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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Eagles), 에로스미스(Aerosmith) 등 당대의 록 밴드에 가려졌지만, 조지 해리슨, 엘튼 존, 에릭 클랩톤 등에게 영향을 주었던 전설의 밴드 '더 밴드(The Band)'의 리더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 80)이 LA에서 세상을 떠났다. 로버트슨은 토론토에서 태어났으며, 5인조 밴드 멤버 거의가 캐나다 출신이지만 더 밴드는 아메리카나-포크-록-재즈-컨트리-리듬앤블루스-가스펠 등을 융합한 사운드와 미국적인 가사로 빈티지하면서 생명력 있는 사운드를 구사했다. 밴드는 70년대 밥 딜런과 함께 투어를 했으며, 딜런이 전기기타로 바꾼 역사적인 공연에도 함께 했다. 로버트슨의 친구였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1976년 더 밴드의 마지막 콘서트를 담은 다큐멘터리 'The Last Waltz'를 연출했다. 로버트슨은 스콜세지 감독의 '성난 황소', '카지노', '아이리쉬 맨' 등의 음악 프로듀서로 참가했다. 2019년 더 밴드의 다큐멘터리 'Once Were Brothers: Robbie Robertson and the Band'가 나왔다. <2023. 8. 9.>

 

 

2019 DOC NYC (11/6-15)

Once Were Brothers: Robbie Robertson and the Band  ★★★☆

한때 '더 밴드(The Band)'는 형제들이었다

2019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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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d

 

비틀즈(The Beatles)도, 이글스(Eagles)도 해산했고, 퀸(Queen)도 해산했다가 재결합했다. 인기 록밴드가 해산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돈, 여자문제, 약물 문제, 성격차, 음악성의 차이, 솔로 전향을 위해 그리고 심신피로 등 다양하다. 1976년 해산으로 더욱 유명해졌던 '더 밴드'는 우리에게 낯설다. 이름도 평범할 뿐만 아니라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이글스, 퀸처럼 글로벌한 히트곡을 가진 록그룹이 아니다.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은 1976년 초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를 개봉한 후 그해 11월 추수감사절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 볼룸에서 열린 역사적인 콘서트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된다. 5인조 록밴드 '더 밴드(The Band)'의 해산을 선언하는 고별 콘서트 '마지막 왈츠(The Last Waltz)'였다. 밥 딜런, 에릭 클랩턴, 닐 다이아몬드, 밴 모리슨, 머디 워터스, 닐 영, 조니 미첼, 그리고 링고 스타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게스트로 나온 이 영화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큐멘터리 중의 한편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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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더 밴드의 고별 콘서트를 기록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The Last Waltz'는 불후의 명작이 됐다. 

 

하지만, 록역사에서 더 밴드는 전설이다. 캐나다 출신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 릭 단코(Rick Danko), 리처드 마누엘(Richard Manuel), 가스 허드슨(Garth Hudson), 그리고 미국 아칸사주 출신 레본 헬름(Levon Helm)까지 4인의 캐나다인과 1인의 미국인으로 구성된 더 밴드는 포크, 블루스, 컨트리뮤직을 혼합한 록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Eric Clapton)과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를 비롯해 헤비메탈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4인조 포크밴드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Crosby, Stills, Nash & Young), 엘튼 존(Elton John),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핑크 프로이드(Pink Flyod)까지 무수한 록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더 밴드는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으며,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2004년 역사상 위대한 아티스트 #50위에 선정했다. 그리고, 2008년 더 밴드는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 그룹이 해산한 지 43년이나 흘렀는데,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나왔을까? 5인의 멤버들 중 3인이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캐나다 출신 26세 다니엘 로어(Daniel Roher) 감독이 연출한 '한때는 형제들: 로비 로버트슨과 그의 밴드(Once Were Brothers: Robbie Robertson and the Band)'가 2019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DOC NYC, 11/6-15)의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제작자는 마틴 스콜세지와 비틀즈와 루치아노 파바로티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던 론 하워드(Ron Howard)가 맡고 있으며,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오프닝을 장식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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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권의 회고록

 

다니엘 로어 감독은 '한때는 형제들: 로비 로버트슨과 그의 밴드'에서 자신보다 50세가 많은 전설의 밴드이자 같은 캐나다인 뮤지션 로비 로버슨을 영웅화한다. 더 밴드의 뮤지션 3인(릭, 리처드, 레본)은 세상을 떠났고, 우드스탁에 살고 있는 드러머 가스 허드슨을 침묵하고 있으니, 로비 로버트슨의 스토리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밴드의 멤버 3인 리처드 마누엘(1986), 릭 단코(1999), 레본 헬름(2012)은 세상을 떠났다. 가스 허드슨은 우드스탁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로비 로버트슨은 2016년 회고록 '증언(Testimony: A Memoir)'을 발표했고,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76세의 로비 로버트슨이 주인공이며, 그가 해설까지 한다. 따라서 객관적인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로버트슨의 시각으로 회고하는 노스탤지어가 담긴 전기영화같다. 관객에게는 '비하인더 씬'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유튜브로 '라스트 왈츠' 풀 콘서트도, 스콜세지 감독의 다큐멘터리도 공짜로 볼 수 있으니 우리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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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d

 

실제로 더 밴드의 리더 로비 로버트슨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194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로비 로버트슨의 엄마는 모호크족 인디언 원주민이었다. 소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학대 속에 살았다. 마침내 엄마는 소년이 12살 때야 친아버지가 유대인 도박꾼이자 갱으로 양부와 결혼하기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말해준다. 로버트슨은 어릴적부터 엄마의 고향인 인디언 보호구역을 드나들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다.  

 

그리고, 14살 때부터 그룹을 결성해 토론토 교외의 클럽에서 연주했다. 1958년부터 로커빌리(rockabilly, 초기 로큰롤 양식으로 애팔래치안 민요, 가스펠, 블루스, 컨트리가 결합된 음악 장르) 가수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의 백 밴드로 활동하게 된다. 1964년 호킨스와 결별하면서 밴드 이름을 호크스(The Hawks)라 정했고, 1965년부터 밥 딜런의 백 밴드가 되어 전미, 유럽 공연에서 연주한다.(이글스는 린다 론스타트의 백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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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왼쪽)과 로비 로버트슨

 

로비 로버트슨과 '포크의 대부' 밥 딜런은 유대인 커넥션이 있었다. 밥 딜런은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기기타를 연주해 팬들을 경악킨다. 이후 더 밴드는 밥 딜런의 세계 투어 콘서트의 백 밴드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통기타가 아닌 전기기타로 무대에 오른 딜런과 호크스는 카네기홀에서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까지 전 순회공연에서 야유를 받았다. 이에 좌절한 드러머 레본 헬름은 은퇴를 선언했다. 

 

1966년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뻔했던 밥 딜런은 부인 사라와 업스테이트 뉴욕 우드스탁으로 이주했다. 호크스 밴드도 레본 헬름을 복귀시키며 우드스탁의 핑크색 목장 하우스에 정착한 후 이곳에서 노래를 만들어 1968년 '빅 핑크에서 온 음악(Music from Big Pink)'이란 타이틀로 데뷔 앨범을 출시하게 된다.

 

그때 호크스는 그룹 이름을 동네 사람들이 부르던 'The Band'로 정하게 된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1976년 해산할 때까지 10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그리고,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에서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까지 이 앨범의 열혈팬들이 됐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The Weight",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Up on Cripple Creek" 등이다.

 

*The Weight | Featuring Robbie Robertson | Song Aroun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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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d

 

파이브 가이즈, 더 밴드는 형제애로 다져진 록그룹이었다. 다큐멘터리 제목 '한때는 형제들: 로비 로버트슨과 그의 밴드'도 그러하지만, 초기 이 밴드 저 밴드를 옮겨다니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이 부러워할 정도였다고 영화에서 고백한다. 또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더 밴드엔 록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백인 가수 세명이나 있었다"라며 찬양했다. 사실 레본, 릭, 리처드를 지칭하지, 로비 로버트슨은 밴드의 리더이지만, 기타와 백보컬을 맡았으며, 작곡을 주로 했다. 하지만, 우드스탁 핑크 하우스와 지하에 더불어 살면서 공동 창작이었다는 것이 레본 헬름의 주장이었다. 미국의 저작권에서는 연주자는 제로, 작곡자에게 로열티가 모두 돌아가는 불공정법이다. 

 

인기가 올라가자 더 밴드의 멤버들은 약물과 알콜에 중독됐고, 1976년 더 밴드는 해산하며 '라스트 왈츠'를 추게된다. 해산 후 더 밴드는 리더였던 로비 로버트슨만 빼놓고, 연주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전성기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한편, 로비 로버트슨은 솔로로 데뷔한 후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된다. 1986년 리처드 마누엘은 호텔방에서 자살했으며, 1999년 릭 단코는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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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d

 

레본 헬름은 1993년 회고록 '불타는 바퀴(This Wheel's on Fire)'에서 로비 로버트슨이 더 밴드를 통제하고, 조종했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라스트 왈츠' 콘서트에서 노래를 하는 것은 레본 헬름, 리처드 마누엘, 릭 단코이며, 리더 로버트슨은 기타를 치며 백업 보컬만 담당하는 정도다. 하지만, 거의 모든 더 밴드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저작권을 갖고 있다. 헬름은 많은 노래가 공동작업이었다고 주장했다. 헬름은 2012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국 로비 로버트슨과 레본 헬름은 적이 됐고, 죽음을 앞둔 무의식 상태에서 상봉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레본 헬름의 1993년 회고록 '불타는 바퀴'에 대한 반박이었던 로버트슨의 2016년 회고록 '증언'을 재차 강화하는 증언의 영화처럼 여겨진다. 이로써 로비 로버트슨의 증언은 더 밴드의 HIS-TORY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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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비 로버트슨

 

올해 뉴욕의 메이저 뮤지엄에서는 음악 전시가 활발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는 로큰롤 기타 특별전 'Play It Loud: Instruments of Rock & Roll', 쥬이시뮤지엄에선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 특별전 'Leonard Cohen: A Crack in Everything'이 열렸고, 지금 휘트니뮤지엄에선 재즈 뮤지션 제이슨 모란의 특별전 'Jason Moran'이 열리고 있다.  

 

이 영화는 1960-70년대 엔터테인먼트계의 이모저모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지금 링컨센터의 뉴욕필하모닉 연주홀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1억달러씩을 기부하며 이름을 붙인 레코드 프로듀서 데이빗 게펜(David Geffen)은 1960년대 어사일럼 레코드(Asylum Records)의 대표로 가수 조니 미첼과 말리부에 살고 있었다. 게펜은 밥 딜런과 계약하려는 속셈으로 먼저 로버트슨에게 접근해 말리부로 이주하라고 했고, 더 밴드는 뉴욕주의 시골 우드스탁을 떠나 캘리포니아의 해안가 부촌 말리부 생활을 즐기게 된다. 게펜은 이후 가수 셰어(Cher)와 동거했고, 이후엔 동성애자가 됐다.  

 

전성기엔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보다 더 매력있었던 훈남 로비 로버트슨의 과거로 드라마틱하다. 로비는 양부의 학대를 받다가 도박꾼이자 갱스터였던 생부의 정체를 알게된 후 유대계 삼촌들로부터 쏟아지는 애정을 받았다. 삼촌들은 조카가 '모피나 다이아몬드 사업'을 하라고 충고했고, 로비는 그게 연예계라고 생각했다. 그가 기타 연주와 작곡의 영감을 받은 곳은 엄마의 뿌리인 인디안보호구역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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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로버트슨과 도미니크 부르주아 결혼식, 1968.

 

딱딱한 파이브 가이즈 밴드 이야기에서 러브 스토리가 감칠맛을 준다. 로비 로버트슨이 파리의 카페에서 만나 결혼에 이른 캐나다 기자 도미니크 부르주아다. 미모와 지성을 갖춘 도미니크는 비틀즈를 해산시킨 원흉으로 지목되는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와는 다른 천사처럼 그려진다. 그녀는 캐나다 여인이었다. 이들의 사랑에 빠졌을 때 배경음악으로 제인 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의 샹송 "Je T'aime,...Moi Non Plus"가 나오는 것은 사카린처럼 느껴진다. 

 

도미니크는 인터뷰에서 다섯 남자들의 우정과 일상을 들려준다. 릭 단코는 도미니크를 태우고 교통사고를 일으켰고, 나중에 자살로 마감하는 리처드 마누엘은 "상처받은 새'라고 회고한다. 우정은 부서지고, 애정은 깨어지고... 한때 연인, 부인이었던 도미니크 로버트슨은 아이 셋을 낳고 이혼했으며, 현재 약물중독 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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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백 밴드 'The Hawks'에서 전설의 'The Band'까지.

 

로비 로버트슨이 원래 마지막 콘서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염두어 두었던 이는 '제 7의 봉인' '화니와 알렉산더' 등의 스웨덴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이었지만, 마틴 스콜세지로 낙찰됐다. 그리고, 로버트슨과 스콜세지는 단짝이 되어 함께 살며 마약에 빠지기도 했고, 이에 대해 레본 헬름은 '동성애적 관계'라고 폭로했다. 결국 '라스트 왈츠'는 로버트슨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로버트슨은 이후 스콜세지 영화 (성난 황소, 카지노, 디파티드, 월스트릿의 늑대, 아이리쉬맨) 등의 음악 프로듀서로 우정을 과시해왔다. 

 

다큐멘터리에서 로비 로버트슨은 더 밴드의 해산을 원하지 않았고, 긴 휴가(long vacation)이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해산 5년 후 더 밴드는 로버트슨을 제외하고 재결합했고, 리처드 마누엘이 자살하기 전까지 6년간 활동했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역사도, 기록영화도 전적인 객관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준다. 역사는 강자와 승자의 스토리다.  리처드 마누엘, 릭 단코, 레본 헬름 모두 눈을 감았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100분. https://www.docny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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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ce Were Brothers: Robbie Robertson and the Band

 Wed Nov 6, 2019, 7:00 PM | SVA Theatre

 https://www.docny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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