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와 뮤즈 (3) 살바도르 달리의 마돈나, 매니저, 악처 갈라(Gala)
Artist & Muse <3> Salvador Dali & Gala
살바도르 달리의 마돈나, 매니저, 악처 갈라(Gala)
Salvador Dali and Lobster Crotch/ Dali and Gala, 1930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는 파블로 피카소나 루시안 프로이드처럼 플레이보이가 아니었다. 53년간 지고지순하게 한 여인을 숭배했다. 갈라 달리(Gala Dalí, 1894-1982)는 살바도르 달리의 마돈나였으며, 뮤즈였으며, 부인이었으며, 매니저이기도 했다. 그녀는 평생 바람을 피우며, 달리에게 상처를 주었다.
갈라 달리의 본명은 엘레나 이바노바 디아코노바(Elena Ivanovna Diakonova). 러시아의 카잔에서 태어나 어일적부터 계부가 읽어주는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에 심취했다. 17살 때 폐결핵에 걸려 스위스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요양원에서 동갑내기 프랑스 청년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1985-1953)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엘뤼아르는 훗날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유명해졌다. 이듬해 엘뤼아르와 결혼한 갈라는 딸을 출산했지만, 엄마 노룻을 극도로 혐오해서 딸을 학대했다.
Salvador Dali, The Madonna of Port Lligat, 1949(left)/ One Second Before Awakening From a Dream Provoked by the Flight of a Bee Around a Pomegranate, 1944
도발적인 성향의 갈라는 대신 엘뤼아르과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해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앙드레 브레통(André Breton) 등과 어울렸고, 만 레이(Man Ray)의 모델이 됐다. 초현실주의 그룹 중 브레통과 스페인 영화감독 루이스 브뉘엘(Luis Buñuel)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간질하는 갈라를 혐오한 것으로 전해진다. 갈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엘루아르, 에른스트와 3년간 쓰리섬까지 즐기며 살았다.
1929년 여름, 갈라와 엘루아르는 스페인에 갔다가 청년 화가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한창 뜨고 있던 신예작가 살바도르 달리였다. 갈라는 10년 연하 살바도르와 눈이 맞자 바로 남편과 딸을 버렸다. 그리고 달리의 고향 카다케스의 어촌 마을에서 달리와 동거에 들어갔다. 이 커플은 1934년 공식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달리는 갈라를 모델로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갈라는 성모가 되었다가, 나부가 되었다가, 미스테리 여인으로 달리의 작품에서 변신했다. 달리는 때때로 작품에 'Gala Salvador Dalí'라 아내의 이름을 넣어 서명까지 했다. 달리는 "내가 그림을 그릴 때는 대부분이 갈라 당신의 피로 그린다오"라고 말했다.
Salvador Dali, Portrait of Gala with Two Chops Balanced on Her Shoulder, 1934(left)/ Gala Placidia. Galatea of the Spheres, 1952
살바도르 달리는 왜 갈라에게 빠졌을까? 달리는 어릴 적 성병에 관한 그림책을 본 후 충격을 받아 평생 여성 생식기 혐오, 발기부전과 성적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달고 살았다. 여기에 결벽증까지 있었다. 달리는 자서전에서 갈라를 만나기 전까지 동정을 지켰다. 하지만, 성적 트라우마 때문에 관음증과 자위행위를 선호했다고 고백했다.
한편, 타로 카드를 읽는 것을 좋아했던 갈라는 남성들이 주도하는 미술계에서 조종의 달인이었다. 달리의 매니저가 된 갈라는 자신이 믿지 않는 이들을 남편 근처에 못오게 하는 한편, 갤러리 주인들을 매료시키는 방법을 알았다. 돈 관리의 명수였던 갈라는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로부터 자신이 매니저가 되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막스 에른스트와 결혼했던 파워아트 콜렉터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은 회고록에서 갈라에 대해 "잘생겼지만, 연민을 느끼기엔 너무 작위적"이라고 평했으며, 미술계에서는 "기생충" "돈에 환장한 여자" "악마의 지배자(demonic dominatrix)", 그리고 "불쌍한 달리가 마녀에게 홀렸다" 등 악평도 난무했다.
Salvador Dali and Gala Dali(1934, 1964, 1972)
1968년 달리는 갈라에게 고향 지로나의 푸볼성(Castle of Púbol)을 사주었다. 벽에 그림을 그려 인테리어까지 단장해주었지만, 갈라는 달리에게 자신의 초대장 없이는 방문을 허가하지 않은 악처였다. 성적인 리비도가 강했던 갈라는 1971년부터 1980년까지 매년 여름 이 성에 젊은 남자들을 불러 휴가를 보내곤 했다.
그중 한명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출연했던 미국인 록가수 제프 펜홀트(Jeff Fenholt)였다. 1980년 중풍에 걸렸던 달리는 갈라를 폭행해 갈비뼈와 엉덩이뼈를 부러트렸다. 이때 갈라는 병원에서 복용했던 약물로 인해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73년 달리는 삽화를 넣은 요리책 '갈라의 식사(Les Diners de Gala)'를 출간했다. 이 요리책엔 카사노바 칵테일, 아보카도 토스트 등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파란만장한 삶을 누렸던 갈라는 1982년 여름 독감과 치매를 앓다가 사망했다. 달리는 푸볼성에 묻힌 부인을 위해 체스판 모양의 묘비를 만들어주었다. 달리 자신은 훗날 갈라 옆에 나란히 누울 것을 계획하고 자신의 묘비를 만들었다. 하지만, 2년 후 성에 불이나서 화상을 입은 후 푸볼성을 떠나버렸다. 푸볼성(Gala Dalí Castle in Púbol)은 1996년 미술관으로 오픈했다.
달리는 갈라가 사망한 해에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지만, 갈라가 떠난 세상에서 삶의 의지를 잃게 됐다. 달리는 1989년 1월 고향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고향 피게라스 달리 미술관에 묻혔다.
*살바도르 달리 요리책 '갈라의 저녁식사' 리바이벌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