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콩(Queen Kong)' 패션 저널리스트 앙드레 레온 탈리(73) 별세
André Leon Talley (1948-2022)
인종과 성의 유리천장을 깬 블랙 패션 아이콘
앙드레 레온 탈리와 프렌치 코넥션
"내 눈은 아름다움에 굶주려 있다."
-앙드레 레온 탈리-
미 패션 저널리스트 앙드레 레온 탈리(André Leon Talley, 1948-2022)가 18일 업스테이트 뉴욕의 화이트플레인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앙드레 레온 탈리는 백인과 엘리트주의로 악명높은 패션계에서 인종과 성의 장벽을 깬 블랙 아이콘이었다. 그는 보그(Vogue)지 최초의 흑인 남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편집장을 지냈다. 앤디 워홀이 발행하던 잡지 '인터뷰'의 리셉셔니스트에서 시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첫 해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맡았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탈리는 뉴요커 잡지에 의해 "The Only One"이라 불리웠던 탈리는 6피트 6인치의 키에 웅장한 체격으로 망토, 장갑, 왕관까지 코디네이트하는 패셔니스타였다. 그에게 패션은 영감이자 변장이자, 인종차별에 대한 카모플라쥬(위장)이기도 했다. 파리 특파원 시절 그의 별명은 '퀸콩(Queen Kong)'이었다.
탈리는 디자이너 오스카 드라 렌타,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의 친구였으며, 수퍼모넬 나오미 캠벨의 멘토가 됐다. 또한, 화가 장-미셸 바스퀴아, 키스 헤어링, 가수 다이애나 로스, 그레이스 존스, 코미디언 프란 르보비츠 등과 어울렸다.
앙드레 레온 탈리는 1948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택시운전수였던 아버지가 DC에서 일하는 동안 앙드레는 생후 2개월부터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에서 듀크대학교의 청소부였던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는 외할머니로부터 남부 교회와 좋은 매너를 배우면서 9살 무렵 동네 도서관에서 '보그'를 발견한 후 패션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61년 앙드레는 존 F. 케네디 취임식을 본 후 재키 케네디를 우상화하면서 프랑스에 사로잡혔다. 노스캐롤라이나센트럴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브라운대에서 프랑스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보들레르와 플로베르의 작품과 들라크루아의 회화에서 흑인 여성의 영향"이었다.
브라운대 재학 시절 보그지의 편집장 출신으로 메트로폴리탄뮤지엄 패션인스티튜트의 특별 자문이었던 다이애나 브리랜드(Diana Vreeland)를 만나 뉴욕에서 취업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는 앤디 워홀의 공장(Factory)과 인터뷰 잡지에서 주당 50달러를 받고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Women's Wear Daily'의 파리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펜디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이브 생 로랑 등과 교제했다. 그리고, W 매거진, 뉴욕타임스를 거쳐 1983년 보그지에 입성해 첫 흑인 남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특히 안나 윈투어는 앙드레 레온 탈리의 취향과 패션에 대한 심오한 지식에 반했다. 이후 탈리는 윈투어의 고문 겸 친구가 되었다.
1989년 정신적 지주였던 외할머니가 별세한 후 탈리는 비만으로 고생하게 된다. 이후 몇년간 오스카 드 라 렌트가 마련해준 화이트 플레인스에 고립되어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털리는 2020년 출간한 회고록 '쉬폰 트렌치(The Chiffon Trenches: A Memoir)'에서 "격리된 남부에서 자란 12세 소년에게 흑인은 이 세상에서 어떤 종류의 역할을 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내가 어디서 왔으며, 우리가 어디서 왔고, 내 생애에서 오늘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면 놀랍다. 그러나, 물론, 아직 우리의 갈 길은 멀다"라고 썼다.
André Leon Talley, Editor and Fashion Industry Force, Dies at 73
https://www.nytimes.com/2022/01/19/style/andre-leon-talley-dead.html?referringSource=articleShare
The Fashion World Remembers André Leon Talley
https://www.thecut.com/2022/01/the-fashion-word-remembers-andr-leon-talle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