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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오디세이'와 미술 (3) 안젤리카 카프만의 텔레마코스와 페넬로페

 

스크린에서 뮤지엄으로, '오디세이' 클래식 찾기

메트뮤지엄의 텔레마스코프, 영국 소장 페넬로페 회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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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ica Kauffman, Self-Portrait, 1784, Neue Pinakothek, Munich/ Gallery 627,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The Odyssey)'가 10월 11일 현재 세계적으로 17억 7천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에선 1천4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바타(Avata, 1,362만명)'과 '겨울왕국 2(Frozen 2, 1,375만명)을 제치고 역대 외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오디세이'는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를 넘어서 유니버설 영화사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영화관의 불이 꺼진 뒤 찾아오는 문학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붓으로 신화의 시대를 다시 쓴 거장들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약 3천년 전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수천년간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지난 칼럼 '영화 '오디세이' 열풍, 미술관으로 이어지다' 1편에선 그리스 도기와 부조 등을 찾아 메트뮤지엄, 펜뮤지엄, 그리고 보스턴뮤지엄이 소장한 유물을 소개했다. 

2편 메트뮤지엄의 렘브란트 회화에선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1653)'을 감상했다. 세번째는 18세기 스위스의 고전주의 여성화가 안젤리카 카프만(Angelica Kauffmann, 1741-1807)의 회화 이야기다.


#메트뮤지엄 '텔레마코스와 칼립소의 님프들' (갤러리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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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ica Kauffmann, Telemachus and the Nymphs of Calypso, 1782.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627


스위스 출신의 역사화가 안젤리카 카프만은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명성을 쌓았으며, 영국 왕립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다. 이 연작은 로마에서 오노라토 카에타니 몬시뇰(Monsignor Onorato Caetani)의 의뢰로 그린 것이다. 같은 해 카프만은 그의 초상화도 그렸다.

카프만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아니라 17세기 프랑스의 대주교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페늘롱(François Fénelon)의 베스트셀러 소설 '텔레마코스의 모험(Les Aventures de Télémaque, 1699)'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호메로스의 원작에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아다니는 조연에 가깝지만, 페늘롱의 소설과 카프만의 그림에서는 당당한 주인공으로 격상된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유럽 회화관 627에는 카프만의 '텔레마코스와 칼립소의 님프들'​과 '텔레마코스의 슬픔'​이 걸려있다. '텔레마코스와 칼립소의 님프들'은 트로이 전쟁​ 후 실종된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아 나선 텔레마코스와 ​스승 '멘토​(Mentor)​'가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어 바다의 ​여신 칼립소와 님프(요정)들이 사는 섬 오기기아(Ogygia)에 도착한​ 장면을 담았다. 
 
텔레마코스는 오른쪽 바위에 앉아 님프들에게 둘러싸여 대접을 받고 있다. 님프들이 환대하며 건네는 과일과 꽃, 노래에 둘러싸여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눈앞의 유혹 사이에서 고뇌와 우수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오디세우스를 그리워하던 칼립소(그림에서 왼쪽 끝)는 아버지를 닮은 텔레마코스를 보고 그를 섬에 붙잡아두려하며, 멘토를 텔레마코스로부터 떼어놓으려 유도하고 있다.

그림에서 갈색 망토 차림의 노인​ '멘토'는 텔레마코스를 보호하기 위해 지혜의 여신 아테나(미네르바)가 노인으로 변장한 것이다. 멘토​는 칼립소의 유혹과 섬의 쾌락이 지닌 위험성을 경계하는 눈빛을 띠고 있다.​ 

카프만은 거대한 영웅의 서사 뒤편에 숨겨진 '여인들의 치밀한 심리적 연대'와 아들의 딜레마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이성과 의무를 상징하는 멘토​(아테나 여신)와 감정과 유혹을 상징하는 칼립소 및 님프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텔레마코스의 내면을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화풍으로 절제있게 표현했다.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과장된 장식성, 화려함, 그리고 다소 가볍고 감각적인 분위기에 반발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 전역을 휩쓴 예술 사조다. 말 그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예술로 돌아가자"는 모토로 성서 이야기보다 그리스-로마 신화 등 역사적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삼의무와 애국심을 강조했다. 그림은 색채의 극적인 변화보다 정교한 윤곽선, 조각같은 인체 표현, 절제된 감정과 균형 잡힌 구도로 차분하고, 엄숙한 색채를 중요시했다. 프랑스의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그의 제자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그리고 안젤리카 카우프만이 대표 작가다. 남성 화가들이 주로 전쟁과 죽음 같은 무거운 주제에 집중한 반면 카프만은 고전 문학과 신화 속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 애틋함, 내면의 우아함을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했다.


#메트뮤지엄, '텔레마코스의 슬픔' (갤러리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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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ica Kauffmann, The Sorrow of Telemachus, 178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627


'텔레마코스와 칼립소의 님프들'이 섬에 막 도착한 젊은 영웅을 향한 매혹적인 유혹을 다루었다면, 이와 짝을 이루는 '텔레마코스의 슬픔'은 섬에 머무는 동안 그리움과 슬픔에 잠긴 텔레마코스의 내면을 균형잡힌 구도와 부드러운 색채로 묘사한 작품이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괸 채 우수에 잠긴 노란 옷의 청년이 텔레마코스다. 님프들이 노래를 부르고 과일을 바치며 위로하려 하지만, 그는 섬의 즐거움을 거부하는 중이다. 그의 마음은 오직 실종된 아버지 오디세우스와 고향 이타카를 향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앞에 앉은 흰 드레스 차림의 칼립소는 텔레마코스의 슬픔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왼손을 뻗어 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을 노래하던 요정들에게 '노래를 멈추라'로 지시하고 있다. 사실 님프들의 노래는 텔레마코스를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흔들어 섬에 영원히 머물에 하려는 칼립소의 매혹적인 계략이었다.  

이들 사이에 앉은 노인 멘토는 제자 텔레마코스가 섬의 화려한 유혹에 굴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의무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이성으로 지켜내고 있는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카프만은 아버지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리움에 복받쳐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텔레마코스의 모습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슬픔과 나약함'을 지닌 입체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오열하는 인물 대신 절제된 모습을 담았다. 텔레마코스는 눈가를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고, 칼립소의 손짓 역시 연극의 한 장면처럼 우아하게 손짓한다. 격렬한 감정마저도 품위 있고 아름다운 형태로 정제하여 표현하는 것이 안젤리카 카프만이 보여주는 신고전주의 화풍의 진수다.

카프만은 인물들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서로 주고받는 미묘한 눈빛과 손짓의 역학 관계를 캔버스에 촘촘히 엮어냈다. 이는 칼립소의 섬을 단순한 유혹의 장소가 아니라, 인물 간의 고도의 심리전이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메트뮤지엄의 두 '텔레마코스' 연작은 유혹에 흔들리던 청년이 결국 도덕적 의무와 이성을 찾아가는 정신적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이 금서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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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선 아버지를 찾기위해 스파르타 등지를 돌다가 성과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텔레마코스의 여정이 전체 24권 중 초반 4권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후엔 아버지를 도와 어머니의구혼자들을 처단하는 조연이다.

그러나, 페늘롱의 소설 '텔레마코스의 모험'에서 주인공은 스승 '멘토'와 함께 이집트, 티레, 키프로스 등 지중해 전역을 여행한다. 그 여정 중 텔레마코스는 유혹에 빠지고, 폭정을 목격하며, 이상적인 군주가 되기 위한 치열한 '도덕적·정치적 수업'을 받으며 진정한 주인공으로 성장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위대한 스승이란 의미의 '멘토(Mentor)'라는 이 소설에서 나왔다.

페늘롱의 소설이 신화 소설을 넘어 시대를 뒤흔든 아이콘이 된 이유는 매우 극적이다. 페늘롱은 당시 프랑스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던 부르고뉴 공작(루이 14세의 손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가정교사였다. 그는 미래의 왕에게 '올바른 군주론'을 가르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책 속에서 텔레마코스가 목격하는 사치에 찌들고, 끝없는 확장 전쟁을 벌이며, 백성들을 굶주리게 하는 폭군들의 모습이 당시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를 투영한 것이었다.

이 내용에 분노한 ​'태양왕' 루이 14세는 페늘롱을 궁정에서 추방하고 이 책을 판금 조치했다. 하지만, 왕실이 숨기려 할수록 대중의 호기심은 폭발​하게 된다.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 해적판이 대량 인쇄되어 프랑스로 밀반입되었고, 왕권을 비판하는 당대 최고의 '정치적 스캔들 소설'로 소문이 나며 전 유럽인이 읽는 금서(禁書)이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페늘롱이 텔레마코스의 입을 빌려 주장한 평화주의, 사치 배격, 백성을 위한 정치 등의 가치는 이후 장 자크 루소, 볼테르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도 이 소설의 열렬한 독자였을 만큼 근대 민주주의와 헌법 사상의 토양을 마련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젤리카 카프만은 루이 14세 스타일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로코코 양식을 거부​했다. 페늘롱의 소설 속에서 욕망과 유혹(칼립소 여신의 섬)에 맞서며 도덕적으로 고뇌하고 슬퍼하는 젊은 영웅 텔레마코스의 모습을 통해 당대 지식인들이 열광하던 '절제와 미덕'의 메시지를 ​신고전주의로 시각화한 것이다.


​안젤리카 카프만의 페넬로페 (영국 소장품)

안젤리카 카프만은 오디세우스의 왕비 페넬로페(Penelope)를 소재로 한 연작도 그렸다. 18세기 후반 유럽은 잦은 전쟁으로 남성들이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당대 사회와 귀족 계급은 집안을 온전히 책임지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절개를 지키는 '현명하고 도덕적인 여성상'의 롤모델이 필요했다. 페넬로페는 수많은 구혼자들이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으름장을 놓을 때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면 결혼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낮에는 짜고 밤에는 몰래 푸는' 지혜를 발휘했다. 페넬로페는 시대의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카프만은 이를 단순히 가부장적인 '정절'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고독과 가혹한 운명에 맞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 인간의 위엄으로 격상시켜 표현했다. 페넬로페를 담은 세점의 회화가 모두 영국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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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틀 앞의 페넬로페 Penelope at Her Loom, 1764
 
턱을 괴고 깊은 사유와 슬픔에 잠겨 있는 페넬로페의 발치에는 오디세우스의 활과 그를 기다리는 충견 아르고스가 묘사된 작품이다.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담았다. 카프만이 로마 체류 시절 영국 귀족의 의뢰로 그린 작품으로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영국 브라이튼미술관(Brighton Museum & Art Gallery)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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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의 활을 내리는 페넬로페 Penelope Taking Down the Bow of Ulysses, 1768
 
더 이상 구혼자들을 거부할 수 없는 한계에 달했을 때, 남편의 활을 벽에서 내리며 결단을 내리는 비장한 순간을 신고전주의 특유의 우아함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프만이 영국 로열아카데미 창립 멤버로 제 1회 왕립아케데미 전시(1769(에 출품했던 역사화로 데번주 솔트람 저택에 소장되어 있으며, 판화는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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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클레아에 의해 깨어난 페넬로페 (Penelope awakened by Euryclea, 1772-1773)
 
오디세우스가 거지 복장으로 돌아와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한 직후 늙은 유모 유리클레아가 잠들어 있던 페넬로페를 깨워 "당신의 남편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이다. 기쁨과 의심, 오랜 긴장이 풀리는 가운데 여성들의 심리적 연대가 화면 가득 흐른다. 이 회화는 오랜 세월 민간 경매를 전전하다가 2023년 영국의 문화유산 보호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기금을 모아 매입, 140년 만에 원래 영국 귀족 호어(Hoare) 가문의 대저택인 스투어헤드(Stourhead)에 들어갔다.
 
 

*영화 '오디세이'와 고대미술 (1) 메트·펜·보스턴뮤지엄, 클래식을 찾아서 

https://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4189939

 

*영화 '오디세이' 열풍, 미술관으로 (2) 메트뮤지엄의 렘브란트 회화

https://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4192729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호메로스 원작과 다른 점 10가지 -배너티 페어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4187432

 

*NYT 모린 다우드, 뉴욕매거진 캣 장: 섹스 거세된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혹평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4187518&mid=Fil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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