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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Blues
2023.07.21 10:20

가수 토니 베넷(Tony Bennett, 96) 별세

조회 수 96 댓글 1

Tony Bennett (1926-2023)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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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한 선율, 재즈에서 영향을 받은 창법, 청중을 포용하는 인성, 그리고 따뜻하고 유연한 해석으로 '아메리칸 송북(American Songbook)'을 세계에 전파하고, 여러 세대 팬을 확보했던 가수 토니 베넷이 21일 맨해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96세였다."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는 "70년의 일관된 경력을 뉴요커 토니 베넷은 20세기 최고의 팝 가수인 루이 암스트롱, 빙 크로스비, 주디 갈란드, 빌리 할러데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악적 행보를 따라 21세기로 횃불을 들었다"고 전했다. 

 

토니 베넷은 1962년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뉴요커였다. 본명은 Anthony Dominick Benedetto. 1926년 퀸즈의 롱아일랜드시티에서 태어나 아스토리아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지오반니는 1906년 11세 때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 살다가 베수비오 화산 폭발 이틀 전에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릴적 노래를 잘 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10살 때 음악교사의 추천으로 뉴욕 트라이보로 브릿지(현 로버트 F. 케네디 브릿지) 개통 때 피오렐로 라 과디어 시장과 노래했다. 맨해튼 산업예술학교(현 High School of Art and Design)에 들어갔지만, 중퇴한 후 AP 통신사의 카피 보이, 세탁소 직원, 엘리베이터 작동원으로 일했다. 

 

청년 시절 밤엔 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아마추어 쇼 조 바리(Joe Bari)라는 이름을 걸고 공연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징병되어 독일에서 보병으로 복무한 후 1946년 제대했다. G.I. 빌로 아메리칸시어터 윙에서 공부하면서 노래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후 맨해튼과 퀸즈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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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y Bennett at the opening reception of  'Tony Bennett: Portrait of An Artist' by Kelsey Bennett and Josh Cheuse at The Morrison Hotel Gallery SoHo, September 20, 2011.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어느날 코미디언 밥 호프(본명 레슬리 타운스)가 베넷을 공연을 보고 파라마운트 시어터(타임스퀘어)에서 공연을 주선하면서 이름(안소니 베네데토)을 바꿀 것을 제안해 토니 베넷(TONY BENNETT)을 사용하게 된다. 1950년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했다. 1962년 "샌프란시스코..."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로큰롤이 우세해지면서 인기가 시들기 시작했다. 1969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신임 회장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가 비틀즈 등 당대의 노래를 베넷의 버전으로 녹음한 "Tony Sings the Great Hits of Today!"를 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1970년대 자신의 음반회사 Improv Redords를 설립해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와 녹음하고, 1976년 카네기홀에서 열린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다. 그러나 레코드 회사도 문을 닫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 라스베가스 공연, 마약, 국세청 조사 등으로 베넷의 70년대는 방황의 나날들이었다. 1979년 욕조에서 죽을 뻔하다 회생한 토니 베넷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1995년 MTV음악상 시상식에 출연했으며, 이듬해 MTV의 "Unplugged" 시리즈에서 K.D. 랭, 엘비스 코스텔로와 함께 녹음한 레코느는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다. 베넷의 음악 경력이 근 40년만에 부활하며 인기를 되찾았다. 

 

1963년 "샌프란시스코"로 그래미상을 2회(Best Solo Vocal Performance, Record of the Year) 수상한 후 지난해 레이디 가가와 녹음한 앨범 'Love for Sale'로 마지막 그래미상(Best Traditional Pop Vocal Album)까지 총 29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그가 평생 판매한 레코드는 6천만장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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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와인하우스와 토니 베넷/ 레이디 가가와 토니 베넷의 녹음 앨범 'Love for Sale' 

 

베넷은 평생 민주당원으로 1965년 해리 벨라폰테,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 흑인 연예인들과 셀마-몽고메리 민권 행진에 참가했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한 'Stars for Freedom' 데모에서 공연했다. 2007년 198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낸 40세 연하의 교사 수잔 크로우와 세번째 결혼, 퀸즈공립학교 프랭크시나트라아트스쿨에 기부했다. 2016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으며, 2021년 8월엔 수퍼스타 레이디 가가와 'One Last Time' 콘서트에 출연했다. 

 

필자는 2011년 9월 소호의 모리슨호텔 갤러리(The Morrison Hotel Gallery SoHo)에서 열린 사진전 'Tony Bennett: Portrait of An Artist' 리셉션에서 토니 베넷을 볼 수 있었다. 레이디 가가,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과 듀엣으로 녹음하는 광경 등을 포착한 켈시 베넷(Kelsey Bennett)과 조쉬 체우스(Josh Cheuse)의 사진이 전시됐다. 

 

Tony Bennett, Champion of the Great American Songbook, Is Dead at 96

From his initial success as a jazzy crooner through his generation-spanning duets, his career was remarkable for both its longevity and its consistency.

https://www.nytimes.com/2023/07/21/arts/music/tony-bennett-dead.html 

 

Tony Bennett, Master Pop Vocalist, Dies at 96

https://variety.com/2023/music/news/tony-bennett-dead-dies-pop-vocalist-1235676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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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3.07.25 22:24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언제 들어도 감성에 빠지는 이 노래를 토니 베넷이 불렀다는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겠지 하곤 말았는데 베넷이 불렀군요. 생전에 그의 앨범이 6천만장이나 팔렸다니 그의 인기를 가늠할 것같습니다.
    오래간만에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유튜브로 들으면서 감회에 젖어 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