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와 뮤즈 (2)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와 여인들
Artist & Muse <2> Lucian Freud & Ladies
슬픈 육체와 여성편력 연대기
A Painter's Progress: A Portrait of Lucian Freud(2014) by David Dawson/ Dangerous Muse: A Life of Caroline Blackwood(2001) by Nancy Schoenberger
그는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손자였다. 그녀는 아이리쉬 맥주회사 기네스 가문의 손녀였다. 슬픈 육체를 탐구한 리얼리스트 인물화가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 1922-2011)와 레이디 캐롤라인 모린 해밀턴-템플-블랙우드(Lady Caroline Maureen Hamilton-Temple-Blackwood, 1931-1996)는 불꽃같은 관계에 탐닉했다.
베를린에서 유대인 건축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루시안 프로이드는 11살 때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이주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 프로이드는 그림에 관심이 많은 손자에게 그림책 '아라비아 나이트'를 선물해주었다. 나치는 독일에 남았던 프로이드 가문의 재산을 압수하고, 친척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945년 나치 수용소 해방을 담은 뉴스영화를 본 루시안 프로이드는 홀로코스트의 충격으로 상처받았고, 그의 그림에 나타나게 된다.
Lucian Freud, Man with a Feather, 1943(left)/ Self‑portrait, Reflection, 2002
프로이드는 문제아였다. 명문학교 다팅톤홀에서 퇴학당한 후 브라이언스톤교에서는 휴양지에서 바지 벗는 내기를 하다가 퇴학당했다. 미술은 센트럴아트스쿨, 이스트앙글리안 미대를 거쳐 골드스미스대에서 전공했다. 1941년 제 2차 세계 대전 중 해군에 자원, 병사들의 문신을 그려주곤 했다. 어느날 캐나다 노바스코시아 대서양 호송대에 있다가 독일 U보트에 의해 배가 폭파됐다. 프로이드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동료들의 시체가 파편이 되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해군에서 제대하게 된다.
1944년 런던 첫 개인전을 성공시킨 루시안 프로이드는 11세 연상인 로나 위샤트(Lorna Wishart)에 반했다. 로나 위샤트의 본명은 로나 가만, 16살 때 출판사 사장 어네스트 위샤트와 결혼한 유부녀로 늘 바람을 피웠다. 당시 로나 위샤트는 미국 시인 로리 리(Laurie Lee)와 동거 중이었다. 로리 리는 후에 로나의 조카 캐시와 결혼에 이른다.
Lucian Freud, Girl With Daffodil, 1945(left)/ Girl with Roses, 1948
프로이드는 위샤트를 모델로 '소녀와 수선화(Girl With Daffodil)'를 그렸다. 위샤트는 형부인 조각가 제이콥 엡스타인(Jacob Epstein)을 소개해주었고, 루시안은 1948년 엡스타인의 딸이자 로나의 조카인 키티 가만(Kitty Garman)과 결혼했다. 가슴 하나를 내놓은 여인의 초상 '소녀와 흰 개(Girl with a White Dog, 1951)'는 가만이 첫째 딸을 임신했을 때 그렸다.
프로이드는 평생 바람둥이 기질로 여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키티 가만도 마찬가지. 질투로 신경쇠약에 빠진 가만은 1952년 프로이드를 버리고, 부모집으로 가버렸다. 기회는 바로 이때. 프로이드는 '007 제임스 본드' 작가 이안 플레밍의 부인 앤 플레밍의 소개로 갑부 레이디 캐롤라인 모린 해밀턴-템플-블랙우드만났다. 첫눈에 반한 이들은 바로 파리로 도피 행각을 벌였다. '침대 위의 소녀(Girl in Bed, 1952)'는 그 시절 파리 호텔 방에서 그린 작품이다.
Lucian Freud, Girl in Bed, 1952(left)/ Hotel Bedroom,1954
1953년 레이디 캐롤라인 블랙우드와의 결혼으로 프로이드의 신분은 상승했다. 파리에서 1년간 신혼생활, 런던의 타운하우스, 승마할 수 있는 컨트리 별장에 벤트리 자동차까지 누릴 수 있었다. 프로이드의 운전은 형편없어서 치안판사는 정신치료를 받으라고 권고했으며, 한 친구는 운전 중 자동차 밖으로 내쫓았다. 레이디와의 결혼생활은 그림 그리는 시간 외에는 술 마시고, 도박에 탐닉했다. '레이디 캐롤라인'까지 알콜 중독자로 만들면서 결혼생활은 3년만에 끝났다.
1953년의 루시안 프로이드와 레이디 캐롤라인 블랙우드
캐롤라인 블랙우드는 루시안 프로이드와 이혼 후 작곡가 이스라엘 시코비츠(1959-1972), 시인 로버트 로웰(1972-1977)과 세차례 결혼하게 된다. 20년 연상의 작곡가 이스라엘 치코비츠와는 결혼 후엔 뉴욕에서 살았다. 말년에는 전남편 치코비츠, 로웰, 동생(AIDS), 장녀(약물중독)가 사망했다. 틈틈히 소설을 써서 'The Stepdaughter', 'The Fate of Mary Rose' 'The Last of the Duchess' 등을 출간했다. 블랙우드는 1996년 2월 64세에 맨해튼 메이페어 호텔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Lucian Freud, Benefits Supervisor Resting, 1994
이후 프로이드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수지 보이트(Suzy Boyt)와 동거하며 다섯 아이를 만들었고, 버나딘 커벌리(Bernadine Coverley)와 살면서는 두 아이가 생겼다. 1980년부터는 19세의 미술학도 소피 드 스템펠(Sophie de Stempel)와 10여년 관계를 지속했으며, 2001년 79세의 프로이드는 52세 연하의 기자 에밀리 번(Emily Bearn)과 관계에 들어갔다.
프로이드에겐 40여명의 자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버나딘 코벌리와의 딸인 소설가 에스터 프로이드, 패션디자이너 벨라 프로이드 등 21명은 확인된 자녀들이다.
Lucian Freud, Kate Moss, 2002
2002년 수퍼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루시안 프로이드를 꼽았다. 이에 프로이드의 딸인 패션 디자이너 벨라 프로이드가 주선해서 두 사람은 만나게 됐다. 첫 만남에서 저녁 식사 후 케이트 모스는 프로이드의 누드 모델이 됐다. 모스는 9개월간 매일 밤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프로이드의 캔버스 앞에 누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누드화는 2005년 390만 파운드(730만 달러)에 팔렸다. 프로이드는 모스의 엉덩이 위에 참새 두마리 문신도 그려주었다.
프로이드는 늘 여인들에 둘러 싸였다. 1944년에 만난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과는 영감을 주고받는 절친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두고 언쟁을 벌이면서 관계를 끝장냈다. 프로이드는 80대에 남성잡지 'GQ'에 의해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된 패셔니스타였다. 2011년 7월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Lucian Freud, Benefits Supervisor Sleeping, 1995
평론가 허버트 리드는 루시안 프로이드를 "실존주의 앵그르(the Ingres of Existentialism)"라고 평했다. 프로이드는 인체야말로 가장 심오한 주제라고 생각하고, 실험실에서 동물을 해부하는 법의학적인 정확도로 육체를 관찰했다. 그의 몸에 대한 집착은 홀로코스트와 해군생활 중 유보트 폭발사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평생동안 따라다닌 여성편력은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했던 유대인 엄마 루시 프로이드(Lucie Freud)와의 관계 때문으로 알려졌다. 프로이드는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싶어하는 엄마의 호기심과 강박관념 때문에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되고 있는다는 생각으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엄마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다른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찾으며, 콘트롤했는지도 모른다.
Lucian Freud, The Painter's Mother, 1973(left)/ Queen Elizabeth II, 2001
2014년 프로이드의 조수이자 모델로 20여년간 일했던 데이빗 도슨(David Dawson)이 루시안 프로이드를 탐구한 책 'A Painter's Progress: A Portrait of Lucian Freud'을 출간했다.
127킬로그램(280 파운드)의 거구 수 틸리(Sue Tilley)가 모델인 'Benefits Supervisor Sleeping'(1995)은 2008년 크리스티 경매 당시 생존작가 최고가인 3천360만 달러에 팔렸다. 같은 모델을 그린 'Benefits Supervisor Resting'(1994)은 2015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나와 5천620만 달러에 낙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