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뮤지엄 로이 리히텐슈타인 회고전 'Roy Lichtenstein: Like New'(10/11-5/10, 2027)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Roy Lichtenstein
디지털 시대, 다시 보는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말년 작품 소개전 'Roy Lichtenstein: 1997'(9/5-6/1, 2027)

Roy Lichtenstein, Girl in Window (Study for World's Fair Mural), 1963
휘트니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가 오는 10월 11일부터 내년 5월 10일까지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회고전 '새것처럼(Roy Lichtenstein: Like New)'을 연다. 이 전시엔 그의 회화, 조각, 드로잉, 영화 등 130여점이 소개된다. 이에 앞선 9월 5일부터는 그가 사망한 해인 1997년 제작한 작품들을 집중 소개하는 별도의 전시 'Roy Lichtenstein: 1997'가 시작된다.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대중문화, 만화, 광고, 소비재, 상업 인쇄물의 시각적 언어를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들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작품은 세련되고 깔끔하며 기계로 제작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직접 세심하게 손으로 그린 결과물이다. 이는 이미지가 어떻게 구성되고, 복제되며, 확대되고, 유통되며, 새롭게 탄생하는지에 매료되었던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회고전 '로이 리히텐슈타인: 라이크 뉴(Roy Lichtenstein: Like New)'는 194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지각과 시각적 인식에 대한 초기 관심이 어떻게 복제, 시뮬레이션, 그리고 이미지 문화에 대한 평생의 탐구로 이어졌는지 그 궤적을 추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키를 보라(Look Mickey, 1961)', '공을 든 소녀(Girl with Ball, 1961)', '걸작(Masterpiece, 1962)', '물에 빠진 소녀(Drowning Girl, 1963)', '행복한 눈물(Happy Tears, 1964)' '작고 큰 그림(Little Big Painting, 1965)', '루앙 대성당, 세트 III(Rouen Cathedral, Set III, 1968-69)', '화가의 작업실 '춤'(Artist’s Studio “The Dance”, 1974)' 등 리히텐슈타인의 대표작들을 대거 선보인다. 또한 약 96피트(약 29미터)에 달하는 '그린 스트리트 벽화(Greene Street Mural, 1983)'를 포함한 세 점의 벽화가 재현된다.

Roy Lichtenstein, Little Big Painting, 1965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제임스 로젠퀴스트와 더불어 팝 아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1960년대 초에 등장한 팝 아트는 대중문화에서 소재를 차용하고 스크린 프린팅과 같은 기계적 복제 기법을 사용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본명은 로이 폭스 리히텐슈타인(Roy Fox Lichtenstein). 1923년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 요크애브뉴의 플라워병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브루클린 출신 독일계 유대인으로 부동상 중개업자로 일했다. 뉴올리언스 출신 어머니 역시 독일계 유대인으로 피아니스트였다.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의 웨스트엔드 애브뉴에서 자랐으며, 드와이트스쿨에 다니며 미술과 디자인에 흥미를 보였다. 어릴적부터 재즈를 즐겨 들어 할렘의 아폴로 시어터에서 열리는 공연에 자주 가서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곤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뉴욕아트스튜던츠리그(Art Students League)에서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 레지널드 마시(Reginald Marsh)에게 잠시 배웠다. 이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재학 중인 1943년부터 3년간 군 복무를 하면서 병원 보조원, 제도사, 화가 등으로 일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귀향했다가 'G.I. 빌(제대 군인 원호법)'에 따라 군에서 전역했다.
이후 오하이오로 돌아가 스승 중 한명인 호이트 L. 셔먼(Hoyt L. Sherman)의 지도 아래 학업을 재개했다. 셔먼은 리히텐슈타인의 향후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훗날 리히텐슈타인은 오하이오 주립대에 기부해 설립한 새 스튜디오의 이름을 '호이트 L. 셔먼 스튜디오 아트 센터'로 명명하기도 했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10년 동안 강사로 가르쳤다.

Roy Lichtenstein, Bellagio Hotel Mural: Still Life with Reclining Nude (Study), 1997
1961년, 만화나 광고에서 소재를 느슨하게 차용하고 상업 인쇄 스타일을 모방해 그리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확립하게 된다.
다나 밀러(Dana Miller)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은 1964년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뉴욕 세계박람회(World’s Fair)의 뉴욕주관(New York State Pavilion)을 위해 의뢰한 벽화를 제작하게 된다. 그 습작 '창가의 소녀(Girl in Window)'에서, 리히텐슈타인은 단순화된 단색 면, 대담한 검은 윤곽선, 그리고 격자무늬 점(grid of dots)을 조합, 매력적인 여성의 상반신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기법은 차갑고 무심해 보이는 표면이나 산업적 복제를 연상시키는 외관과는 달리,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노동력과 수작업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업 과정은 먼저 선택한 소재를 스케치한 뒤 불투명 투사기(opaque projector)로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겨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곽선 안을 채우는 단계로 이루어졌다. 이때 하프톤 인쇄 공정의 '벤데이 도트(Benday dots)'를 모방하기 위해 스텐실을 사용하여 점을 찍어 넣는 방식을 취했다.
1960년대 중반, 리히텐슈타인은 작가의 붓질 흔적(artist’s mark) 그 자체를 모티프로 삼기 시작했다. '리틀 빅 페인팅'은 수많은 추상표현주의 캔버스에서 볼 수 있었던 거침없는 붓질과 물감이 흘러내리는 효과를 묘사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즉흥적인 필치와 그에 수반되는 자발성 및 자유로움의 이미지를 패러디한 것이다. 그는 작가 고유의 몸짓이 지닌 개성을 익명적인 상업적 생산물의 외관으로 대체함으로써, 마치 의도적으로 양식화되고 사전에 계획된 것처럼 붓질을 묘사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머메이드(Mermaid)' 요트의 외출, 2017
Young America: Roy Lichtenstein and the America’s Cup
https://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35834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