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이시뮤지엄 나치 약탈 미술품의 잃어버린 스토리를 찾아서 (1)
Afterlives: Recovering the Lost Stories of Looted Art <1>
쥬이시뮤지엄 나치약탈 환수 미술품 특별전(8/20-1/9, 2022)
마티스, 피카소, 세잔, 샤갈, 클레, 쿠르베, 피싸로, 마르크....
Afterlives: Recovering the Lost Stories of Looted Art, The Jewish Museum. 2021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군은 유대인 학살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술품과 문화재를 약탈했다. 전쟁이 끝난 후 미술품 100만여점과 도서 250만권이 회수됐다.
맨해튼 쥬이시뮤지엄에서 열리는 '여생: 나치 약탈 미술품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서 Afterlives: Recovering the Lost Stories of Looted Art'(8/20-1/9, 2022) 전시는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 폴 세잔, 피에르 보나르, 구스타프 쿠르베, 폴 클레, 카미유 피싸로, 프란츠 마크 등의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약탈되었다가 환수된 미술품을 소개한다.
이 전시는 예술가의 자유혼이 담긴 그림들이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 새 삶을 찾게 되었는지 그림 밖의 스토리를 전해주고 있다. 뉴욕컬처비트는 이 전시에서 주목할만한 약탈 미술품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Raiders of Lost Art & Stories <1>
#1 프란츠 마르크의 '커다란 청색 말들', 1911
Franz Marc(1880–1916), The Large Blue Horses, 1911, Oil on canvas,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gift of the T. B. Walker Foundation, Gilbert M. Walker Fund, 1942
독일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는 풍경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1911년 아우구스트 막케(August Macje, 1887-1914)와 독일 표횬주의를 이끌어갈 청기사(Blaue Reiter/ Blue Rider) 그룹을 창단했다. 이즈음 그린 '거대한 청색 말들(The Large Blue Horses, 1911)'은 폭력적이며 공격적인 붉은 산을 배경으로 영혼을 상징하는 청색의 말 세마리를 묘사했다. 그는 그림 뒷면에 "모든 존재는 불타는 고통"이라고 썼다. 이 그림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감정을 묘사한 표현주의 미술의 전형이다.
프란츠 마르크는 제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으로 싸우다가 36세에 파편 부상으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프란츠 마크의 그림은 나치에 의해 '퇴폐 미술(degenerated art)로 낙인 찍혔고, 약 130점이 독일 뮤지엄에서 제거됐으며, 몇 작품은 파기됐다.
'거대한 청색 말들'은 1919년 쥐리히에 살던 독일인 아트 콜렉터 F. J. 웩(F. J. Weck)이 구입했다.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 찍힌 후인 1938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반 히틀러'를 주제로 전시됐으며, 이듬해 루체른에서 열린 퇴폐미술 경매에서 팔렸다. 그림은 이후 미국에서 열린 '20세기의 금지된 독일미술(Twentieth Century Banned German Art)' 전시에 소개됐다. 이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란츠 마르크는 1911년 바실리 칸딘스키, 아우구스타 막케와 함께 청기사파를 창시했으며, 아우구스트 막케, 폴 클레, 알프레드 쿠빈,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가브리엘 뮌터도 가담해 활동했다. 뉴욕의 동일-오스트리아 전문 미술관 노이에 갈러리는 2018년 제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두 화가 '프란츠 마르크 & 아우구스트 막케: 1909-1914' 전시를 열었다.
*프란츠 마르크와 아우구스타 막케: 독일 청기사그룹 제 1차 세계대전 전사 작가 듀오전
https://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767539&mid=Art2
#2 막스 페히슈타인, 누드 풍경, 1912
Max Pechstein, 1881–1955, Landscape, 1912, Estate of Hugo Simon
자연 풍경 속의 누드는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로망이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 헤르만 막스 페히슈타인에게 누드 풍경은 부르조아 사회에서 억압된 자유의지를 해방시키는 모티프였다. 목판화와 앙리 마티스의 선명한 팔레트에서 영향을 받은듯한 누드 풍경이다.
이 회화는 독일의 유대계 은행가이자 아트 콜렉터였던 휴고 지먼(Hugo Simon, 1880-1950)의 소장품이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토마스 만,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친구였던 휴고 지먼은 150여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다 파리로 도피했다. 1933년 나치는 지먼이 독일에 남긴 소장품을 압수했다. 그중 한점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Scream, 1893)'으로 노르웨이 미술관으로, 몇점은 쥐리히와 바젤의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막스 피히슈타인의 '누드 풍경'은 1938년 런던에서 열린 '퇴폐미술' 반 나치 전시회에서 프란츠 마르크의 '거대한 청색 말들'과 함께 소개됐다.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략하자 지먼은 재산을 그대로 둔 채 브라질로 도피했다.
Max Pechstein, The yellow and black jersey, 1909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그림의 행방은 묘연했다가 1966년 파리의 한 뮤지엄의 지하에서 발견됐다. 이후 프랑스 정부가 설립한 국립박물관환수회의 임시 관리에 들어갔다가 2021년에서야 휴고 지먼의 상속인들에게 반환됐다.
막스 페히슈타인은 1906년 드레스덴에서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와 함께 표현주의 그룹 '브뤼케파(Die Brücke/ The Bridge)'를 결성했다. 페히슈타인의 작품은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분류해 독일 뮤지엄에서 326점이 압수됐다. 그중 16점은 1938년 런던에서 열린 반나치 퇴폐미술 전시회에 소개됐다. 베를린 미술아카데미 교수였던 페히슈타인은 나치에 의해 퇴출되었다가 1945년 복귀했다.
#3 피에르 보나르의 '장미가 있는 정물'(1892/ 1929)
Pierre Bonnard(1867–1947), Still Life with Guelder Roses, 1892, reworked in 1929, Oil on canvas, 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Missouri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는 25세 구엘더 장미가 있는 정물화를 그리다가 말았다. 그로부터 40년 후에야 완성한 그림이다. 젊은 시절엔 대담하고, 평면적으로 단순화한 인테리어, 실험적인 컬러와 복잡한 질감을 즐겼다. 말년에는 스타일이 느슨하고, 부드럽고 미묘하게 변화했다.
이 그림은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투자은행회사 라자드(Lazard)의 회장이었던 데이빗 데이빗-웨일(David David-Weill, 1871-1952)이 소장하고 있다가 나치에 의해 압수당한 보나르 그림 12여점 중 한점이다. 압수된 후 이 그림엔 재고번호 #772가 붙여져 나치가 약탈 미술품의 창소로 사용했던 오스트리아의 소금광산 창고로 옮겨졌다. 1945년 연합군이 발견해 프랑스를 탈출해 미국에서 살고 있던 데이빗-웨일에게 돌려주었다.
Édouard Vuillard(1868-1940), David David-Weill, 1925, The Jewish Museum
아트콜렉터였던 데이빗 데이빗-웨일은 2차세계대전 중 나치로부터 2천687점을 몰수당했다. 전쟁 후 환수된 미술품의 일부는 루브르, 기메뮤지엄, 뉴욕의 대학교, 함부르크, 라이덴, 호놀룰루, 스톡홀름 등의 미술관에 기부했다. 데이빗-웨일은 1952년 파리에서 사망했으며, 1970년 그의 소장품이 경매에 나왔다.
1937년 뮌헨에서 퇴폐미술전을 관람하는 요제프 괴벨스(중앙).
-Elaine-