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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64] 9/25-10/12 

눈 둘 데가 없네 (Nowhere to Lay My Eyes, 2026) ★★★★

 

'불꽃'의 세상, 길가에 피어난 '작은 꽃(Small Flower)'

홍상수 감독의 가장 투명한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Review: Nowhere to Lay My Eyes/ 눈 둘 데가 없네 ★★★★ <English version>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4193288&mid=Z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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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here to Lay My Eyes, NYFF64

 

#영화는 자기성찰의 도구

 

홍상수 감독은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The Day a Pig Fell into the Well)'로 리얼리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계의 리얼리즘은 노동운동, 계급 갈등, 분단, 독재 등을 다룬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홍상수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리얼리즘을 들고 충무로에 나타나,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담론에 가려진 인간들의 이기심, 위선과 환멸을 무미건조하게, 현미경처럼 포착했다. 

 

이후로도 30년간 35편의 장편을 만들면서 그는 항상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에, 곧 자기성찰의 도구로 카메라를 들었다.그가 카메라로 쓴 이야기(Caméra-stylo)이자 영화라는 매체는 그에게 '자기성찰의 거울(Looking Glass Itself)'인 것처럼 보인다. 소설가, 영화감독, 교수 등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결코 우아하거나 완벽하지 않다. 세속적인 욕망, 거짓말, 변명 등 인간의 속물근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분신 같은 인물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놓고 그들의 허세와 치졸함을 해부하고 성찰하는, 어쩌면 고통스러울 연출 태도를 고수해왔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정직함일 것이다. 결국 홍상수에게 영화란 '거짓으로 꾸며낸 허구를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라, '자신이 아는 세계와 자신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정직한 거울'에 가깝다.

 

 

Nowhere to Lay My Eyes, NYFF64

 

#마이크로 미니멀리스트 감독

 

그는 인위적인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파편화된 일상 속의 우연과 반복, 자잘한 대화에 소주를 곁들인 이야기를 구성해왔다. 당일 아침에 쓴 시나리오로 배우와 현장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출하며 순간의 리얼리티를 포착한다. 특히 2021년 '인트로덕션(Introduction)'부터는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까지 도맡아 하며 10인 안팎의 캐스트와 스탭만으로 움직이는 초미니멀리즘 영화를 개척해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The Odyssey)》가 수백 명에 달하는 제작진의 이름이 지나가는 10여 분의 엔딩 타이틀로 막을 내리는 반면, 홍상수 영화는 큰 글씨로도 딱 두 페이지에 불과한 엔딩 크레딧이 전부다. 

 

제79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최우수연기상(김민희)을 수상한 신작 '눈 둘 데가 없네(Nowhere to Lay My Eyes)'도 예외는 아니다. 과자 수입 회사에 다니며 실험영화를 찍는 상희(김민희 분)는 남동생(신석호 분)과 함께 제주도에서 식당으로 성공한 엄마(최명길 분)와 다큐멘터리 연출가인 새아버지(권해효 분)를 근 10년 만에 찾아간다. 펜션도 함께 운영하는 엄마는 상희에게 제주도 정착을 권유하고, 새아버지의 화가 딸(박미소 분)은 상희에게 매료된다. 상희가 제주도를 떠나는 날 아침, 식구들은 그녀가 만든 짧은 실험영화 'Small Flower'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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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here to Lay My Eyes, NYFF64

 

#다큐멘터리 대 실험영화

 

'눈 둘 데가 없네'에서 상희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내레이션 속 새아버지는 그저 '그 남자'로 명명된다. 그 남자는 과거 일본에서 재일동포의 성장기를 담은 다큐를 찍었고, 최근에는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풀이나 짚으로 덮어두는 장례 풍습인 '초분(草墳)'에 관한 다큐를 만들고 있다. 상희는 "다큐멘터리는 드라마보다 더 사기성 있으며, 다큐의 세뇌가 싫다"고 선언한다. 그녀에게는 차라리 허구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드라마보다, '진실'로 위장하며 객관성을 가장하는 다큐멘터리가 더 큰 기만인 것이다. 

 

여기서 상희는 홍상수 감독의 분신이자 알터 에고(Alter-Ego)다. 특정한 메시지로 관객을 조종하려 하지 않고, 인물의 미세한 순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울트라 리얼리즘의 미학적 결의가 상희에게 투영되어 있다. 그녀의 눈에 새아버지의 '초분' 다큐멘터리는 연출자의 우월한 지위로 타인의 죽음과 전통을 세속적으로 가공하는 장치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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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here to Lay My Eyes, NYFF64

 

#'작은 꽃(Small Flower)' 철학

 

반면, 상희의 실험영화 'Small Flower'는 작고 소박한 일상의 미물을 있는 그대로 포착함으로써 '정직하게 사물을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홍상수의 아홉 번째 영화 제목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Like You Know It All, 2009)'처럼, 그는 늘 자신이 잘 아는 세계만을 스크린에 담아왔다. 거창한 주제나 인위적인 픽션 대신, 길가에 피어난 작은 꽃처럼 일상의 미세한 순간을 포착하겠다는 작가 노트인 셈이다. 

 

이 영화는 오늘날의 예술가에게 '과연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SNS의 범람으로 자극적인 정보와 이미지, 그리고 소음이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 작은 꽃과 같은 존재들을 정직하게 카메라에 담겠다는 아날로그적 선언이다. 영화 속 상희가 눈을 감은 채 해먹 위에 누워있는 모습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각적 자극을 차단하고, 그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상태를 상징한다. 

 

상희의 '작은 꽃'은 자연스럽게 BTS 멤버 RM(김남준)의 솔로곡 '들꽃놀이(Wild Flower)'를 연상시킨다. RM은 화려하지만 금방 사라지고 타버리는 '불꽃(Flame)' 같은 삶 대신, 대지 위에서 잔잔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들꽃(Wild Flower)'처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진솔한 바람을 노래했다. 영화 속 새아버지의 거창한 다큐멘터리나 엄마의 성공한 식당이 밤하늘을 일시적으로 수놓는 화려한 '불꽃'이라면, 상희가 혼자 뚝딱뚝딱 만드는 단편 영화는 길가에 묵묵히 피어난 고요한 '들꽃(Small Flower)'이다.

 

 

#에릭 사티의 미니멀리즘 음악

 

'눈 둘 데가 없네'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그간 자신의 소박한 기타 연주곡을 사운드트랙으로 삼아왔던 홍상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흥미롭게도 현장에서 동시녹음된 '카페의 소음' 속에서 음악의 출처를 찾는다. 상희네 가족이 방문한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의 '짐노페디 1번(Gymnopédie No. 1, 1888)'은 거대하고 무거운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반발해 탄생한 곡이다. 

 

19세기 후반 유럽 음악계는 리하르트 바그너로 대표되는 웅장하고 복잡하며 감정이 과잉된 독일 낭만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에릭 사티는 거추장스러운 장식 위주의 주류 음악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고, 불필요한 감정을 걷어낸 극도로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음악, 즉 '벌거벗은 음악'을 주창했다. 이 실험작 '짐노페디'는 훗날 의식해서 듣지 않아도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가구 음악(Furniture Music)'의 효시가 된다. 고대 스파르타에서 남성들이 무기 없이 알몸(Gymnos)으로 신을 찬양하며 추었던 느린 군무에서 유래한 이 곡은 홍상수의 카메라가 지향하는 극도의 미니멀리즘과 완벽하게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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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here to Lay My Eyes, NYFF64

 

#제주도: 바람, 바람, 그리고 바람

 

영화는 제주도의 날씨를 알리는 자막으로 문을 연다. '흐리고 바람 부는 날, 오후엔 햇살.' 10여 년 만에 마주한 딸 상희를 향해 엄마는 묻는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니?" 이는 제주도의 거친 자연현상으로서의 ‘바람(Wind)’인 동시에, 뜬금없이 엄마를 찾아오게 만든 상희의 내면의 ‘바람(변심)’이다.동시에 엄마는 상희가 제주도에 내려와 자신이 운영하는 펜션을 도우며 안주하기를 바란다. 세속적 안정을 요구하는 엄마의 ‘바람(Wish)’과, 과자 수입 회사에 다니면서도 자기만의 순수한 실험영화를 지켜내려는 상희의 ‘바람(소망)’은 이 섬에서 미묘하게 충돌한다.

 

결국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 상희는 돈과 명예, 거대한 욕망들이 세차게 불어대는 세상의 풍파(바람)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은 채, 자신만의 작고 사소한 의지(Small Flower)를 품고 담담히 제주도를 떠난다. 거창한 예술적 위장이나 타인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눈 두어야 할 곳을 정확히 응시하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72분간 펼쳐지는 제주의 서늘한 바람 소리 속에서, 홍상수의 카메라는 그렇게 소박하게 일상을 직시하는 투명하고 정직한 거울이 되어 관객의 마음을 고요하게 흔든다.

https://www.filmlinc.org/nyff2026/films/nowhere-to-lay-my-eyes 

 

 

*홍상수 영화는 왜 나를 슬프게 하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 ★★★★☆ 

*The Novelist's Film review <English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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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61: Hong Sangsoo's Artist Statement 'In Water' ★★★★☆

*NYFF63: 홍상수 감독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

*'필름코멘트' 선정 2022 베스트 영화 20: 홍상수(7, 9위), 박찬욱(1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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