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키아(Basquiat)의 무명시절 다큐멘터리 'BOOM FOR REAL' ★★★★
장 미셸 바스키아의 무명시절 스포트라이트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꽃피운 천재성
BOOM FOR REAL:
The Late Teenage Years of Jean-Michel Basquiat ★★★★
'BOOM FOR REAL The Late Teenage Years of Jean-Michel Basquiat'
'27클럽(27 Club)'이라는 말이 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까지 나이 스물일곱에 요절한 록 스타들을 지칭한다. 미술계에서는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가 이 클럽에 속할 것이다. 브루클린 출신 바스키아는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화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우기도 한다. 지난해 5월 뉴욕 소더비에서 바스퀴아의 '무제'(1982)가 1억1050만 달러에 낙찰되며 경매사상 6위의 고가를 기록했다.
바스키아는 80년대 앤디 워홀, 키스 헤어링과 어울렸고, 화가 출신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 감독의 극영화 '바스키아'(Basquiat, 1996)와 다큐멘터리 'Jean-Michel Basquiat: The Radiant Child'(2010)도 나왔다. 2017년 사라 드라이버(Sara Driver) 감독의 다큐멘터리 'BOOM FOR REAL The Late Teenage Years of Jean-Michel Basquiat'는 특히 바스키아의 무명시절, 특히 1978년부터 1981년까지의 삶을 집중 조명하는 짧은(78분) 영화다.
3월 13일 MoMA 상영회에서 사라 드라이버 감독(오른쪽)과 '클럽 58' 큐레이터 소피 카불라코스. 안은 짐 자무쉬 감독과 사라 드라이버의 젊은 시절.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7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 '스튜디오 75' 특별전을 기해 13일 'BOOM FOR REAL' 시사회와 사라 드라이버 질의 응답시간을 열었다.
'BOOM FOR REAL'은 뉴욕이 한창 범죄의 온상이던 1978년부터 시작한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암울한 연설과 함께 흑백의 뉴욕 풍경은 황폐하기 그지없다. 아파트 창문은 부서지고, 음산한 지하철에 거리는 낚서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무정부적인 격동의 시기는 아날로그 세대 청년들이 클럽에서 미술, 연극, 퍼포먼스, 영화 등 멀티미디어로 실험하던 시절이었다. 인터넷과 셀폰이 없던 그 시대엔 예술하는 젊은이들이 어울리고, 술과 마약에 탐닉했다.
영화는 바스키아의 천재적이며,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자료필름, 옛날 친구들의 인터뷰로 모자이크한다. 사진작가 난 골딘(Nan Goldin)m 드러머 맥스 로우치(Max Roach), 그래피티 아티스트 리 퀴노네스(Lee Quiñones), 큐레이터 카를로 맥코믹(Carlo McCormick), 작가 뤽 산테(Luc Sante) 등이 바스키아를 회고한다. 특히 이스트빌리지의 클럽 57는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 다니던 화가 키스 헤어링과 케니 샤프의 아지터였고, 10대 청년 바스키아는 SVA 학생 행세를 하고 다녔다.
'BOOM FOR REAL The Late Teenage Years of Jean-Michel Basquiat'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18세의 홈리스 바스키아와 이스트빌리지 6층 아파트에서 동거했던 여인 알렉시스 애들리(Alexis Adley)가 오랫동안 소장해온 사진과 드로잉 등 바스키아의 굵고 짧은 삶의 기록들이다. 1979년 바스키아는 19세의 홈리스, 애들러는 바나드대 생물학과를 다니던 23세 대학생이었다. 창조력이 용솟음치던 청년 바스키아는 SAMO©라는 예명으로 동네방네 벽에 낙서그림을 그렸고, 애들러의 아파트 바닥, 가구, 옷가지에도 그려댔며, 냉장고 속에 TV를 넣고 퍼포먼스를 하던 기인이었다. 애들러가 산 코트를 금색으로 도색하기도 했다. 또한, 클라리넷을 불며 재즈 밴드에도 참가했으며, 콘서트 무대에 박스 속에서 튀어나오는 해프닝도 벌였다.
바스키아는 결국 다운타운의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길러낸 그 시대의 기행화가였다. 당시 미술계 거두였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자신의 엽서를 사준 것에 대해 흥분한다. 수많은 자료필름과 당대 바스키아와 어울렸던 히피 예술가들의 목격담으로 영화는 담담하게 천재화가의 젊은 날의 초상과 뉴욕의 노스탈지아를 그려낸다.
감독 사라 드라이버는 미 독립영화의 기수 짐 자무쉬(Jim Jarmusch) 감독의 오랜 동반자로 '영원한 휴가(Permanent Vacation,1980)'와 '천국보다 낯설은(Stranger Than Paradise, 1984)' 등을 제작했으며, 직접 저예산 영화의 메거폰도 잡았고, 짐 자무쉬처럼 NYU 영화과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짐 자무쉬 감독이 2016년 뉴욕영화제에 록스타 이기 팝과 그의 그룹 스투지스(The Stooges)의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Gimme Danger)'를 연출했는데, 사라 드라이버는 바스키아 다큐멘터리로 보조를 맞추었다. 실제로 자무쉬는 바스키아 다큐에 등장한다. 이들이 1970년대말 다운타운에서 데이트할 무렵 무명의 낙서화가 바스키아를 만났던 것. 드라이버 감독은 2012년 허리케인 샌디 이후 알렉시스 애들러가 창고에 보관했던 바스퀴아의 유품을 보고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바스키아와 연인 사이였던 마돈나. 1982
영화는 아이티계 아버지와 푸에르토 리코계 어머니의 이혼, 브루클린뮤지엄 소년 회원으로 미술관을 순례하던 이야기, 15세 때 가출해서 살던 바스키아의 소년 시절과 그의 연인이었던 가수 마돈나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뺐다. 하지만, 히피정신의 보헤미안 서클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예술을 펼칠 수 있었던 이스트빌리지의 문화가 바스키아의 천부적인 재능과 하모니를 이루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흐른다. 디지털 시대, SNS 시대 문화가 위기에 놓인 이즈음 아날로그적인 천국과 실험 예술가들의 불꽃같은 열정 속에서 천재성으로 번쩍이던 시대정신과 무명화가의 초상을 만난다.
뉴욕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던 현장들이 차례로 철거되고 곳곳에 럭셔리 콘도가 올라가고 있는 요즈음, 청년 문화, 언더그라운드 정신은 어디에 있나? 사라 드라이버 감독은 영화 엔딩 타이틀에서 알란 베가(Alan Vega)가 이끌던 펑크그룹 수이사이드(Suicide)의 "Dream Baby Dream"을 들려준다. 뉴욕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 다운타운 예술가들의 실험과 자유정신 속에서 꽃피운 장-미셸 바스키아. 오늘날 청년들에게 셀폰을 던져버리고, 원초적이며, 인간적인 만남 속에서 예술을 창작하라고 강조하는듯 하다.
Jean-Michel Basquiat
얼마 전 뉴욕에서 동시다발로 열렸던 아트페어에서 메인스트림, 블루칩 작가들을 모은 아모리쇼만 구경했다. 이 시대 미래의 작가들을 발굴할 수 있는 실험적이며, 인디정신이 넘치는 독립 아트페어는 지나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인터뷰에서 사라 드라이버 감독은 낡은 건물에 큐레이터 150여명이 무명작가들을 소개하는 아트페어 'Spring/Break'같은 곳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덴버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Denver)에선 바스키아의 옛 애인 알렉시스 애들러의 소장품으로 이스트빌리지 시절을 조명한 사진전 'Basquiat Before Basquiat: East 12th Street, 1979-1980'을 열었다. 지난해 런던의 바비칸(Barbican) 센터에선 영국 최초의 바스키아 회고전 'Basquiat: Boom for Real'이 열렸다. 다큐멘터리 'BOOM FOR REAL'은 5월 11일 개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