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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elry Brand and Art <1> Cartier & Islamic Art

 

럭셔리 보석 브랜드의 미술 마케팅

 

#1 카르티에와 이슬람 미술@파리 장식미술뮤지엄

#2 티파니와 바스키아 블루, 비욘세와 제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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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티에(Cartier)와 티파니(Tiffany's), 고급 보석 브랜드가 미술을 접합한 마케팅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파리의 장식미술 뮤지엄(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선 오는 10월 21일부터 내년 2월 20일까지 카르티에와 이슬람 미술: 모더니티를 찾아서(Cartier et les arts de l’Islam: Aux sources de la modernité/ Cartier & Islamic Art: In Search of Modernity)’을 주제로 특별전을 연다. 달라스미술관(Dallas Museum of Art, 5/14/2022- )로 순회될 이 전시에선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럭셔리 주얼리 메종 카르티에가 이슬람 미술로부터 받은 영향을 조명한다.

 

한편, 티파니(Tiffany & Co.)는 올 가을 파워 커플 비욘세(Beyoncé)와 제이지(JAY-Z), 그리고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회화를 내세운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 'About Love'를 벌일 예정이다.   

 

  

#카르티에와 이슬람 미술: 모더니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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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 necklace, Cartier Paris, commissioned in 1947, Gold, platinum, diamonds, amethysts, turquoise. Commissioned by the Duke of Windsor for the Duchess of Windsor. Nils Herrmann. Cartier Collection/ A Cartier tiara from 1936 in platinum, diamonds and turquoise.

 

 

1847년 보석세공사 루이-프랑소아 카르티에(Louis-François Cartier)가 창립한 메종 카르티에(Maison Cartier)는 보석과 미술품을 거래했다. 프랑스 혁명 후 사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파리는 호화 파티와 무도회가 이어졌다. 귀족들에게 보석은 필수였고, 카르티에는 시대에 맞았다. 

 

1874년 그의 아들 알프레드가 경영을 이어받고, 1898년 알프레드의 장남 루이가 합류했다. 당시 카르티에는 자체 보석을 디자인하면서 골동품도 판매했다. 카르티에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된 것은 루이, 피에르, 자크 3형제에 의해서였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1902년 왕관 27개를 주문했으며, 2년 후엔 왕실의 공식 보석상으로 지정했다. 그는 카르티에를 "왕들의 보석상이며, 보석상 중 왕"이라고 칭송했다.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이집트, 모나코 왕실까지 이어졌다. 대관식의 왕관 제작도 카르티에가 맡았다.  

 

루이 카르티에는 새로운 영감을 찾아나섰다. 러시아, 페르시아, 인도를 돌며 눈을 넓혔다. 당시 파리는 이슬람 미술 거래의 중심지였으며, 1903년 파리 장식미술뮤지엄의 특별전과 1910년 뮌헨의 특별전 등을 통해 유럽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있었다. 

 

이 전시에선 루이 카르티에가 소장했던 도서와 이슬람 미술품을 통해 쥬얼리 디자인의 영감을 탐구한다. 

https://madparis.f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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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ing panel, Iran Late 14th - 15th century, Ceramic mosaic Musée du Louvre, Paris département des Arts de l’Islam, on loan from the Musée des Arts Décoratifs, Paris © 2010 musée du Louvre/ A detail from a 1930 Cartier cigarette case, in gold, platinum, lapis lazuli, turquoise and diamond.

 

 

막내 자크 카르티에는 1911년 인도로 가서 골동품과 현대 보석을 수집하면서 마하라자(대왕)와 친분을 나누었다. 수집한 미술품은 머리 장식에서 술(tassels), 넓은 팔찌, 컬러 및 재료 등까지 카르티에의 오리엔탈 쥬얼리 디자인에 영감을 주게 됐다. 또한, 제본(book binding) 기술, 아시안 직물을 사용한 핸드백과 액세서리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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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bic pattern/ Cigarette case Persian, Cartier Paris, 1924, Gold, enamel, onyx. Nils Herrmann. Cartier Collection

 

루이 카르티에는 청금석(lapis lazuli)와 터키석(turquoise)처럼 대담한 조합, 녹색의 옥이나 에머랄드, 청색의 청금석와 사파이어같은 매칭으로 유명한 '공작 문양(peacock pattern)'을 선보였다. 

 

터키석(turquoise)은 터키에서 산출되지 않으며, 페르시아(이란) 산이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이집트, 페르시아, 몽고 등지에선 오래 전부터 귀하게 여겼으며, 유럽돠 아랍의 왕실에선 카르티에가 터키석으로 디자인한 왕관을 쓰기도 했다. 

 

카르티에는 최초로 백금을 사용했으며, 최초로 현대적 손목시계를 제작했다. 1904년 친구인 브라질의 항공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Alberto Santos Dumont)이 비행 중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 손목시계 산토스(SANTOS DE CARTIER)는 클래식 명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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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는 색동 저고리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980664&mid=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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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9.01 12:51
    카르티에란 이름은 80년대초에 알았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선배님이 계셨는데, 친구가 카르티에 시계를 차고 시집에 갔다가 시어머니한테 호되게 혼줄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뭔데요?"하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카르티에가 왕가를 비롯한 부유층이 갖고자했던 보석의 내력을 잘 읽었습니다. 카르티에가 보석 공예가일뿐아니라 골동품도 수집한걸 보면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카르티에와 그의 일가들이 에집트 인도등의 고대 문명국가를 다니면서 보석들을 관찰하고 꾸준히 노력을 했기에 오늘날의 명성을 얻었음을 알았습니다. 카르티에의 디자인과 색상이 이슬람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에집트와 터키를 여행했을 때 상점에서 접시들을 봤는데 디자인과 색상이 카르티에의 작품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때 이슬람 문화가 파리의 중심이었다는 게 카르티에 보석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