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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64] 9/25-10/12 

'파더랜드(Fatherland)' ★★★★☆

 

노벨상 수상 망명작가 토마스 만의 독일 여정

미니멀리스트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의 역작 

 

 

냉전 시대 흑백 영화 3부작 중 제1편인 '이다(Ida, 2013)'로 아카데미 국제극영화상, '콜드 워(Cold War, 2018)'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폴란드의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Pawel Pawlikowski, 69) 감독이 신작 '파더랜드(Fatherland, 2026)'로 다시 한번 칸 영화제 감독상을 석권했다.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발레 무용수 출신이자 바르샤바 대학교 영문학 교수가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0대 후반에 그는 친할머니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희생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는 훗날 영화 '이다'의 영감이 되었다. 냉전 시기였던 14세에 어머니와 함께 런던에 정착한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극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도 파블리코프스키의 영화는 설명적이거나 다큐적이라기보다, 이야기와 대사를 극단적으로 생략하고 흑백 화면 속 이미지와 여백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시네 포엠(Cine-Poem)’에 가깝다. 이번 신작 역시 그 특유의 미학이 자아내는 긴 여운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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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herland, NYFF64

 

영화 '파더랜드'는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Thomas Mann, 한스 치슐러 분)이 냉전 초기인 1949년, 미국 망명 생활을 끝내고 딸 에리카 만(산드라 휠러 분)과 함께 서독과 동독을 동시 방문하는 여정을 담았다.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아일랜드의 거장 작가 콜름 토이빈(Colm Tóibín)의 토마스 만 전기 소설 '마법사(The Magician)'의 일부를 바탕으로, 실제 역사적 사건을 결합해 시나리오 작가 헨드릭 핸드뢰그텐(Hendrik Handloegten)과 함께 각색했다. 원작자 콜름 토이빈은 이번 뉴욕영화제에 초청된 앤드류 헤이그(Andrew Haigh) 감독의 신작 '기나긴 겨울(A Long Winter)'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1949년은 독일이 낳은 위대한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토마스 만은 괴테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서독)와 괴테가 생을 보낸 바이마르(동독) 양쪽 모두에서 괴테상을 수상하게 된다. 조국이 동서로 완전히 갈라지기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에서 토마스 만은 ‘하나의 독일’을 문화로 대표하겠다는 거장다운 열망을 품고 길을 나섰다.

 

당시 그는 망명지였던 미국에서는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 광풍의 타겟이 되어 감시받고 있었고, 방문한 서독에서는 CIA 요원이 뒤를 쫓았다. 서독 언론은 그가 동독 구역인 바이마르에 가면 공산주의 체제 선전에 전적으로 이용당할 것이라며 거세게 만류했다. 하지만 위대한 작가는 정치색을 배제한 순수 예술성을 강조하며, 이념으로 쪼개진 조국을 통합하겠다는 거대하고 이상적인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의 통역사이자 운전사, 그리고 어씨스턴트로 동행한 딸 에리카는 아버지의 이러한 나르시시즘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쌍둥이와도 같았던 남동생 클라우스의 자살은 물론, 영화에서 직접 다루지 않는 친형 하인리히 만과의 갈등, 에리카 본인의 숨겨진 성정체성,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가문 인물들의 연쇄적인 자살 비극을 토마스 만은 평생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스트인 감독은 만 가문의 비극적이고 방대한 가족사를 일일이 나열하는 늪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오직 클라우스 만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아버지의 차가운 냉정함, 가문 내의 성적인 억압, 그리고 전후 지식인이 마주한 깊은 환멸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영화 오프닝에서 숙취에 찌든 채 침대 발치에 걸터앉아 누나 에리카와 통화하는 클라우스 만(어거스트 디흘 분)은 "우리는 지금 스탈린과 미키 마우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어"라고 푸념한다. 이는 클라우스를 비롯한 전후 지식인들이 마주한 거대한 시대적 딜레마이자, 앞으로 이어질 토마스 만과 에리카 부녀의 가시밭길 여정을 선명하게 암시하는 대사다.

 

루카시 잘(Lukasz Zal)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종종 높이 고정된 채, 하이 앵글로 등장인물들을 포착한다. 광활하고 황량한 전후 폐허 속에서 그들은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무게에 완전히 짓눌려 있는 무력하고 왜소한 인간들로 보인다. 그 카메라가 남겨둔 허공은 괴테의 유산이나 전쟁 희생자들의 영혼이 떠도는 자리일까, 혹은 인간의 비극을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이 거시적인 숏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 바로 산드라 휠러(NYFF61-추락의 해부)의 클로즈업이다. 그녀의 고요하면서도 오묘한 표정은 당대 지식인이자 위대한 작가의 딸, 그리고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했던 내면의 균열과 고뇌를 대사 없이도 완벽하게 뿜어낸다. 연기력과 클로즈업의 시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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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herland, NYFF64

 

토마스 만은 아들의 자살이라는 비극 앞에서도 끝내 말을 아끼며 품위를 유지하려 하고, 에리카는 마침내 침묵하는 아버지를 향해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아버지는 당신의 말로 만든 성(castle of words) 안으로 도망쳐 숨어버리시는군요!"

 

이 영화의 피날레에서 부녀는 폭격으로 완전히 부서진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뻥 뚫린 지붕 사이로 쏟아지는 극적인 빛과 그 잿빛 먼지 속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로 서글프게 울려 퍼지는 바흐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은 전후 독일의 풍경과 토마스 만의 무너진 내면을 동시에 포착하는 시청각적 메타포다. 화려한 수사와 완벽한 문장으로 자신만의 단단한 성벽을 쌓아왔던 위대한 작가는, 폐허가 된 조국과 자식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마주하고 비로소 말을 잃어버린다. 그 순간 가사 없이 울려 퍼지는 오르간의 선율은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처절한 슬픔과 죄책감을 대변하는 거대한 통곡이 된다. 

 

흥미롭게도 이 곡은 실제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 전에 자주 연주되는 '올 타임 베스트 웨딩 음악'으로, 가장 축복받고 전통적인 '이성애 중심적 가족 체계'가 완성되는 순간을 상징하는 곡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 에리카는 동성애자였으며, 나치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영국의 유명 동성애자 시인 W. H. 오든과 형식적인 위장 결혼을 했다. 결혼식 음악이 들려오는 폐허의 교회는, 완벽한 부르주아 가정을 통제하려 했던 가부장적 지배자 토마스 만의 환상이 시청각적으로 산산조각 났음을 보여주는 역설의 공간이다. 아들 클라우스 역시 동성애자이자 마약 중독자로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토마스 만 자신 또한 6남매를 두고 평생 부르주아 가장의 가면을 썼지만, 내면으로는 남성을 향한 이룰 수 없는 갈망을 철저히 억압하며 괴로워했던 인물이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명작 영화(1971)로도 잘 알려진 그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 1912)' 속 소년 타치오는 바로 그 억압된 이상형의 투영이었다. 

 

결국 피날레를 장식한 바흐의 선율은 단순히 전후 독일이 마주한 비극을 넘어, 전통적인 축복에서 영원히 배제되었던 퀴어 자녀들과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기만하며 살아야 했던 아버지가 마주한 일그러진 초상을 가장 시적인 방식으로 폭로하고 애도한 셈이다. 82분.

https://www.filmlinc.org/nyff2026/films/fatherland

 

 

*냉전과 열정 사이 '콜드 워(Cold War)' ★★★★☆

https://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3780730

 

*NYFF61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해부하기 ★★★★★

https://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4107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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