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FF63 (2) 잊혀진 시인 윌렘 데포의 '뒤늦은 명성 (Late Fame)' ★★★☆
NYFF63 (9/26-10/13)
'뒤늦은 명성 Late Fame' ★★★☆
뉴욕의 무명 시인은 무엇으로 사나?

Late Fame by Kent Jones, #NYFF63
뉴욕은 예술가들의 천국이자, 그들의 재능을 겨루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작품으로 말하지만, 그들의 진짜 목소리와 의도는 단순한 비평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예술가들의 삶을 탐구할 수 있는 전기도 출판되지만, 영화야말로 시각적·청각적으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며 예술가의 재능과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다. 영화는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는 예술가의 고민, 집착, 기벽, 취약성을 비롯해 제작 과정, 그리고 가족과 주변인의 증언을 통해 삶과 예술을 360도로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예술가에 관한 영화는 활자로 쓰인 전기보다 감각적으로 즉각적인 몰입 체험을 선사하며, 영상과 음악의 힘으로 관객을 깊이 끌어들인다.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극영화 역시 상상력과 해석을 통해 예술가를 새롭게 조명한다. 2025 뉴욕영화제(9/26–10/13) 언론 시사회에서는 세 편의 작품이 주목을 끌었다. 뉴욕 무명 시인을 윌렘 데포가 연기한 극영화 '뒤늦은 명성(Late Fame)', 뉴욕 사진작가 피터 후자의 하루를 재현한 '피터 후자의 하루(Peter Hujar’s Day)', 그리고 지난 7월 타계한 전위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1984년 LA 올림픽에서 선보일 예정이던 12시간 오페라 '내란'의 좌절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로버트 윌슨과 내란(Robert Wilson and the Civil Wars)'이다.
비평가 출신 켄트 존스(Kent Jones) 감독의 '뒤늦은 명성'은 인생의 황혼기에 발견된 한 시인의 달콤하고도 씁쓸한 세계를 담았다.

뉴욕 우체국에서 40년 가까이 근속한 에드 색스버거(윌렘 데포)는 한때 시집을 출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가 읽히기보다는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디지털 시대, 그의 앞에 젊은 팬 마이어스(에드먼드 도노반)가 나타난다. 다운타운에서 문학 살롱을 운영하는 마이어스는 색스버거를 초대하고, 그곳에서 신비로운 배우 글로리아(그레타 리)의 유혹이 그를 기다린다. 젊은 추종자들의 열렬한 찬사 속에서 색스버거는 과연 황혼기에 명성을 누릴 수 있을까?
영화 비평가이자 뉴욕영화제 디렉터를 지냈던 켄트 존스 감독은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의 중편소설 '뒤늦은 명성(Später Ruhm)'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의사였던 슈니츨러가 1895년 무렵 집필했으나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던 작품으로, 2014년 독일어판으로 빛을 보며 영어 번역과 함께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시나리오 각색은 '메이 디셈버(May December, 2023)'로 주목받은 새미 버치(samy burch)가 맡았다.
Late Fame by Kent Jones, #NYFF63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말 비엔나. 문학적 야망을 접고 하급 공무원으로 살아가던 에두아르트 작스베르거가 젊은 문학 청년들에게 재발견되어 ‘살아 있는 시의 대표자’로 추앙된다. 그러나 그들은 야심만큼의 재능은 없고, 진정한 예술적 깊이보다는 지식인 흉내에 몰두한다. 그들이 마련한 ‘문학의 밤’ 행사는 기대를 저버리고, 작스베르거는 뒤늦은 인정의 실체를 깨달으며 씁쓸하게 현실로 돌아간다.
새미 버치와 켄트 존스의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뉴욕 다운타운으로 옮겨 저주받은 무명 시인의 삶을 따스하게 비춘다. 청춘의 순수한 꿈과 뜻밖의 뒤늦은 환호, 그 달콤한 황홀감 뒤에는 명성이라는 허영과 자기기만이 도사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Late Fame by Kent Jones, #NYFF63
윌렘 데포는 색스버거의 얼굴 주름마다 쌓인 세월의 무게와 절제된 표정, 축 늘어진 어깨와 동작 하나하나로 무명 시인의 좌절을 표현한다. 글로리아 역은 원래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2023),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의 연기파 배우 산드라 휠러(Sandra Hüller)가 예정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전생의 그레타 리가 맡았다. 연기파 산드라 휠러였다면 더 묵직한 캐릭터가 되었겠지만, 그레타 리는 멜란콜리한 윌렘 데포와 대조적으로 뻔뻔하면서도 데카당스하 글로리아를 표현했다.
켄트 존스 감독은 한 무명 시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잊혀진 뉴욕의 살롱 문화와 노스탤지어를 환기한다. 영화 속 문학살롱의 이름은 ‘열정 협회(Enthusiasm Society)’. 그들은 옆 테이블에서 휴대폰에 매달린 인플루언서들을 경멸하며 토론과 예술의 열정을 되살린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한 시인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그가 술과 당구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Late Fame by Kent Jones, #NYFF63
영화 속 색스버거가 출간했던 시집의 제목은 'Way Past Go'.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원작에서는 시집의 제목이 '순례기(Wanderungen)'였다. 평범한 삶의 호수에 던져진 한 청년의 돌멩이가 잠시 물결을 일으켰을 뿐, 색스버거는 뒤늦게 찾아온 명성을 꿈꾸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의 꿈은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일까? 펜을 오래 전에 내려놓은 그는 결국 나약한 인간의 전형으로 남는다. 96분.
NYFF63 상영일정
Sun, Sep 28 12:15 PM Q&A/ Mon, Sep 29 6:15 PM Q&A/ Fri, Oct 3 6:00 PM/ Tue, Oct 7 4:00 PM
https://www.filmlinc.org/nyff2025/films/late-fa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