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비둘기':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MoMA (3/21-9/21)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세기의 사랑, 칼로와 디에고의 첫 만남에서 결혼까지
March 21, September 21, 2026
Museum of Modern Art

Frida Kahlo, Fulang-Chang and I, 1937 (assembled after 1939). In two parts, oil on board (1937) with painted mirror frame (added after 1939); and mirror with painted mirror frame (after 1939).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MoMA.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애완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은 리베라와 사이에서 가질 수 없었던 아이들을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당시 프리다는 레온 트로츠키와 밀애 중이었다. 프리다는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의 여동생이자 친구인 메리 샤피로 스클라에게 이 그림을 선물하면서 거울 액자 하나도 선물했다. 프리다는 메리에게 그림과 거울을 나란히 걸어두라고 말했다. 메리가 언제나 프리다 곁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코끼리와 비둘기(el elefante y la paloma)'
멕시코 화가 커플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9-1957)의 관계는 격렬했고, 때론 파멸적이며 또한 드라마틱했다.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살바도르 달리와 갈라 달리, 그리고 잭슨 폴락과 리 크래스너를 넘어서 프리다와 디에고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으며, 끊없이 매혹시킨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리고 있는 '프리다와 디에고: 마지막 꿈(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3/21-9/21)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초연하는 가브리엘라 레나 프랭크(Gabriela Lena Frank) 작곡 오페라 '프리다와 디에고의 마지막 꿈(El Último Sueño de Frida y Diego, 5/14-6/5)'과 연계해서 열리는 이 전시는 규모는 작지만, 두 미술가의 관계를 신화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이 전시는 칼로의 회화 6점, 드로잉 1점, 리베라의 작품 10여점을 소개한다. 사랑-갈등-이혼-재결합까지 프리다와 디에고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프리다와 디에고의 사랑은 아마도 리베라의 자서전 'My Art, My Life: An Autobiography'(1992)에서 가장 근접하게 묘사되었을 것이다. 두 미술가의 만남에서 결혼까지를 리베라의 기록을 통해 엿본다.

Frida Kahlo,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 1940.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MoMA.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칼로는 남성 수트를 입은 채 긴 머리를 잘라 바닥에 어질러 놓았다. 긴 머리는 아마도 리베라가 사랑했던 몸의 일부였을 것이다. 칼로는 그것을 파괴하면서 리베라의 사랑을 제거하려는듯 하다. 또한, 남성 정장을 입음으로써 전통적인 성 역할을 전복한다. 양성애자였던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프리다(15)와 디에고(36)의 첫 만남
1922년 15살의 칼로는 멕시코시티의 명문학교(National Preparatory School)에 다녔다. 당시 여학생은 35명에 불과했다. 어느날 36살의 리베라가 이 학교 강당(Bolívar Auditorium)에서 그의 첫 벽화 '천지창조(La Creación)'를 그리고 있었다. 리베라는 비계 위에서 작업했으며, 당시 그의 부인 과달루페 마린은 아래서 작업했다. 칼로는 불량학생 그룹(로스 카추차트/ Los Cachuchas)의 멤버로 리베라의 작업에 장난을 치고, 강당 계단에 비누칠을 해서 리베라가 미끄러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리베라의 회고록에 따르면, 어느날 갑자기 강당 문이 활짝 열리더니 가슴이 큰 소녀 하나가 들어와 똑바로 쳐다보며 "제가 선생님 그림 그리는 걸 지켜보면 방해가 될까요?"라고 물었다. 리베라는 "아니란다, 아가씨, 오히려 영광이지"하고 대답했다. 소녀는 몇시간 동안 리베로의 붓 하나하나를 열심히 관찰했다. 이에 루페의 질투심이 발동해 칼로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으나, 칼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루페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소녀에게 다가가 공격적인 태도로 맞섰다. 소녀는 그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한마디 말도 없이 루페의 시선을 똑같이 되받아쳤다. 이에 놀란 루페는 한동안 소녀를 노려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마지못해 감탄하는듯한 어조로 디에고에게 말했다. "저 아이 좀 봐! 몸집은 저리 작아도 나처럼 키 크고 덩치 좋은 여자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잖아. 정말 마음에 드는 아이야."
세시간 후 소녀는 "굿 나잇"하며 강당을 떠나갔다. 프리다 칼로, 8년 후 리베라의 부인이 될 소녀였다.

Frida Kahlo, Self Portrait on the Border between Mexico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932.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MoMA.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디에고 리베라가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현대 산업을 찬양하는 벽화(Detroit Industry Murals, 1932-33)를 그리는데 몰두하는 동안, 프리다는 멕시코의 고대 농경문화를 동경했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분홍색 원피스와 레이스 장갑을 끼고 담배와 멕시코 국기를 들고 여성성과 애국심을 드러내고 있다.
#프리다(18)의 불타는 야망
디에고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그가 교육부 건물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벽화 중 하나를 작업하고 있을 때였다. 아래쪽에서 한 소녀가 그를 향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에고, 제발 거기서 내려오세요! 당신과 의논할 중요한 일이 있어요!" 디에고는 고개를 돌려 비계(작업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가냘프면서도 어딘가 예민해 보이는 몸매에, 섬세한 이목구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길었고, 짙고 풍성한 눈썹이 코 위쪽에서 서로 맞닿아 있었다. 눈썹은 마치 검은 새의 날개처럼 보였는데, 그 검은 아치형 눈썹이 두 개의 비범한 갈색 눈동자를 감싸고 있었다.

리베라가 비계에서 내려오자 프리다는 자신의 당찬 태도와 불타는 야망을 조금도 숨기려 하지 않은 채 리베라에게 말했다.
"저는 그저 재미로 이곳에 온 게 아니에요. 생계를 꾸려나가려면 일을 해야 하거든요. 제가 그린 그림 몇 점이 있는데 당신이 전문가의 시각으로 한번 봐주셨으면 해요. 전 정말 솔직하고 가감없는 의견을 듣고 싶어요. 그저 제 자존심이나 채우려고 그림을 계속 그릴 여유 따위는 제게 없으니까요. 제가 계속 그림을 그릴 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을지 당신의 생각을 말해 주세요. 제 그림 세 점을 가져왔어요."
리베라는 동의하고 그녀를 따라 계단 아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보여준 세 점 모두 여성의 초상화였다. 하나씩 살펴보는 순간, 디에고는 즉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캔버스에는 남다른 표현력, 정확한 인물 묘사, 그리고 진정한 엄격함이 담겨 있었다. 야심 찬 신진 화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창성을 가장한 기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그림들은 근본적인 조형적 정직함과 자신만의 예술적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생생한 관능미와 냉혹하면서도 섬세한 관찰력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 소녀는 분명 진정한 예술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리베라가 바람둥이라는 소문을 미리 들었던 칼로는 그의 얼굴에 드러난 열정에 의심을 품었다. 그래서 곧바로 "날카롭고 방어적인 어조"로 그를 꾸짖었다.
"칭찬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에요. 진지한 남자의 비평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예술 애호가도 아니고 아마추어도 아니에요. 그저 먹고 살아야 하는 여자일 뿐이라구요."
리베라는 그 순간 칼로에게 푹 빠져버렸다. 지적으로, 창의적으로, 그리고 로맨틱한 감정까지. 리베라는 이렇게 적었다.
"이 여자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Frida Kahlo, The Wounded Deer, 1946.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MoMA.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1946년 칼로는 뉴욕에서 척추수술을 받았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멕시코로 돌아간 후 육체적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자신의 얼굴을 한 어린 사슴이 수많은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모습을 묘사했다. 하단의 'Carma'는 운명을 의미한다.
#그때 그 소녀, 프리다
"오직 한 산만이 다른 산의 본질을 알 수 있어요…"
칼로가 리베라에게 쓴 자필 연애편지에서 발췌-
칼로가 화가가 될 자질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물었다. 리베라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당신은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해."
그의 조언을 따르겠다고 맹세한 후 칼로는 그에게 한 가지 더 부탁을 했다. 오는 일요일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나머지 그림들도 봐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주소를 알려준 뒤에야 비로소 그녀는 리베라에게 자신의 이름 '칼로'를 밝혔다.
리베라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치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칼로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칼로를 ‘불량학생 무리의 우두머리’로 지목하며, 칼로의 말썽 때문에 너무나 골머리를 앓은 나머지 사직까지 고려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몇년 전 그 학교 강당에서 작업하던 '천지창조(Creation)' 벽화 앞에서 있었던 그들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이 스쳐갔다. 당당하게 행동했던 소녀에 대한 기억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리베라의 말을 가로 막으며, 칼로는 악동같은 섬광의 눈빛에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 어쨌다는 거죠? 강당에 있던 그 소녀가 바로 나였던 건 맞아요.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그래도 일요일에 오고 싶어요?"
리베라는 "알았어"하곤, 칼로의 그림 옮기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칼로는 사양한 후 커다란 캔버스들을 양팔에 끼고 흔들거리며 떠나갔다.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MoMA.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디에고, 칼로의 집을 방문하다
마침내 일요일, 리베라는 칼로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칼로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리베라의 손을 잡고는, 텅 비어 있는 듯한 집 안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리곤, 자신의 그림들을 모두 늘어놓고 보여주었다.
리베라는 회고록에서 그 그림들과 그녀의 방, 그리고 그녀의 찬란한 존재감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고 썼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프리다는 이미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27년 뒤, 그녀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프리다는 여전히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첫 키스를 나누었고 리베라는 본격적으로 프리다에게 구애하기 시작했다. 프리다는 열여덟 살이었고 리베라는 그녀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았지만, 두 사람 모두 조금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Frida and Diego: The Last Dream, MoMA.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프리다와 디에고의 결혼, 1929
4년 뒤인 1929년 8월 21일, 프리다와 디에고는 멕시코시티의 코요아칸의 구청장이 주재하는 민사 결혼식을 올렸다. 구청장은 두 사람의 결합에 대해 '역사적인 사건'이라 선언했다. 당시 칼로는 22세, 리베라는 42세였다. 두 사람은 1954년 7월 칼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륜, 이혼, 재결합으로 파란만장하게 살았다.
서로 외도를 하면서 '열린 결혼(open marriage)' 생활을 유지했다. 칼로는 프랑스의 가수이자 댄서였던 조세핀 베이커, 러시아의 마르크시스트 레온 트로츠키와 바람을 피웠고, 리베라는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질렀다. 그러나, 프리다와 디에고는 서로가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무이한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사랑을 갈구하고, 얻어내고, 노래하네.
과거에도 노래했고, 지금도 노래하며,
앞으로도 우리의 마법 같은 사랑을 노래하리라…"
-칼로가 리베라에게 보낸 자필 연애편지 중에서-

How Diego Rivera Met the Fierce Teenage Frida Kahlo and Fell in Love with Her Years Later
https://www.themarginalian.org/2014/05/22/diego-rivera-frida-kahlo-meeting
*프리다 칼로의 '엘 수에뇨(El sueño)' 여성작가 경매사상 최고가 5천4백70만불 낙찰, 2025
https://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4169335
*프리다 칼로의 디에고 불륜 담은 자화상 남미 미술 최고가 3천490만불 경매, 2021
https://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4051352
*라스 프리다스(Las Fridas):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관계 탐구 무용극, 2020
https://www.nyculturebeat.com/?mid=Stage2&document_srl=3877421
*프리다 칼로: 외양은 속임수@브루클린뮤지엄, 2019
http://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3785866
*프리다 칼로의 정원@뉴욕식물원, 2015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285319&mid=FunNY2




유부남을 사랑하고, 쟁취해서 결혼을 한 그녀의 열정을 누가 따라 가겠냐마는 예술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있고, 이해가 되나봅니다. 칼로의 그림이 여성화가의 그림 중에서는 최고가의 경매로 낙찰된 걸 보면, 그녀는 뛰어난 예술혼을 지닌 것같습니다. 그 예술혼을 알고 싶지만, 그것은 육체가 아니고, 영혼이기 때문에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메아리가 돌아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