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를 뉴욕에 풍미했던 아르데코 양식으로 건축했다. 속도, 대칭, 지그재그 기하학적 장식이 특징인 아르데코는 대공황시대 세련된 낙관주의를 구현했다. 건물 꼭대기에 알루미늄으로 조각한 케레스(Ceres, 로마신화에서 곡식의 여신)상이 서있다.
미스 반데 로에, SOM과 지니 갱

왼쪽부터 Marina Center towers(1967),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AMA Plaza/ IBM Plaza(1972), Trump International Hotel(2009).
한편, 독일 바우하우스 스쿨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는 나치가 학교를 폐교하자 1937년 시카고로 이주했다. "Less is More"를 신봉했던 로에는 일리노이공대(IIT) 학장으로 시카고를 건축철학의 본거지로 구축했으며, 유리, 강철, 그리고 절대적인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순수한 시카고 미니멀리즘을 이끌었다. 로에의 건축 양식은 지역의 특수성을 넘어 세계 공통 양식을 지향하는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으로 불리운다.
로에는 강철 프레임을 노출시키면서 구조 자체를 미학으로 승격시켰다. 시카고에 860–880 Lake Shore Drive (1951)와 연방센터 컴플렉스(Federal Center Complex, 1964–74), 맨해튼의 유리건물 씨그램 빌딩(Seagram Building, 1958)으로 널리 알려졌다. 로에의 유리 건물은 하늘과 시카고강을 반사시키며 도시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레이크쇼어드라이브 인근에 'Mies van der Rohe Way' 거리가 있다.

Willis Tower(1974) and 311 South Wacker Drive (1990).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1968년 건축회사 SOM(Skidmore, Owings and Merrill/ 원 월드트레이드센터, 해운대 엘시티 더샵)의 페루계 브루스 그레이함(Bruce Graham)과 방글라데시아 출신 파즐러 라만 칸(Fazlur Rahman Khan)이 설계한 존핸콕센터(John Hancock Center)는 100층, 1,128피트 높이의 마천루로 당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존핸콕 생명보험회사의 이름을 딴 빌딩으로 안테나까지 측정하면 높이는 1,500피트다.
그레이함과 칸이 1973년 설계한 110층, 1451피트 높이의 시어스 타워(Sears Tower, 현 윌리스 타워/ Willis Tower)는 25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시어스는 1969년까지 약 35만명의 직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소매업체였다. 2009년 런던의 보험회사 윌리스그룹홀딩스(Willis Group Holdings)를 따서 이름이 바뀌었다. 윌리스 타워의 전망대 스카이덱엔 유리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다.

지니 갱 설계 세인트레지스 건물 2개 타워(왼편)과 로에의 제자들(Schipporeit & Heinrich)이 설계한 레이크포인트타워(Lake Point Tower, 1968, 오른쪽 검정색 빌딩).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21세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독일 출신 여성 건축가 지니 갱(Jeanne Gang)은 레이크쇼어 이스트에 82층, 859피트 높이의 아쿠아(Aqua)는 층층이 물결치는 곡선형의 외관이 주목을 끄는 건물이다. 아쿠아는 완공 당시 여성이 설계한 최고층 건물이었다. 2020년 지니 갱의 스튜디오갱 아키텍츠(Studio Gang Architects)가 설계한 101층, 1,198피트 높이의 타워 세인트 레지스 호텔(St. Regis Chicago)가 자신의 기록을 깨게된다. 2023년 오픈한 맨해튼 미자연사박물관의 리처드길더센터(Richard Gilder Center)도 지니 갱의 설계다.
시카고 워터타워의 생존력

시카고 워터타워(1869)와 뒤의 900 North Michigan(1988).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매그니피선트 마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1871년 대화재에서 살아남은 시카고워터타워(Chicago Water Tower, 미시건 & 시카고 애브뉴)다. 1869년 물펌프를 둘러싸기위해 윌리엄 W. 보잉턴(William W. Boyington)이 고딕양식으로 설계한 워터타워는 대화재 당시 지붕에 불이 붙고, 펌프가 파괴되어 화재진압을 위한 물 공급도 중단되었지만, 구조물은 살아남았다. 이후 시카고의 강인한 생존력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워터타워를 "고추통이 여기저기 박힌 성곽 모양의 괴물같다"고 표현했다. 체인 레스토랑 화이트 캐슬(White Castle)은 이 워터타워의 팔각형 버팀목, 탑, 난간 벽을 본따 설계되었다. 현재 워터타워는 시립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River City(1986) by Bertrand Goldberg.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오늘날 시카고는 수많은 마천루로 이루어진 촘촘하고, 웅장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한다. 2014년부터 시카고 건축비엔날레(Chicago Architecture Biennial)가 열리고 있으며, 시카고건축센터(Chicago Architecture Center)는 선상투어(boat tour), 버스 투어(bus tour), 워킹 투어(walking tour) 등을 진행한다. 우리는 가이드가 해설해주는 퍼스트레이디 리버 보트(90분, $56)를 탔다. 물 위에서 시카고를 보지않고서는 시카고를 잘 봤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시카고 스페셜' 연재 순서
1. 시카고 건축 '마천루의 파노라마'
2. 시카고 핫도그 '노 케첩!'
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설계 로비하우스 투어
4.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하이라이트
5. 시카고 블루스, 버디 가이의 전설
6. 오리지널 딥디쉬 피자
7. 시카고대 고대문화연구협회(ISAC) 박물관 하이라이트
8. 자연사박물관 필드뮤지엄
9. 시카고 공공미술
10. 호텔 '더 드레이크':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여기까지가 내가 느낀 시카고였는데, 컬빗을 통해 새롭고 멋진 시카고를 올려주셔서 시카고를 다시 봤습니다.
마천루, 옥수수 빌딩, 미쉬간 호수, 시어스 타워, 미국 5대 교향악단에 드는 시카고 심포니 등등 많은 볼거리와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걸 알았습니다.
다시 갈 기회가 있으면 컬빗이 올려주신 기사들을 음미하면서 볼려고 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