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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Rollins (1930–2026) 

 

1950년대 전성기에 윌리엄스버그 브릿지에서 연습

뮤지션으로, 인간으로 거성 'Saxophone Colos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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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onnyrollins.com

 

제 2차 세계대전이후 시대를 대표하는 거물 재즈 뮤지션 중 한명이었던 색소포니스트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가 5월 25일 뉴욕주 우드스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12년 호흡기 질환인 폐섬유증 진단을 받아 투병해왔다.

 

뉴욕타임스는 롤린스가 "롤린스씨는 개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Even by the standards of a music that prizes individuality, Mr. Rollins stood out, as both a musician and a personality)"고 전했다. 

 

소니 롤린스는 1940년대 후반, 대부분의 젊은 재즈 색소폰 연주자들이 비브라토를 최소화한 가벼운 음색을 선호하던 시절에 재즈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테너 색소폰 연주자로 꼽히는 콜먼 호킨스의 고전적 스타일을 계승한, 묵직하고 풍성한 사운드를 구축해냈다. 그는 수년에 걸쳐 그는 아방가르드, 재즈 록 퓨전 등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시도하며 탐구의 폭을 넓혀갔다.

 

그러나 맹렬한 에너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 밖의 음을 연주하는 특유의 성향, 그리고 때로는 거칠고 냉소적이다가도 때로는 풍성하고 낭만적으로 변모하는 독특한 음색 덕분에, 그는 결국 그 어떤 장르나 범주로도 온전히 분류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남았다.

 

"내가 연주하는 음악은 그 어떤 특정 스타일이라는 틀 안에 가두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광활하다...색소폰을 손에 들 때마다, 나는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소리를 듣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다."

 

"진정한 연주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바로 그 순간에는 진부한 상투구(clichés)가 끼어들 틈이 없다....내가 정말로 연주에 몰입해 있을 때면, 내 마음속은 완전히 텅 비어 있다."

 

소니 롤린스는 1930년 9월 7일 맨해튼 할렘에서 버진아일랜드 출신 부모 사이에 세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월터 테오도어 "소니" 롤린스(Walter Theodore "Sonny" Rollins). 어릴적 음악과 미술을 공부하다가 10대에 전문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했다. 

 

1949년 가수 뱁스 곤잘레스와 함께 첫 녹음 작업을 마친 후엔 뉴욕 재즈계에서 각광받는 연주자로 떠오르며 마일스 데이비스, 델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월 같은 거물들과 함께 작업했다. 롤린스는 1950년대 초, 그 세대의 다른 많은 재즈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헤로인 중독에 빠지면서 잠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1955년에 이르러 그는 중독을 극복하고, 드러머 맥스 로치와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이 이끄는 인기 5중주단의 일원으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대표적인 앨범은 동료 색소폰 연주자인 존 콜트레인과 유일하게 함께 녹음한 기록을 담은 'Tenor Madness'와 'Saxophone Colossus'다. 1959년, 롤린스는 지속적으로 극찬에 가까운 평을 받았으며, 재즈계의 새로운 스타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돌연 연주와 녹음을 중단하고 대중의 시야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그후 2년 동안 자신의 연주 실력이 스스로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확신한 롤린스는 연습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그는 종종 한밤중에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윌리엄스버그 브리지 위에서 연습하곤 했다. 1961년 롤린스는 재즈 뮤지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거액의 계약금을 안겨준 RCA 빅터 레코드와의 계약했다. 복귀 앨범은 'The Bridg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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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Detroit Jazz Festival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1960년대 생산적인 활동을 하던 롤린스는 다시 한번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1966년부터 1972년 사이 그는 음반 녹음과 공연 활동을 중단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과 인도에서 보냈다. 훗날 그는 당시의 행보를 '영적인 탐구의 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1972년 그는 스튜디오로 복귀해 앨범 'Sonny Rollins’ Next Album'을 녹음했고, 다시금 재즈계의 최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끊임없이 탐구의 여정을 이어갔다. 1984년 한 인터뷰에서 그가 표현했듯이, 바로 "궁극의 소리(ultimate sound)"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계속 연습하는 이유다...궁극의 소리를 찾아냈을 때, 나는 그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오직 그 소리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그 소리를 악기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완벽한 충족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

 

재즈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침을 겪는 와중에도, 그는 변함없이 재즈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한 공의 상당 부분을 매니저이자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였던 아내 루실(피어슨) 롤린스에게 돌렸다. 그녀는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소니 롤린스는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케네디센터 공로상(Kennedy Center Honor)을 수상했다. 

롤린스는 오랫동안 로어맨해튼과 업스테이트 뉴욕의 저먼타운(Germantown)을 오가며 살았다. 2001년, 9/11 이후 맨해튼 아파트를 떠났으며, 2013년엔 저먼타운에서 우드스톡으로 이주해 살았다. 

 

2022년엔 에이단 레비가 저술한 전기 'Saxophone Colossus'가 출간됐다. 뉴욕 시의회에는 그의 업적을 기려 '윌리엄스버그 브리지(Williamsburg Bridge)'의 소니 롤린스 브리지로 변경하자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PS: 컬빗은 뉴포트와 디트로이트 재즈 페스티벌, NJPAC에서 소니 롤린스의 연주를 볼 수 있었다. 특히 2012 디트로이트 재즈 페스티벌 작은 무대에서 그의 모습은 천상계같았다. 

 

Sonny Rollins, Giant of the Jazz Saxophone, Is Dead at 95

Even by the standards of a music that prizes individuality, he stood out, as both a musician and a personality.

https://www.nytimes.com/2026/05/25/arts/music/sonny-rollins-dead.html

 

 

 

'색소폰 거상' '재즈 은둔자'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첫 전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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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Rollins, Photo by John Abbot/ Sonny Rollins, Book by Aidan Levy

*Sonny Rollins, St. Thomas YouTube

 

'색소폰 거상(Saxophone Colossus)'으로 불리우는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93)의 첫 전기가 출간됐다. 에이단 레비(Aidan Levy)가 저술한 'SAXOPHONE COLOSSUS: THE LIFE AND MUSIC OF SONNY ROLLINS'(Hachette 간)은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 민권 운동가 및 환경 운동가인 소니 롤린스의 삶과 음악세계를 탐구했다. 

 

소니 롤린스는 오랫 동안 수수께끼로 알려졌다. 그는 그래미상, 오스트리아 명예십자장, 스웨덴 폴라 음악상, 국가예술메달(National Medal of Arts) 등을 수상하며 "살아있는 최고의 즉흥 재즈연주자"로 불리워왔지만, 그의 음악 70년 뒤의 삶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때문에 '재즈의 유일한 은둔자(the only jazz recluse)'로 남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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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Detroit Jazz Festival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Sonny Rollins Detroit Jazz Festival YouTube 

 

2008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2012 디트로이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소니 롤린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그리고, 2011년 80세 때 뉴저지퍼포밍아트센터(NJPAC)의 롤린스 콘서트에 가본 적이 있다. 

 

저자 에이단 레비(Aidan Levy)는 롤린스를 비밥에서 아방가르드까지의 가교이며 상징적인 "Great Day in Harlem" 초상화에 묘사된 재즈의 황금 시대에 대한 지속적인 연결고리라고 비유한다. 레비는 롤린스를 비롯 가족, 친구, 및 협력자들과의 200여개의 인터뷰와 롤린스의 개인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전기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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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Newport Jazz Festival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본명은 월터 테오도어 "소니" 롤린스(Walter Theodore "Sonny" Rollins), 1930년 할렘 르네상스 시대 뉴욕에서 카리브해 버진아일랜드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맨해튼 할렘과 슈가힐에서 자랐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다가 7살경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해 고교시절 재즈 밴드에서 활동했다. 롤린스는 버드 파웰(Bud Powell), 델로니우스 몽크(Thelonious Monk),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및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와 협업했으며, 첫 민권 테마 앨범 '프리덤 스위트(Freedom Suite),' 뉴욕 재즈클럽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어느날 밤(A Night at the Village Vanguard), 그리고 1956년 명반 '색소폰 콜로서스(Saxophone Colossus)'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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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롤린스의 앨범 'Way Out West, 1957)'/ 'The Bridge' (1962)

 

소니 롤린스는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헤로인 중독으로 라이커스아일랜드에서 복역했다. 1959년엔 2년간 윌리엄스버그 브릿지에서 하루 최대 16시간씩 연습하며 중독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 이웃을 방해하지않고, 연습하기 위해 다리에서 색소폰을 불었다. 1962년엔 앨범 '브릿지(The Bridge)'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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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ophone Colossus (1956)/ Global warming (1998)

 

롤린즈가 1968년 인도의 아쉬람에서 수련한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1971년 복귀한다. 1973년 DownBeat Jazz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1983년엔 NEA Jazz Master로 선정됐다. 2010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예술메달(National Medal of Arts)을 받았다. https://sonnyroll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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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New Jersey Performing Art Center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저자 에이단 레비는 스탠루빈오케스트라에서 바리톤 색소폰주자로 활동했으며, 컬럼비아대 재즈연구센터에서 일했다. 그는 루 리드 전기(Dirty Blvd.: The Life and Music of Lou Reed)의 저자이며, 패티 스미스(Patti Smith on Patti Smith)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소니 롤린스 전기는 2023 미도서상(American Book Awards)을 수상했다.

https://www.rizzolibookstore.com/product/saxophone-colossus-life-and-music-sonny-rollin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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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musician Sonny Rollins receives the 2010 National Medal of Arts from President Barack Obama. Photo: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Live in Tokyo in 1997, playing "Falling in Love With Love"

 

*Live in Munich in 1992, playing "Where or When"

 

*Live in Prague in 1982, playing "Smoke Gets In Your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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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Newport Jazz Festival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Live in Montreal in 1982, playing calypso "Don't Stop the Carnival"

 

*Live in 1973, playing calypso "St. Thomas"

 

*Sonny Rollins, saxophone solo on the Rolling Stones "Waiting on a Friend" 1981

 

*Sonny Rollins Tennessee Waltz

 

 

*블루스의 전설 B.B. 킹 로다운 블루스 페스티벌 콘서트 

*디트로이트 재즈 페스티벌 2012

*2013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리포트

*재즈 뮤지션 그레이스 켈리(정혜영)를 아시나요?
*데이브 브루벡 추모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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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4.02.15 14:23
    색소폰의 거장 소니 롤린스의 삶괴 음악을 읽었습니다. 째즈는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잘 모르고 지냈는데 훌륭한 째즈 음악가들이 있네요.루이 암스트롱외에는 문외한이었습니다. 소니 롤린스, 한국계 소녀 정혜영이 있네요. 소니 롤린스가 2년간 하루 최대 16시간씩 연습을 하면서 헤로인 중독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사는 롤린스가 얼마나 색소폰과 째즈를 사랑했나를 보여줘서 그를 향한 존경심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째즈를 듣고싶고 콘서트도 가고 싶습니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째즈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래이스 케리(한국명 정혜영)가 있다는 사실도 컬빗을 통해 알았습니다. 500회 이상의 콘서트와 100 여곡의 작곡을 한 천재 째즈 음악인을 알게됐음이 기쁩니다.
    다방면으로 지식을 공급해 주시는 컬빗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