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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사망 400주기 프릭 컬렉션 특별전


박정호씨의 엘 그레코와 풀조네의 '갑옷 입은 두 남자' 비교하기



8월 5일-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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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섬머나잇 프로그램에서 박정호씨가 두 작품을 비교 해설하고 있다.



올해는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사망 400주기를 맞는 해다. 


그리스에서 태어났지만, 베니스와 로마를 거쳐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하면서 '그리스인'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던 영원한 이방인. 그는 독창적인 화풍으로 어느 류파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초현실주의와 추상표현주의의 조짐으로 간주되는 중요한 화가이기도 하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미히스패닉소사이어티Hispanic Society of America)는 11월 4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특별전 '뉴욕의 엘 그레코(El Greco in New York)'를 열 예정이다. 이 전시는 마드리드의 프라도뮤지엄(Museo del Prado)을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의 엘 크레코 전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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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엘 그레코 갤러리. 메트는 11월부터 엘 그레코 사망 400주기 맞이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이에 앞서 맨해튼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에서는 지난 8월 5일부터 '갑옷 입은 남자들: 엘 그레코와 풀조네 대면하다 (Men in Armor: El Greco and Pulzone Face to Face)'전을 시작했다. 


소장 규모는 작지만, 명작 컬렉션으로 이름난 뮤지엄 프릭 컬렉션. 이 엘 그레코 특별전도 1574-5년 엘 그레코와 풀조네의 초상화 두 점을 비교하는 작은 전시회지만, 미술 애호가라면 꼭 보아야할 전시회이기도 하다. 


'갑옷 입은 남자들'의 큐레이터가 프릭 컬렉션의 앤 L. 풀렛 큐레토리얼 펠로우로 있는 박정호씨라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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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pione Pulzone (c. 1540/42–98), Jacopo Boncompagni, 1574, Oil on canvas, 48 x 39 ⅛ inches, Private collection, courtesy of Jean-Luc Baroni Ltd.(left) /El Greco (1541–1614), Vincenzo Anastagi, c. 1575, Oil on canvas, 74 x 49 ⅞ inches, The Frick Collection, New York, Photo: Michael Bodycomb



귀공자풍의 용모에 화려한 장식의 갑옷을 입고 양 손에 문서를 쥐고 단아하게 포즈를 취한 풀조네의 야코포 본캄파니(왼쪽)와 마치 전쟁에서 막 돌아온듯, 혹은 출전 직전인듯 창문을 열려있고, 커튼은 길게 드리워져 있으며, 모자는 바닥에 놓여있어 다분히 긴박감을 조성하며 서 있는 엘 그레코의 야성적인 빈첸조 아나스타지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엘 그레코는 1541년 베니스 공화국 치하였던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 20대에 베니스에서 티치아노, 틴토레토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로마에서 활동했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거쳐 36세에 톨레도에 정착한 후 독창적인 색감과 형태의 종교 주제 작품을 제작했다. 스페인어로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별명 '엘 그레코'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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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메트뮤지엄 소장 Portrait of a Man(1590-1600). 오른쪽은 엘 그레코 학자 박정호씨.



엘 그레코 전문가 박정호씨에게  '갑옷 입은 남자들' 전시에 관한 궁금한 점을 E-메일로 질문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박정호씨는 뉴욕대 박사과정에서 엘 그레코를 연구했다. 박씨는 지난 15일 프릭의 무료 행사 '섬머 나잇: 갑옷 입은 남자들(Summer Night: Men in Armor)' 행사에서 갤러리 토크를 열었다. '갑옷 입은 남자들'전은 오는 10월 26일까지 이어진다.




프릭 컬렉션 '갑옷 입은 남자들: 엘 그레코와 풀조니 대면하다'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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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씨가 개인 소장품인 시피오네 풀조네(Scipione Pulzone의 유화 'Jacopo Boncompagni'(1574, 왼쪽)의 디테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프릭 컬렉션이 소장한 엘 그레코의 유화 'Vincenzo Anastagi'(1575 경).




-컬빗: 왜 엘 그레코의 빈센초 아나스타지와 시피오네 풀조네의 '야코포 본콤파니'를 대면하는 전시를 기획하셨나요? 


-박정호: '빈첸조 아나스타지'는 엘 그레코가 이탈리아에서 그린 초상화 가운데 남아있는 세 점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엘 그레코의 초상화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많이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빈첸조 아나스타지'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점은 ‘후원’의 맥락입니다. 화가의 입장에서 초상화는 영향력있는 후원자를 확보하여 더 성당의 제단화 같은 큰 작품 주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두 초상화의 주인공 야코포 본콤파니와 빈첸조 아나스타지의 긴밀한 관계는 엘 그레코가 아나스타지의 초상을 통해 본콤파니를 비롯한 로마의 문화 엘리트에게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여 후원을 받기를 원했음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풀조네의 '야코포 본콤파니'는 중요한 참고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갑옷을 입은 본콤파니를 묘사한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작품보다 1년 앞서 제작되었으며 당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엘 그레코는 갑옷이라는 같은 모티프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독특한 화풍과 구도, 시각적 장치를 사용하여—초상화가로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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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붓질과 생략의 묘미로 후대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끼쳤다는 엘 그레코의 '빈센초 아나스타지' 디테일 Photo: Michael Bodycomb



-컬빗: 엘 그레코의 모델 빈첸조 아나스타지는 누구인가요?


-박정호: 빈첸조 아나스타지(1531년경-1586)는 몰타 기사회의 회원으로 1565년 몰타섬이 오스만 투르크 군에 포위되었을 때 무공을 세운 군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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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적 사실주의의 정교한 디테일과 화려함을 강조한 풀조니의 '야코포 본 콤파니' 디테일.  Photo: Michael Bodycomb



-컬빗: 야코포 본콤파니는 누구인가요? 


-박정호: 야코포 본콤파니(1548-1612)는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아들로 교황군의 사령관이자 로마의 카스텔 산탄젤로 요새의 책임자였습니다. 



-컬빗: 엘 그레코와 풀조네는 당대의 라이벌이었나요? 


-박정호: 두 화가를 라이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풀조네는 당시 로마에서 가장 인기있던 초상화가였던 반면, 엘 그레코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출신 화가였습니다. 다만 엘 그레코는 경쟁의식이 강한, 야심있는 미술가였습니다. 따라서 높은 귀족들과 교류하며 세속적인 성공을 구가하던 동년배 풀조네(엘 그레코는 1541년생, 풀조네는 1540/42년생)를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은 무척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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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톨레도의 산타크루즈 뮤지엄(Museo de Santa Cruz)에 전시된 엘 그레코 작품들.



-컬빗: 엘 그레코가 난시라서 인물을 길고 일그러지게 그렸다는 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정호: 20세기 초에 제기된 설로, 현재 학계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컬빗: 엘 그레코는 그리스인으로 베니스, 로마, 마드리드, 그리고 톨레도에 정착한 이방인/이민자 화가였을텐데요. 삶에서 이민자로서의 고난이 있었는지요? 그의 이방인적 시각이 작품에 나타나는지요? 


-박정호: 그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그리스인들보다는 현지 지식인들과 주로 교류하며 현지 사회에 섞여 들어가 성공하기를 원했습니다. 엘 그레코의 작품을 보면, 비잔틴 이콘의 영향이 있기는 합니다. 이탈리아로 이주하기 전 그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이콘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활동했는데, 이 경험이 이후 작품들에서 보이는 빽빽한 인물 배치, 평면적인 구도와 추상적 형태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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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외곽 중세도시 톨레도(Toledo)의 풍경. 아래는 엘 그레코가 그린 톨레도의 풍경.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함께 유명한 하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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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Greco, View of Toledo. Oil on canvas; 47 3/4 x 42 3/4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컬빗: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 정착해서 말년까지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톨레도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박정호: 이탈리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건너간 스페인에서 엘 그레코는 궁정화가로 일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엘 에스코리알 궁전의 성당을 위해 제작한 '성 마우리시오와 테베군의 순교'는 주문자였던 국왕 펠리페 2세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궁정화가가 되는 길은 막히게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엘 그레코는 마드리드와 멀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던 톨레도를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톨레도는 스페인의 종교 중심지로, 화가로서는 교회의 후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엘 그레코가 이주한 당시 이 도시에는 그에게 필적할 만한 화가가 없었던 것도 그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컬빗: 엘 그레코가 청년 시절 베니스에 머물렀는데요, 당시 초상화의 거장 티치아노와 교류를 했나요? 


-박정호: 엘 그레코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화가들, 특히 티치아노, 틴토레토, 야코포 바사노의 화풍을 연구하고 수용했습니다. 티치아노와 개인적으로 교류했다는 설이 있지만 현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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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클레이 프릭의 맨션과 그의 소장품으로 1935년 개관한 프릭 컬렉션의 71스트릿 외관.



-컬빗: 엘 그레코가 영향을 준 화가는 누구인가요?


-박정호: 엘 그레코 사후에 그의 화풍은 거의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엘 그레코의 아들인 호르헤 마누엘 테오토코풀리가 유일한 계승자였습니다.   



-컬빗: 초상화를 통해 당대의 (갑옷) 패션을 읽을 수 있는지요? 


-박정호: 물론입니다. 이 두 인물이 실제로 입었던 갑옷은 전하지 않지만 그와 매우 흡사한 갑옷들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복식사 연구자들은 동시대 회화를 통해 복식을 재구성하기도 하고, 회화사 연구자들은 실제 남아있는 복식을 통해 작품이 제작된 시대를 알아내는 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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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카네기의 라이벌이었던 철강 재벌 헨리 클레이 프릭의 저택과 소장품으로 꾸며진 프릭 컬렉션의 웨스트 갤러리.



-컬빗: 메트나 브루클린뮤지엄과 비교할 때 프릭 컬렉션의 매력이라면? 


-박정호: 관람자를 압도하지 않는 규모, 그리고 세계적 수준의 서양미술 작품들을 조용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프릭 컬렉션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말-20세기초 뉴욕의 거부(巨富)였던 헨리 클레이 프릭의 100년 된 저택을 거닐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지요.   



-컬빗: 프릭 컬렉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톱 10을 소개하신다면요? 


-박정호: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열 점으로 추리기 어렵습니다만, 잘 알려진 그림으로는 프라고나르의 '사랑의 과정' 연작; 조반니 벨리니의 '성 프란치스코',  벨라스케스의 '펠리페 4세', 베로네제의 '선과 악 사이의 선택', 베르메르의 '여인과 하녀', 렘브란트의 '자화상', 두초의  '악마의 유혹을 받는 예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성 요한',  고야의 '대장간'과 앵그르의 '오송빌 백작부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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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네덜란드에서 방문한 '진주 귀고리를 단 소녀' 특별전을 기해 프릭이 소장한 베르미르 3점도 한 자리에 모였다.



-컬빗: 앤 L. 풀렛 큐레토리얼 펠로우(Anne L. Poulet Curatorial Fellow)은 어떤 장학금인가요?


-박정호: 앤드류 W 멜론 재단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미술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을 한 해에 한 명씩 선발해 2년간 큐레이터로서 작은 규모의 특별전을 기획하고 준비하게 하는 펠로우쉽입니다. 



-컬빗: 어떻게 엘 그레코를 공부하게 되셨나요? 


-박정호: 엘 그레코는 오늘날 표현적인 종교화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한때 그는 신비가, 영성가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작품과 기록들을 보면 엘 그레코는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이 훨씬 큰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하고 직접 미술 이론서를 쓰기도 한 지식인이었습니다(이 책은 현재 전하지 않습니다). 


엘 그레코의 초상화들은 화가의 이런 세속적인 면모를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재현하는 데 화가가 어떤 접근법을 택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는 점에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박정호 Jeongho Park(1977년 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대 Institute of Fine Arts 박사과정 수료했으며, 메트로폴리탄뮤지엄 테오도어 루소 펠로우(Theodore Rousseau Fellow, 2011-12)를 거쳐 현재 프릭 컬렉션의 앤 L. 풀렛 큐레이토리얼 펠로우, 2012-14)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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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시간: 화-토 오전 10시-오후 6시,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입장료: $20(성인), $15(62세 이상), $10(학생), 10세 미만 입장 불가.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무료. 1 East 70th St.@5th Ave. 212-288-0700. www.f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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