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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Boycott the Grammys <3> Grammy Passing A. 

 

그래미의 오만과 편견: 1959 '볼라레' 2관왕이 '화이트 그래미'로

'록과 팝의 황제' 엘비스·마이클 잭슨도 굴욕… BTS가 울린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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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그래미상 보이콧 파장 시리즈

(1) 그래미의 숨은 의도: 'K팝의 게토화'

(2) 그래미의 치부: 부패한 '비밀 위원회' 

(3) 그래미 패싱(Grammy Passing): 외면당한 거장들

    A. 제왕들의 굴욕: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이클 잭슨

    B. 팝의 디바들: 조안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니나 시몬, 다이애나 로스, 셰어, 마돈나, 로리 앤더슨

    C. UK 침공과 외면

   D. 변방의 혁신가들: 밥 말리, 아바, 비요크, 싸이(PSY), BTS

   E. "미안해요, 평생공로상" 
(4) 그래미의 달링들(Grammy Darlings)

     선택받은 성골들: U2,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빌리 아이리쉬

(5) 영원한 이방인들(Aliens)의 반란: 왜 세계는 BTS 선언을 응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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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권위있고, 영향력있는 대중음악상으로 불리우는 그래미(Grammy Awards)는  오만과 편견으로 전설적인 팝 뮤지션들을 희생시켜왔다. '로큰롤의 제왕(King of Rock and Roll)', 엘비스 프레슬리, '팝의 제왕(King of Pop)' 마이클 잭슨, '팝의 여왕(Queen of Pop)' 마돈나, '레게의 왕(King of Reggae)' 밥 말리가 그래미에서 천대받았다.

 

또한, 롤링 스톤스, 프린스, 지미 헨드릭스, 퀸, 아바, 엘튼 존, 데이빗 보위, 비치 보이스 등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장들 역시 외면당했다. 그래미는 제이 지, 에미넴, 위켄드, 드레이크에서 BTS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시청률 카드'로 소비하면서 정당한 평가에는 인색했다. 

 

그래미의 의도적인 배제와 외면(Grammy Snub).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그래미의 보수성과 협잡은 역설적이게도 음악사의 위대한 거장들을 '희생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미 트로피 없이도 음악사의 절대적인 거장으로 남았기에, 권위를 잃은 것은 그래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BTS가 결단한 이번 출품 거부는 그래미의 불공정한 시스템에 더 이상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역사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3> 그래미의 희생자들 A: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이클 잭슨의 굴욕 

 

#엘비스 프레슬리: 종교음악 부문 3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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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grammy.com

 

 

빌보드 넘버원에 18곡을 올렸던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 그는 평생 그래미를 딱 세번 수상했는데 모두 종교음악-가스펠 부문이었다. 

 

프레슬리는 가스펠곡 'How Great Thou Art'로 최우수 성가 퍼포먼스(Best Sacred Performance, 1968), 'He Touched Me'로 최우수 인스피레이셔널 퍼포먼스(Best Inspirational Performance, 1973), 멤피스 라이브 'How Great Thou Art, Live'로 최우수 인스피레이셔널 퍼포먼스(1975)까지 세번 수상했다. 그래미가 1962년 최우수 가스펠 또는 종교 레코딩(Best Gospel or Other Religious Recording)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종교음악 부문에선 1964년 벨기에 수녀 시스터 스마일(Sister Smile)이 히트곡 '도미니크(Dominique)'로 수상했고,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도 올랐었다. 

 

프레슬리는 1956년부터 'Heartbreak Hotel' 'Don't Be Cruel' 'Love Me Tender' 'Jailhouse Rock', 'Hound Dog' 등 불멸의 히트곡들을 쏟아냈고, 영화에도 33편이나 출연했다. 로큰롤, 팝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프레슬리는 그래미 후보에 14회 올랐지만, 정작 그래미 본상은 한번도 받지 못했다. 

 

 

 

제 1회 그래미상 시상식은 1959년 5월 4일 열려 총 28개 부문에 시상했는데, 로큰롤 부문은 아예 없었다. 프레슬리는 'A Big Hunk O' Love'로 제 2회 그래미상에 톱40 아티스트의 최우수 퍼포먼스(Best Performance by a Top 40 Artist, *팝 카테고리)와 최우수 R&B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지만 냇 킹 콜과 다이나 워싱턴(What a Diff'rence a Day Makes)에 밀려났다. 같은 해 'A Fool Such As I'로 본상인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 올랐다가 신인 가수 바비 다린(Mack the Knife)에 고배를 마셨다. 이듬해엔 'Are You Lonesome Tonight?'로 올해의 레코드에 도전했다가 영화 '피서지에 생긴 일(A Summer Place)'의 주제가를 부른 퍼시 페이스에 밀려났다. 

 

결국 엘비스 프레슬리는 장르 배척의 첫 피해자였다. 엘비스의 폭발적인 팝스타로서의 성과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기성세대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가스펠(종교 음악)'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상을 주는 졸렬한 방식을 취했다. 장르를 기준으로 선을 그은 최초의 '게토화(Ghettoization)' 사례였다.

 

결국 그래미는 1971년 36세의 엘비스에게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여했다. 그러나, 프레슬리는 평생 한번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평생공로상도 라스베가스의 대기실에서 따로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59 '음악이 죽은 날': 로큰롤 스타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빅 보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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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상은 1959년 1회 시상식 때부터 레코딩아카데미(당시 NARAS)의 정식 회원들에게 투표 자격을 주었다. 당시 수백명 수준이었던 회원들은 주로 LA와 뉴욕의 음반사 임원, 프로듀서, 아티스트, 악기 연주자, 지휘자 등 보수적인 백인 음악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카데미는 그래미 기준을 대중성이나 음반 판매량, 차트 순위와는 무관하게 음악적, 기술적 완성도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을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제 1회 시상식이 열렸던 1959년은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이 일어난 해였다. 시상식 석달전인 1959년 2월 3일 세명의 로큰롤 스타가 전세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페기 수'의 버디 홀리(Buddy Holly, 22), '라 밤바'의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 17), 그리고, '샹틸리 레이스'의 빅 바퍼(The Big Bopper, 28). 이들은 아이오와주에서 미네소타로 가는 경비행기에 올라있었다.  훗날 돈 맥클린이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에서 '음악이 죽은 날(The Day Music Died)로 로큰롤 황금기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당시 로큰롤은 수난 시대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8년 입대해 독일에서 군 복무 중이었고, 리틀 리처드는 1957년 말 돌연 은퇴 후 목사가 됐다. 또한, 제리 리 루이스는 13살 사촌과의 스캔달로 매장당했고, 척 베리는 1959년 미성년자 음란행위 알선죄로 수감 중이었다. 

 

 

#1959 제 1회 그래미: 이탈리아 노래 '볼라레' 올해의 레코드-노래 2관왕

 

 

그해 5월에 열린 제 1회 그래미 시상식은 이같은 사건들로 로큰롤의 공백기, 공황기에 치러졌다. 레코딩 아카데미 수뇌부와 회원들은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고 청소년들을 열광하게 만든 로큰롤, 골반을 흔들며 춤추는 엘비스를 로큰롤을 천박하고,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했다. 엘비스의 노래를 주류 팝 음악의 범주로 인정하기를 꺼린 것이다.

 

소박하게 28개 부문 시상으로 시작한 제 1회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은 영화음악가 헨리 만시니가 작곡한 TV 드라마 사운드트랙 앨범 'The Music from Peter Gunn'이 차지했다. 그런데,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를 수상한 곡은 흥미롭게도 이탈리아 칸초네 '볼라레(Volare, 날아가다)'였다. 1958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한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의 노래로 외국어 곡 최초로 빌보드 핫100 1위를 5주 동안 기록한 곡이었다. 원제는 '파랗게 물든 하늘 속에서(Nel blu dipinto di blu)'로 그래미의 대담한 개방성을 확신한 노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볼라레' 이후 그래미 본상(앨범, 레코드, 노래, 신인상)에서 외국어 곡이 주요 부문을 수상한 경우는 전멸상태였다. 때문에 그래미는 영미권의 합과 록 등 주류 음악 스타들에게 트로피를 몰아주는 '화이트 그래미(White Grammy)', '영미권 로컬 시상식'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라틴 음악이나 KPop처럼 전세계를 흔드는 거대한 음악적 흐름을 무시하고, 본상 후보에서 제외시키거나, 하위 장르에 국한시키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제 68회 시상식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 배드 버니(Bad Bunny)가 스페인어 노래를 담은 'Debí Tirar Más Fotos'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며 기나긴 공백을 깨게된다.  

 

 

#로큰롤 사망-시나트라, 피츠제랄드, 엘링턴, 만시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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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초창기엔 로큰롤이 철저히 소외됐고, 프랭크 시나트라, 헨리 만시니, 엘라 피츠제랄드, 듀크 엘링턴 같은 전통 팝, 재즈, 영화음악에 상을 몰아주게 된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는 제 1회부터 1970년까지 거의 매년 그래미 본상 후보에 오르는 단골이었다. 그는 'Come Dance with Me!'를 비롯, 'It Was a Very Good Year' 'Strangers in the Night' 'A Man and His Music'으로 평생 31회 후보에 올랐고, 9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재즈싱어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는 재즈와 팝 부문을 넘나들며 20회 후보에 올라 14회 수상했다.최우수 여성 보컬, 재즈 보컬 부문을 휩쓸었고, 1967년엔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제1회 그래미 트로피를 피츠제럴드에게 안겨준 노래는 듀크 엘링턴의 곡을 재해석한 앨범 'Ella Fitzgerald Sings the Duke Ellington Songbook'이었다. 작곡가, 재즈 오케스트라 지휘자, 영화음악가로 활동하던 듀크 엘링턴은 사후까지 25회 후보에 지명되어 1966년 평생공로상까지 14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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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드 출신으로 재즈와 팝을 할리우드 영화에 우아하게 이식한 헨리 만시니(Henry Mancini)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그 수혜자였다. 헨리 만시니는 제 1회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이래 무려 72회 후보에 올라 1992년 '언터처블(The Untouchable)' 사운드트랙으로 악기 편곡상까지 20회 트로피를 받아갔다. 

 

만시니의 줄리아드 후배이자 피아노 세션을 맡았던 존 윌리엄스는 총 77회 후보에 지명되어 1976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조스(Jaws)'의 오리지널 작곡상으로 시작, 올해 자신의 다큐멘터리 'Music By John Williams'로 최우수 음악영화상까지 모두 27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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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는 1962년 제4회 시상식부터 최우수 로큰롤 레코딩(Best Rock & Roll Recording) 부문을 신설했고, 처비 체커가 'Let's Twist Again'로 그래미 트로피를 가져갔다. 1960년대 중후반엔 최우수 컨템포러리(R&R) 싱글(Contemporary (R&R) Single), 1968년엔 로큰롤을 뺀 채 Best Contemporary Single, 1970년엔 Best Contemporary Song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로큰롤 카테고리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들어서 록의 카테고리를 정립하고, 보컬(남/녀/듀오/그룹)으로 나누어 시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최우수 록 노래(Best Rock Song), 1995년엔 록 앨범(Best Rock Album) 카테고리가 추가됐다. 

 

때문에 1960년대 왕성하게 활동하던 비틀즈도 일반 팝, 보컬 그룹, 컨템포러리(Contemporary), 그리고 종합 본상 카테고리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해체 전까지 최우수 신인상(1965), 최우수 보컬그룹 퍼포먼스(A Hard Day's NIght, 1965),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컨템포러리 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8)까지 단 4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결국 그래미가 2027년 시상식에 '최우수 아시안 팝뮤직 퍼포먼스'를 신설하는 것도 60년 전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로큰롤을 밀어내고, 엘비스를 기성세대가 거부하지 않는 종교음악 부문상을 주었던 '게토화(Ghettoization)' 관행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마이클 잭슨의 '그래미 월드컵'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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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에게 그래미는 4년마다 찾아오는 월드컵(World Cup)과도 같았다. 1980년 'Off the Wall'로 제 22회 그래미 조별 리그에서 뜻밖에 탈락했다면, 1984년엔 'Thriller'로 8관왕이라는압도적인 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1988년 'BAD'로 찾아간 그래미에선 편파 판정으로 패배한 것이라고나 할까. 1980년 그래미는 잭슨에게 분노를 유발했고, 1984년엔 신화를 만들었으며, 1988년은 그래미의 냉대로 퇴장한 스포츠 드라마같았다. 

 

마이클 잭슨은 1979년 명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협업한 앨범 'Off the Wall'를 출반해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와 'Rock with You'로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고, 솔로 아티스트 최초로 한 앨범에서 총 4곡을 톱 10에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1980 그래미에서 'Off the Wall'은 본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잭슨은 최우수 R&B 보컬 퍼포먼스와 최우수 디스코 녹음, 단 2개 후보 지명에 그쳤다. 그리고, R&B 보컬 퍼포먼스 트로피만 받았다. 

 

컨트리 가수 케니 로저스가 사회를 맡은 1980 그래미상 올해의 레코드와 노래는 두비 브라더스의 'What a Fool Believes'가, 올해의 앨범은 빌리 조엘의 '52 스트릿(52nd Street)'에 돌아갔다. 그리고, 케니 로저스는 최우수 컨트리 보컬 퍼포먼스와 컨트리 송 등 5개 부문을 쓸어갔다. 푸근한 외모의 컨트리 가수 케니 로저스는 아카데미의 입맛에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그래미의 얼굴'이었던 셈이다. 

 

*1989년 3월, 연예잡지 '포토뮤직'에서 일할 때였다. 가수 윤형주 씨가 케니 로저스를 초청해 서울 힐튼호텔과 코엑스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취재차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영어가 서툴렀던 나는 그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로저스는 짧게 "피짜!"라고 대답했다. 훗날 그가 레스토랑 체인 '케니 로저스 로스터스'(Kenny Rogers Roasters)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때의 엉뚱한 질문과 대답이 새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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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그래미: '디스코가 죽은 날'의 피해자는?

 

대중과 평단은 그래미 결과에 경악했다. 그래미는 왜 마이클 잭슨은 외면했을까? 

당시 압도적으로 중장년층의 백인들로 구성된 레코딩아카데미는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그들의 눈에 20대 초반 흑인 청년, 잭슨이 부르는 디스코와 R&B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클럽 음악에 불과했다. 아카데미는 흑인 가수들의 곡을 본상과 팝(Pop) 부문이 아닌 리듬앤블루스(R&B)와 소울(soul) 같은 장르 카테고리에 한정했다. 

 

또한, 1979년 '디스코 파괴의 밤(Disco Demolition Night)'의 여파로 아카데미는 'Off the Wall'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79년 7월 12일은 당대를 풍미했던 '디스코가 죽은 날'이었다. 그날 시카고의 코미스키파크에선 '디스코 파괴의 밤'이 열렸다.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와 비지스(Bee Gees)가 대성공을 거두며 빌보드 차트와 라디오를 점령했다. 시카고 라디오의 DJ 스티브 달은 방송국이 디스코 전문 채널로 개편되면서 해고 당했다. 새 방송국(WLUP)으로 이적한 달은 '디스코는 쓰레기다(Disco Sucks)'라는 슬로건으로 반디스코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시카고 프로야구단 화이트삭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경기날 이벤트를 열었다. 디스코 LP 음반을 가져오는 관중에 입장료를 할인해주고, 디스코 음반들을 폭파시키는 퍼포먼스였다.  이 행사에서 흥분한 관중은 레코드를 원반처럼 경기장 안으로 던져대고, 7천-1만여명이 경기장 안으로 난입해 잔디에 불을 지르고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기동대가 투입되어 39명이 체포됐다. 

 

이 이벤트 후 라디오와 음반사들은 디스코 곡들을 편성에서 제외했고, '디스코'라는 이름 자체가 주류 음악 차트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훗날 음악 평론가들은 이 자체가 단순한 음악적 취향을 넘어 흑인, 히스패닉, 게이 커뮤니티가 주도하던 디스코 문화에 대한 젊은 백인 남성들의 인종차별적, 동성에 공포심이 폭발한 사건으로 분석했다. 

 

결국 디스코는 주류 무대에서 쫒겨나 시카고와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으로 숨어들어 전자음악 비트와 결합하면서 '하우스 뮤직(House Music)'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새로 탄생하게 된다. 

 

 

 

#1984 그래미: 거부할 수 없던 '스릴러' 8관왕 

 

마이클 잭슨은 훗날 출간한 자서전 '문워크(Moonwalk, 1988)'에서 트로피 1개만 달랑 갖고 돌아갔던 1980의 그래미를 이렇게 회고했다. 

 

"동료 아티스트들로부터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상처를 받았다... (중략)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음 기회를 기다려라. 그들은 다음 앨범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잭슨은 4년 후 그래미에 컴백했다.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한 앨범 '스릴러(Thriller)'로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이다. '스릴러'는 빌보드 차트에서 37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이 앨범 9곡 중 '빌리 진(Billie Jean)'과 '빗 잇(Beat It)' '스릴러' 'The Girl is Mine' 등 7곡이 빌보드 핫100 차트 톱 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앨범은 전 세계 3천2백만장이 팔리며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링 앨범을 기록했다. 여기에 호러영화화 같은 '스릴러'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며 1983년 전 세계가 마이클 잭슨 열풍으로 뜨거웠다.  

 

이로써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사상 최다인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레코드'를 비롯, '최우수 팝/록/R&B 보컬 퍼포먼스'(*각각 3개 부문), 그리고 최우수 R&B 신곡, 올해의 프로듀서, 최우수 어린이 녹음상(E.T.)까지 거머쥐었다. 이 시상식은 또한 5천167만명의 시청자로 그래미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앨범 '스릴러'는 1970년대를 풍미한 디스코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80년대 대중문화의 기틀을 세운 이정표였다. 백인 중심의 록과 흑인 중심의 R&B와 소울, 주류의 팝을 한 앨범 안에 정교하게 녹여내며 음악적 인종 방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이클 잭슨은 펑크, 뉴웨이브를 결합한 크로스오버로 현대적인 댄스팝을 제시했으며, 시네마틱 호러 뮤직비디오 '스릴러'로 백인 록음악 중심이었던 MTV의 문을 열게했다. 

 

또한, '빌리 진'의 문워크(Moonwalk)와 '빗 잇' '스릴러'의 좀비 군무는 스트릿 댄스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잭슨의 가죽 재킷, 화려한 밀리터리 룩, 그리고 반짝이는 한쪽 장갑은 시대를 상징하는 메가 트렌드가 되었다. '스릴러'는 오늘날 'K-POP'을 비롯한 전 세계 댄스 음악의 원형을 정립한 대중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1988 그래미의 'BAD' 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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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년 후 그래미는 다시 마이클 잭슨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잭슨은 1987년 퀸시 존스와 협업으로 발매한 7집 정규 앨범 '배드(Bad)'로 다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앨범에서 무려 5곡이 빌보드 핫100 1위 곡('I Just Can't Stop Loving You', 'Bad', 'The Way You Make Me Feel', 'Man in the Mirror', 'Dirty Diana')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잭슨은 올해의 앨범을 비롯 최우수 팝/R&B 보컬 퍼포먼스(2개 부문), 엔지니어드 레코딩, 올해의 프로듀서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그날 수상자 명단에서 '마이클 잭슨'은 호명되지 않았다. 팝 보컬 부문에서 영국 가수 스팅, R&B 보컬 부문에선 모타운 출신 스모키 로빈슨이 차지했다. 가장 유력했던 올해의 앨범이 아일랜드 록밴드 U2의 '여호수아 나무(The Joshua Tree)'에 돌아갔다. 휘트니 휴스턴, 프린스와 돌리 파튼을 제치고 U2가 차지한 것이다. 더구나 당시 올해의 앨범 시상자는 잭슨과 각별한 사이인 가수 다이애나 로스가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U2, The Joshua Tree!"를 낭독했다. 

 

마이클 잭슨은 이날 무대에서 'The Way You Make Me Feel'과 'Man in the Mirror'를 부르며 그래미 역사에 남을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전원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한개의 트로피도 건지지 못한 '무관의 황제'가 되었다. 시상식에 참석했던 록스타 리틀 리처드는 "충격받았다. 정말 어이가 없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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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미는 다시 마이클 잭슨을 외면했을까? 

레코딩아카데미가 1984년 8관왕으로 그래미를 독식했던 잭슨에게 다시 본상을 몰아주는 것에 대한 집단적 거부감과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상업적인 팝스타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보여주는 록밴드가 더 예술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잭슨의 매니저였던 프랭크 디레오와 측근의 기록에 따르면, 그날 밤 마이클 잭슨은 절망보다 독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집에 돌아가 욕실 거울에 마커로 썼다. 

 

"1억장. 다음 앨범의 목표다. 그들이 다음 앨범은 절대로 무시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100 million. They won't be able to ignore the next album.)"  

 

앨범 '배드'에서 네번째 싱글로 발매된 'Man in the Mirror'는 다음 해에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 올랐지만,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에 다시 고배를 마셨다. 1990년 같은 앨범 수록곡 'Leave Me Alone'은 최우수 뮤직비디오상(단편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BLM 영향...흑인 음악 바구니 '어반' 카테고리 제거 

 

1984년 마이클 잭슨이 '최우수 보컬 퍼포먼스' 팝 부문, 록 부문, R&B 부문까지 3개의 장르 카테고리에서 수상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이 모든 인종, 세대와 전세계 모든이들에게 어필할 음악을 목표로 하면서 크로스오버로 장르를 넘나들었기 때문이었다.  

 

'스릴러'의 석권 이후 레코딩아카데미도 그래미를 개편했다. 장르의 전문성을 세분화하고, 인종적 편견이 담긴 카테고리를 제거하게 된다. 록과 R&B 부문에서도 하드 록, 메탈, 얼터너티브, 컨템포러리 R&B 등 하위 장르가 신설됐으며, 전문가의 심사를 도입했다. 또한, 1984년부터 뮤직 비디오의 중요성을 인식해 '최우수 비디오 앨범(Best Video Album)'과 '최우수 단편 뮤직비디오(Best Short Form Music Video)'을 시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팝, 록, R&B, 힙합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음악이 대세가 되자 그래미는 특정 장르 카테고리에 가둘 수 없는 이런 음악들을 위해 본상의 가치를 더욱 높였으며, 장르 간 경계를 허문 아티스트들에게 본상을 수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2012년엔 R&B를 기반으로 하되 힙합, 일렉트로닉, 팝 섞은 하이브리드 음악을 보따리에 묶어  2012년 '베스트 어반 컨템포러리 앨범(Best Urban Contemporary Album)'으로 시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어반'은 흑인 아티스트를 주류 '팝(Pop)'이나 '록(Rock)' 카테고리에 진입하지 못하게 격리하는 '유리천장'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흑인 아티스트들은 아무리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작품성이 높이 평가되어도, 본상이나 주류 장르 대신 어반 카테고리에 몰아넣고 상을 주는 경향이 강했다. 

 

2020년 그래미에서 상을 받은 래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는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반(Urban)이라는 말은 나에게 'N-단어(흑인 비하)'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순화한 표현처럼 들린다. 왜 우리는 그냥 '팝' 부문에 들어갈 수 없나?"면서 인종차별을 비판했다. 

 

어반 카테고리는 2020년 미 전역을 뒤흔든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과 #BlackLivesMatter(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계기로 소멸하게 된다. 그해 6월 레코딩 아카데미는 '어반'을 삭제하고  '베스트 프로그레시브 R&B 앨범(Best Progressive R&B Album)'으로 명명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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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BTS,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 

#26 비틀즈 Vs. 방탄소년단 The Beatles vs. BTS

1960년대 비틀즈(The Beatles)와 오늘의 보이밴드 BTS를 비교한다. 빌보드 No. 1, HOT 100, 베스트셀링 앨범, 비틀 매니아와 BTS 팬클럽 ARMY까지. 그리고, 2022년 6월 휴지기 선언 후 홀로서기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며 정국, 제이홉, RM, 슈가, 뷔, 지민, 진은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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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Keys to Understanding the Korean Wave: Beyond BTS, Parasite and Squid Game 

#26 비틀즈 Vs. 방탄소년단 The Beatles vs. BTS

A comparison between the 1960s Beatles and today's boy band BTS. Billboard No. 1, HOT 100, best-selling album, lyrics, and Beatlemania & BTS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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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The Beatles vs. BTS   365

The Beatles vs. BTS by the Numbers   365

From Liverpool to Seoul: Two Boy Band Phenomena   365

Supergroup Comparison: The Beatles and BTS   366

1. Billboard Charts    368

2. YouTube Views    371

3. Bestselling Album    372

4. Music Awards   374

Billboard, AMAs, and MTV VMAs   376

5. Guinness World Records    377

6. Lyrics    378

7. Beatlemania and the BTS ARMY   380

BTS in the COVID-19 Era    382

BTS: Chart-Topping Success    383

BTS: Military Service and Future Plans    385

A Timeless Legacy: The Beatles & BTS   385

 

 

'33 Keys to Understanding the Korean Wave: Beyond BTS, Parasite and Squid Game'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BTS, 기생충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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